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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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평양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2019년 고은사진미술관 세 번째 해외교류전 시대의 고고학은 슬로베니아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진가 로만 베작의 주요 작업들 중 사회주의 모더니즘평양시리즈를 엄선하여 아시아 최초로 소개한다
66222236.jpg▲ 평양의 모습 ⓒRoman Bezjak, Pyongyang, Arch of Triumph, 2012
 
특히 평양시리즈는 전시의 형태로는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소개된다. 로만 베작은 독일 유수의 잡지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동유럽의 변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기록해왔다. 사진계에서 단숨에 그를 주목하게 만든 사회주의 모더니즘시리즈는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동유럽에 대한 관심과 유럽 사회 내에서 만연한 동구권에 대한 편협한 인식에 대한 문제 제기에서 출발했다. 일종의 건축적 여정으로 부를 수 있는 그의 작업은 현재는 동유럽 각국을 넘어 북마케도니아와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까지 포괄하는 장대한 프로젝트로 계속 확장 중이다.  

3af7.jpg▲ ⓒRoman Bezjak, Pyongyang, 2012
 

건축물은 공통의 경험은 물론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는 하나의 척도이다. 그러나 이미 오래 전의 건축 양식인 모더니즘을 들여다보고 재해석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그가 무엇을 찍었는지에 관심을 갖기보다 그가 어떻게 자신만의 프레임을 구성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사회주의 모더니즘이나 동유럽 건축물과 관련한 작업을 한 다른 작가들과 로만 베작의 작업이 차별화되는 지점은 자신만의 컬러와 사진적 미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차이로서의 시각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은 건축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건축을 생산한 이데올로기와 욕망의 제도에 관한 이미지이다. 그는 단순히 건축의 형태나 독특함 혹은 완성된 하나의 건축물을 포착한 것이 아니라, 동유럽의 모더니즘을 하나의 건축적 어울림과 전체의 조화로서 읽어내고자 했다. 그의 작업에서 사진 이미지를 읽는 동시에 건축을 읽는 이중적인 독해를 수행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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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모더니즘은 대형카메라의 장점을 극대화한 작업으로 평가된다. 적절한 시간과 장소, 모든 흐름이 적합하게 배치되는 순간을 기다려 촬영하는 순간은 고도의 정밀성을 요구한다. 그는 일관된 눈높이에서 실제와 유사한 비율과 거리, 그리고 비슷한 빛과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색채 등 절제된 관점을 적용하면서도 개별 이미지의 다양성과 고유한 특징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동유럽의 모더니즘은 새로운 방식으로 전유된다. 실제 눈높이와 유사한 위치에서 촬영된 궁전과 광장의 고층 빌딩, 백화점, 조립식 주택, 아파트 등은 획일화되지 않는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완벽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상으로서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로서 일종의 현실화된 유토피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만 베작은 이질적이고 다양한 주체가 공존하는 장소이자 제도로서의 헤테로토피아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어둡지만은 않은 미래, 자족적이면서도 익명의 다양한 문화적 잠재성이 공존하는 장소로서의 사회주의 모더니즘은 그가 어떠한 사진적 태도와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말처럼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으되, 어느 정도의 애정과 연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의 주요한 축인 평양시리즈는 로만 베작이 속한 세계의 일부였던 동유럽과 달리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로만 베작의 말처럼 서구의 문화나 세계화의 분위기를 애써 거부하고 있는 평양의 모습은 얼핏 마치 과거로 회귀한 박물관, 박제된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회주의 모더니즘의 독보적인 모델이지만, 고립되어 안팎에서 왜곡된 이미지인 평양이 로만 베작을 통해 아시아 국가사회주의 체제의 특징과 북한 특유의 정체성으로 드러난다. 평양은 한국전쟁 이후의 폐허에서 재건되면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과 북한의 주체사상을 토대로 한 건축의 양식이 혼용되었다. 김일성 광장에서 주체사상탑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축과 그와 평행을 이루며 전개되는 만수대기념비 및 당창건기념탑 등 대동강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중심축이 평양을 관통한다. 이 축을 벗어나면 공동 주택건물과 다양한 시설이 들어서 있다. 평양은 재건 초부터 사회주의 이념에 충실한 자족적 도시의 결합으로 구성되었다. 로만 베작은 이러한 평양의 특징을 종합적인 관점에서 포착한다.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개인숭배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곳이자, 획일주의와 개인주의, 그리고 민족주의와 세계화가 어지럽게 공존하고 있는 평양을 말이다. 

 

따라서 평양에는 여러 건축물은 물론 평양 사람들의 일상과 벽화 그리고 매스게임 등이 담겨 있다. 폐쇄적이고 고립된 공간으로서의 평양이 아니라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장소로서의 평양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선문과 조선노동당 기념탑, 기념 동상, 선전과 선동을 위한 각종 문구들은 거리낌 없이 그 공간을 지나는 사람들과 자동차, 기념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에 의해 장악된다. 매스게임은 무시무시한 획일주의를 강조하기 보다 그 안에서 개별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포착한다. 그는 낯설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 모더니즘에 포섭되지 않는 별도의 시간과 공간을 보여준다. 평양이 이상적인 도시계획을 꿈꾸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감도 그림과 여러 벽화는 이 도시를 일종의 스크린에 투사된 이미지로 만든다. 분명히 존재하는 하나의 실체이자 동시에 이상적인 환영으로서의 이중적인 무대장치인 평양은 하나의 개념으로 정의될 수 없다. 로만 베작은 딥틱의 이미지를 통해 자신이 바라보는 평양이 여러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음을 예시하고 있다. 자신이 촬영한 그 때의 평양 안에서 본인의 시선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프로젝트는 성공한 셈이다 

 

이제는 로만 베작이 남긴 징후들 너머에서 그가 가리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볼 때이다. 로만 베작은 이상사회를 꿈꾸며 규범과 질서를 만들었던 모더니즘이 인간 존재를 어떻게 규정했는지 뿐만 아니라 국가체제와 제도, 사회이념과 질서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인간의 삶이 어떻게 그 안을 꿰뚫고 중첩되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준다. 과거의 흔적을 통해 인간과 삶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의미로서의 고고학이 아니라 동시대의 비약적인 변화의 흐름 속에서 현대의 문화를 읽어낼 수 있는 보다 확장된 개념으로서의 고고학 말이다. 이번 사진전은 11월 20일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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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아시아 최초로 평양시리즈 소개...고은사진미술관 해외교류전 〈시대의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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