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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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최고의 휴양지 나탈의 전경.
   
요트를 설치하는 남자와 수영복을 입은 여인.
   
해변에서 한가로이 독서삼매에 빠진 여인의 모습.
   
선착장에서 배가 출발하기 전 풍경.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
   
 
   
 
버스로 스물 두시간 만에 브라질 최고의 휴양지 나탈에 도착한다. 리우그란데 두 노르테 주의 주도로 푸른 바다와 바다로 들어온 호수, 맑은 날씨가 유명하다.

또한 포텡기 강 하구의 무역항으로 목화와 설탕, 피혁류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1597년 건설되어 한 때 네덜란드인이 점령한 바 있다.

시내버스를 타고 관광안내소에서 받은 지도를 펼쳐 보이며 숙소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더니 기사와 조수가 사람 좋게 웃으며 서로 상의를 하고는 40여 분을 달려 어느 한산한 바닷가 마을에 내려준다. 골목 안쪽에 중세의 성 같이 지어놓은 호스텔이 보인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분위기에 미리 짐작은 했지만 꽤 비싸다. 도미토리 침대 하나에 40헤알, 약 20달러이니 가난한 여행자로서는 들기 힘들다. 보다 싼 곳을 찾아 해안가를 한 바퀴 돌아 다른 곳을 찾는다. 여기는 30헤알. 좀 깎으려 했더니 무뚝뚝한 여주인은 전혀 융통성이 없다. 은근히 오기가 발동해 이미 어둠이 내리고는 있었으나 더 안쪽의 해안으로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야자수열매를 꼭지를 따서 마신다. 딱딱한 껍질 안에 가득 담겨있는 시원한 열매의 즙이 땀으로 젖은 몸을 식혀준다.

다시 시내버스를 타니 작은 미니버스가 미어터지게 사람들이 가득 차있다. 커다란 배낭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자리에 앉아있는 한 소녀의 무릎에 올려둔다. 소녀가 웃고는 있으나 대단히 불편하고 무거운 것 같다.

아무런 정보가 없으니 그저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한다. 사람들이 모두 내린 다음 종점에서 내리니 바로 푼타네그라 해안이다. 막 문을 닫고 있는 기념품 가게의 청년에게 숙소를 물으니 친절하게도 직접 안내하겠다고 나선다. 청년은 시종 영어로 말을 걸어오며 언덕 쪽에 있는 ‘포사다’라 부르는 싼 숙소들을 안내한다. 내가 비싸다고 고개를 흔들자 다시 다른 언덕으로 올라가 마지막이라며 한 집을 가리킨다.

담장 옆의 파라솔 밑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담소 중이던 중년 부부가 대문을 열어준다. 화장실 딸린 독방에 아침식사까지 포함해 25헤알이란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 숙소라기보다는 민박집인 셈인데 손님은 나밖에 없다.

저녁을 못 먹었다고 하자 이 집은 레스토랑도 겸한다면서 조용하던 집안이 부산해진다. 아래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깨끗한 식탁보가 깔리고 포크와 나이프 세트가 차려진다. 이어서 곧 싱싱한 야채샐러드와 얼큰해 보이는 붉은 소스에 조려진 생선과 금방 지은 밥이 나온다. 값에 비해 황송하게 잘 차려진 식탁이다.

펭귄이 그려진 ‘안타락티카’남극맥주 한 병을 반주로 삼고, 테이프를 끼울 수 있는 소형 카세트가 눈에 띠어 한국에서 유일하게 가져온 지금은 중풍으로 쓰러져 계시는 소림선생님의 대금산조 테이프를 끼우고는 밥을 먹는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검은색의 밤바다가 조금씩 살이 오르는 달빛에 반짝인다. 오랜만에 맛보는 달콤한 저녁식사다. 모처럼 듣는 선생님의 대금산조의 가락이 대서양의 바다정취와 함께 혼자 하는 저녁식사의 운치를 더한다. 누구라도 함께 있었으면 하는 외로움이 잠시 스친다.

아침이 되자 주인아저씨가 식사가 차려졌다면서 방문을 두드린다. 안쪽 식당에 뚜껑 덮인 그릇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데, 손님이라고는 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일, 햄, 샐러드, 빵, 치즈, 케이크 등이 깔끔하게 차려져 있다. 웬만한 호텔보다 훨씬 낫다.

바깥의 야외 테이블에서 먹어도 되느냐고 묻자 아저씨는 다시 새로운 식탁보를 꺼내와 깔아준다. 이미 깔려 있던 어제의 것도 괜찮다고 했으나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며 정성껏 식탁을 다시 차려주신다.

부부는 포르투갈 사람으로 온 가족이 이곳으로 이사 온 지 2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아저씨 손으로 직접 이 집을 지었는데, 처음에는 어찌나 뱀이 많은지 몇 년 동안에 200마리 이상은 족히 잡았다고 한다. 부인과 시선을 주고받으면서 큰 것은 7미터가 넘는 것도 있었다고 설명해준다.

뱀이라면 나도 많이 잡아봤다. 강원도 산골 생활을 시작한 후 처음에는 뱀을 만나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놀라 줄행랑을 쳤으나 내가 그곳에서 살려면 주위의 뱀을 소탕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강원도의 깊은 산속인지라 눈에 뜨이는 뱀들은 대개가 맹독을 지닌 살모사들 이었다. 그래서 스스로 살생의 경계를 정해두고서는 집주변의 그 경계 안에서 뱀을 만나면 눈에 띄는 대로 가급적이면 단매에 고통 없이 잡아서 불에 태우거나 땅에 묻고는 티베트 식으로 뱀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뱀을 그렇게 잡은 뒤로는 한동안 스스로 기분이 찜찜하다.

하지만 불가의 식으로 생각 한다면 그것의 몸 벗는 것을 도와주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로를 한다. 다음 생엔 보다 좋은 몸 받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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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땅 라틴아메리카 - 브라질 나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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