•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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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괴롭히던 적도의 태양도 시간이 지남과 함께 서편으로 기울며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바닥에 놓인 예비타이어 때문에도 반쪽 엉덩이만을 걸친 나의 자세는 완전히 비틀어져 있었다. 옆구리와 어깨 다리 등이 결리고 쥐가 나고 있었지만 달리 자세를 바꿔볼 재간이 없었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 저녁을 먹기 위하여 길가의 식당으로 들어섰다. 차에서 기어내린 우리의 몸에서는 움직일 적마다 버걱거리는 뼈마디 부딪히는 소리가 온몸에서 나는 듯하다.

식당은 뷔페식으로 음식을 차려 두고서 이 길을 지나는 차량들을 상대로 영업하고 있었다. 음식은 각자 덜면 종류에 관계없이 무게를 달아서 계산하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일행의 눈치를 살피니 이들은 밥 먹을 생각들을 않는 듯 보였다. 공터 건너편의 매점을 흘끗거린 이들은 소주잔보다도 작은 일회용 잔에 공짜로 주는 커피만을 매점과 식당을 오가며 홀짝거리고 있었다. 자동차에 시달린 터라 배고픈 느낌은 없었지만, 튀김 닭 몇 조각을 접시에 덜어 딴건 더 안먹냐는 주인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무게를 달았다. 요금은 불과 우리 돈 1000원을 조금 넘었다. 일행이 앉아 있는 식탁으로 가서 접시를 내려놓았다. 튀김 닭은 미리 작은 조각으로 사람 수에 맞춰 담아왔다. 손으로 하나씩 집으라고 가리키자 얼른 한 조각씩을 들어 뜯기 시작한다. 사실 뜯을 것도 없는 조그마한 날개 조각이었으나 이들은 쩝쩝거리는 소리까지 내어가며 뼛조각까지도 핥고 있었다. 닭날개 하나씩을 뜯은 우리는 다소 떳떳한 표정으로 계산대 앞에 서비스로 놓인 커피 통에서 커피를 한 잔씩 더 따랐다. 사람 좋아 보이는 뚱뚱한 계산대의 아낙은 그런 우리를 보고는 딴소리는 하지 않았으나 시선은 여전히 일행의 아래위를 훑고 있었다.

자동차는 어두워진 정글 사이의 길을 달려갔다. 사바나 지형에서 열대우림 지대를 지나 이제는 완전한 깊은 정글 숲이었다. 좁게 난 길의 양쪽으로 하늘을 가리고 솟아있는 정글 수들의 위로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휘영청 둥근 달까지 솟아오르고 있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와~!’ 하는 낮은 탄성을 질렀다. 이내 하늘을 가득 메운 별들과 둥근 달이 깊은 정글 숲의 밤 운치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작은 청년이 다시 선두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살바도르에서부터 젊은 축이 모인 파티장이라면 어디서나 흘러나오던 단골노래로 대머리 사내와 나를 제외한 일행은 모두 큰 소리로 목청껏 부르고 있었다. 노래의 가사에는 브라질의 토속주인 카샤샤, 핑가, 그리고 마리화나가 소절마다 섞여서 반복되며 튀어나오고 있었다. 꺽다리청년이 노랫말을 설명해준다.

“일하기 싫어! 일은 왜 해! 카샤샤와 핑가만 있으면 돼! 그리고 마리화나…….”

언제부턴가 트럭 두 대가 갑자기 나타나선 앞뒤로 우리가 탄 차를 사이에 끼워 넣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호위하듯 달리고 있었다. 우리 차가 좀 빨리 달린다 싶으면 역시 두 대의 트럭도 속력을 내어 간격을 유지했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은 인적 드문 정글 길로 무장 강도 등이 자주 출몰한다는 지역이었다. 때로는 지나는 정기버스가 통째로 털린다고도 했다. 일행의 노래는 그쳐 있었다. 어느 누구도 말은 하지 않고 있었으나 앞뒤로 간격을 유지하며 함께 달려가는 두 대의 괴트럭에 신경이 모아지고 있었다. 운전사 역시 신경이 쓰였던지 속도를 더하고 늦추며 두 대의 트럭으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바싹 가까이 다가온 트럭의 안을 유심히 살폈다. 혹시 총기 등이 보이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라이트 불빛에 가려 안쪽은 몇몇 사내들의 윤곽만이 설핏 보일뿐이었다.

생각한다. 만약 저 차들이 무장 강도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를…….

‘우선 캄캄한 정글 숲이니 차가 멈추면 중요한 몇 가지가 든 가방만을 들고 정글 속으로 들어간다. 바닥을 기며 숨어들겠지만, 만약 잡히면 내용물을 다 꺼내 보이고 현금만을 건네주기 위하여 노력한다. 여권과 신용카드, 그리고 일기장과 그동안 찍은 사진 등만은 어떻게든 그들에겐 필요치 않음을 설명하여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이런저런 대처방법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글의 어느 쪽으로 달아나야 할까를 눈으로 살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정글을 살피자니 좀 전까지는 아름답기 그지없던 휘영청 둥근 달이 거슬려왔다. 숲으로 안전하게 숨어들어 가기에는 달빛이 너무 밝았던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 반 정도를 불안하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달리던 두 대의 괴트럭은 마침내 우리를 앞질러 사라져 가고 있었다. 혹 어디에선가 우리를 기다리며 길을 막고 섰지는 않을까 싶은 걱정이 남기는 하였지만 일단은 우리의 시야에서 트럭이 사라지자 “휴우~!” 하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꽁무니에 구겨져 있던 우리는 서로 말 없는 시선을 교환하며 미소를 짓는다. 아마도 이들은 모두 나와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작은 청년이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깊고 깊은 정글 길이다. 높게 균형을 이루며 솟아있는 정글 숲의 사이사이로 삐죽이 한 그루 더 높이 외롭게 솟은 나무들이 달빛을 받아 그 윤곽이 아스라한 고독의 아름다움으로 느껴진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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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라틴아메리카 일주-적도에서 정글속으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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