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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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오 주민들이 음식을 나눠 먹고 있는 모습. 

티베트와 히말라야 자락 사람들은 길에서 짐승이 죽으면 그 짐을 살아남은 동물과 사람들이 나누어지고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길에서 죽은 짐승은 먹지 않고 극락왕생을 빌어준다.

버스가 산을 넘어가자 뒤쪽 자리에서 누가 갑자기 소리친다.

“우라까부차!”


그러자 버스가 급제동을 하며 멈추고 한 할머니가 여러 개의 보따리를 끄집어 내리고 버스를 내린다. 역시 주변에는 집이나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히말라야 자락의 마을들처럼 아마도 먼 거리를 걸어가야 집이 나타나는 모양이다. 나이 든 할머니가 저렇게 많은 보따리를 이고 지고 어떻게 걸어가나. 아마도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할머니를 위해 누군가 길을 마주 걸어오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로 해발 4070미터의 광산마을 포토시에 버스가 멈추자 나는 수크레 행으로 갈아타고 어두워진 능선 길을 따라 산을 내려간다.


불빛이 반짝이는 수크레가 멀리 보인다. 도시가 가까워지자 차량들이 부쩍 늘어나고, 내가 탄 고물 버스를 쌩하고 지나쳐 승용차 한 대가 위험천만하게 가파른 낭떠러지 길을 질러간다. 꽁무니를 보니 낯익은 한국 차다. 낯선 곳에서 한국자동차를 보면 아는 사람이라도 만난 듯 반갑다. 한국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공산품까지도 성질이 급한가 하는 생각에 홀로 피식 웃음이 난다. 그만큼 성능이 따라주니 저리 빨리 달려갈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늦었지만 다행히 터미널 근처에 유스호스텔이 있다. 깨끗하고도 훌륭한 2층짜리 흰색 건물이다. 포토시 광산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건설했다는 수크레는 헌법상 볼리비아의 수도로 모든 건물을 흰색으로 칠하도록 시의 법률로 정해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볼리비아를 해방시킨 독립영웅 수크레에게 헌정한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깨끗하다.


볼리비아의 쿠마나에서 출생한 수크레는 일찍부터 독립운동에 참가해 볼리바르의 부하로 활약했다. 26세 때 대령이 되어 1822년 키토 부근의 피친차에서 스페인군을 격파하고 에콰도르를 해방시켰다.

이어 볼리바르와 함께 페루로 진격해 왕당군을 격파하고 14년에 걸친 해방전쟁을 종식시켰다. 1825년 2월 볼리비아의 독립을 선언하고, 볼리비아공화국이 성립되자 종신 대통령에 선임되었으나 페루와의 대립 때문에 사임하고 에콰도르로 돌아갔다. 그 후 볼리바르에게 협력해 대콜롬비아공화국(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의 통일을 위해 노력하다가 암살당하고 말았다고 한다.


다음날 시가지를 둘러보니 콜로니얼 풍의 흰색 건물들이 아름답다. 한눈에 시가지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위에서서 아름다운 마을을 내려다본다. 정겹고 조화롭게 꾸며진 블록마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집들이 화려하면서도 우아하다. 하지만 이곳에도 침략의 역사가 배어 있었다. 중심가의 화려한 교회와 청사 건물들은 콜롬비아 이전 시대의 원주민 사원을 헐어 그 벽돌들로 지었다고 한다. 남의 집 부수어 내 집 짓기다. 그것도 자기들 나름으로라도 신성하고 성스러워야 할 교회를 남의 신전을 부수어 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수크레의 재래시장의 모습이다. 잘 정돈된 야채와 과일상점이 시원하게 보인다.

   
 사람들의 왕래가 비교적 많은 시간 시장의 풍경은 우리와 비슷하다.
   
 인디오 전통주 '치자'를 담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
   
 음료수와 술을 팔고 있는 아낙의 모습.

시가지를 조금 벗어나자 규모가 엄청난 재래시장이 나타난다. 야채와 과일, 갖가지 공산품을 파는 노점들이 빼곡한 시장의 한 모퉁이를 돌아가니 아낙들이 양동이를 내놓고 음료수를 팔고 있다. 저잣거리의 활력을 만나니 지친 마음에 새로운 기운이 솟아난다.


손잡이가 긴 바가지로 노인들이 그걸 마시는데 표정을 보니 보통 음료수가 아닌 모양이다. 한술 즐기는 꾼의 본능으로 그것이 전통주임을 감지한다. 갈색 빛이 도는 액체에 옥수수기름이 동동 떠 있다.‘치차’라고 부르는 인디오들의 전통술이다. 옥수수로 만든 동동주쯤 되겠다. 술익는 냄새가 코를 시원하게 간질여온다.


한 잔에 우리 돈 백 원이 좀 못 되는 치차를 선 채로 한 바가지 마셔보니 옥수수 향이 톡 쏘는 강한 동동주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모두들 깔깔거린다.


한잔을 더 마시며 취하는 듯 엄살을 떨어주자 주변의 아낙과 노인들이 모두 즐거워들 한다. 더 마시고 싶었으나 생각보다 알코올 농도가 짙게 느껴져 대낮부터 취할 것 같아 두 잔만으로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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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순의 남미여행기] 신화의 땅 '라틴아메리카'-볼리비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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