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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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최일순 여행작가] 급히 다시 준비한 파타고니아 여행팀마저 깨지고 만다. 한국에서 홍보가 잘 안 되어 정원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우려하던 것이 현실로 나타나니 허탈하기 그지없다. 이제부터는 정말 최저 생활비로 살아야 한다. 통장에 얼마 남지 않은 돈이 자꾸 줄어든다.

 

살바도르.jpg▲ 살바도르에 내리는 석양 (사진=최일순 여행작가)
 

남아메리카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물가가 비싼 브라질을 떠나 다시 여행길에 오른다.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 멕시코까지 가기로 대략의 루트를 정한다.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은 살바도르다. 브라질의 초기 수도로 신대륙의 첫 번째 노예시장이었다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도시다. 하지만 르네상스 양식의 뛰어난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라있다.

 

바이아 주의 주도이기도 한 살바도르까지는 버스로 30시간 거리다.

 

짙은 회색구름 위로 해가 간혹 얼굴을 비치기는 했으나 우중충한 날씨는 언제라도 비를 뿌릴 기세다.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회색빛의 상파울로 시가지를 멀리 바라다본다. 무거운 잿빛의 하늘만큼이나 마음이 묵직하게 울려온다. 8개월이나 9개월 후쯤 이곳으로 다시 돌아 올 것이다. 그 기간을 버텨 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살바도르로 가는 버스 기사가 짐칸에 들어갈 짐의 무게를 단다. 30킬로그램까지는 무료다. 그렇지만 비행기도 아니고 버스에서 짐의 무게를 달아 보는 것은 처음이다. 내 배낭은 아직 21.5킬로그램이다. 잠시 눈치를 보다가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보조가방을 들고 저울 위에 올라가 본다. 74.5킬로그램. 날마다 빈 몸뚱이 위에다가 10킬로그램 이상의 허울을 쓰고 다니는 셈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 허울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나는 느낌이다. 불가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 개개인이 지고 가는 짐의 무게만큼이 그의 업장이라는.

그 업장을 내려놓으려면 가진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욕심이고 또 무엇이 욕심 아니란 말인가! 지고 다니는 세월 또한 무겁기만 하다.

 

브라질은 지금 장마철이다. 곳곳에 폭우가 쏟아지고 물난리가 난다. 고속도로를 벗어난 버스가 산을 내려가 아래쪽 길로 접어들자 도로옆 계곡의 강이 무섭게 범람하고 있다. 산사태로 붕괴된 산의 흙들을 불도저들이 치우고 있다. 버스는 몇 차례나 멈춰 서 도로를 뒤덮고 있는 토사를 걷어낼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강변에 기둥을 세워 물위에 띄워 지은 집들에서 사람들이 나와 기둥으로 차올라오는 붉은 물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밤새 한잠도 못 잔 것 같은 사람들은 이대로 비가 몇 시간만 더 내린다면 어디로든 집을 버리고 대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왜 하필이면 물가에다가 집을 지었을까 궁금했다. 어쩌면 저기에 어머니의 무덤을 쓰고 비올적마다 울어대는 청개구리형제와 비슷한 이유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내게도 몇 차례 홍수의 기억이 있다. 어릴 적 기억으로는 산간마을의 집집마다 한 두 마리씩 기르던 흑돼지들이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물에 휩쓸려 머리만 내밀고 '꽥꽥' 비명을 지르며 불어난 물에 둥둥 떠가던 것을 재미있어 하며 지켜 본 적이 있다

또 몇 해 전 잠시 자연학교를 운영하던 선배 누이의 여름철 일을 도우며 함께 생활하던 중 홍수로 강이 범람했다. 그 때 작은 배낭에 라면 몇 개를 넣어서 한밤중에 산 위로 도망가던 일이며, 여름철 일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기 전 같은 읍내에 위치한 노인들만 사시는 외갓집에 머물던 날 밤 결국은 불어난 강물에 둑까지 터져 황토물이 읍내 전체를 덮쳐서 온통 망가진 가재도구들을 버리고 며칠 동안 흙을 파내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는 읍내 전체가 마치 전쟁을 만난 듯 폐허가 되었다. 물 무서운 건 그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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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순의 남미여행기] 신화의 땅 '라틴아메리카' - 브라질 '살바도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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