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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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에 바이올린과 인연을 맺은 강동석은 8세 때 첫 연주회를 해 "신동 바이올리니스트"가 나타났다 는 말을 들었다. 그후 12살 때 동아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고, 중학생인 13세의 나이로 도미 1967년 뉴욕 줄리어드 음악학교를 거쳐 커티스 음악원에서 이반 갈라미언에게 사사받았다. 

그 후 1971년 17세의 나이로 미국 음악계가 가장 주목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재단 콩쿠르와 워싱턴의 메리웨더 포스트 콩쿠르에서 연이어 입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케네기 센터에서의 데뷔 연주회와 세이지 오자와와의 협연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세계적인 연주자로서 확고한 기반을 다져나갔다. 그의 재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세계 3대 바이올린 콩쿠르인 몬트리올 콩쿠르, 런던 칼 플레쉬 콩쿠르, 브뤼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를 차례로 석권하며 그의 명성을 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강동석의 음악적 재능은 이렇게 세계무대에서 빛났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과 협연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연주했다. 미국의 한 평론가는 일찍이 강동석의 연주가 파가니니, 크라이슬러, 엘만, 하이페츠로 이어지는 거장 바이올리니스트의 정신을 전달해 주며, 훌륭한 음악이 새로운 거장을 만났을 때 어우러지는 신비의 영역에 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2000년부터 한국에서 ‘간염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콘서트’를 8년째 열고 있다. 그가 매년 이 연주회에 나서는 까닭은 '만성 B형 간염의 심각성을 알리고 환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만성 B형 간염퇴치 명예대사로 위촉된 이후 희망콘서트를 거른 일이 한 번도 없다. 그밖에 사랑의 바이올린 음악회를 통해 그는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구입해서 직접 전달하고 레슨과 연주회를 하고 있다. 파리가 아닌 한국의 불우한 어린이를 위해서 홍보대사로 나선 것이다.  

그의 활동은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았다. 해마다 어김없이 행사가 있는 달에는 한국에서 어린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이를 지켜본 프랑스의 유명주얼리 회사인 쇼메가 그에게 제3회 ‘쇼메 뮤직 어워드’ 상을 수여했다.‘쇼메 뮤직 어워드’는 음악 등 문화메세나에 관심이 많은 프랑스의 주얼리브랜드 쇼메(CHAUMET)가 한해 동안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을 펼친 음악인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그에게 한해도 빠지지 않고 자선 콘서트를 하는 이유와 보람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음악을 통해 어린이들이 꿈을 키웠으면 좋겠어요. 음악을 하고 싶어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척 안타까워요. 그래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되었고 간염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적극 나서게 되었습니다. 보람은 그들이 내 연주를 듣고 환하게 웃을 때 나와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입니다.”  

그에게 바이올린보다 좋아하는 것이 있을까? 생뚱맞은 질문이 떠올랐다.  

“가족이죠. 하지만 바이올린은 나의 분신입니다. 바이올린은 신비롭습니다. 정말 매력적입니다. 휴먼 보이스에 가장 가깝고 수백 년 된 악기의 소리를 현대의 과학이 풀지 못할 정도로 비밀스럽습니다. 바이올린은 나에게 세계의 명곡을 알려줬고 수많은 거장들을 만나게 해줬고 앞으로도 더 많은 세계를 조우하게 만들어 줄 친구랍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음악수준과 환경이 유학을 떠나던 40년 전보다 훨씬 좋아졌고 그래서 연주할 때 보람도 크다고 말한다.  

“청중과 하나가 될 때 내가 존재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죠. 최선을 다해서 연주하면 청중들도 그것을 알고 소통하게 되는데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그처럼 음악가로 성공하기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는 아직 성공한 게 아니라면서 웃는다. 

“음악은 완성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성공도 없다고 생각해요. 세상적인 성공과는 차이가 있죠. 음악 하는 후배들이 자신의 틀을 만들고 기한을 정하는데 음악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에요. 기계적인 것과는 다르죠. 자신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습하면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됩 니다.”  

거장은 무엇보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의무감이나 유행에 민감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자신의 이름은 복사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학기가 시작하는 3월 다시 한국에 돌아오면 강 교수는 간염퇴치 명예대사로서 전국 투어 콘서트와 사랑의 바이올린음악회의 홍보대사 활동 그리고 서울스프링페스티벌에서 감동적인 연주를 선보일 것이다. 그는 올해도 변함없이 비발디와 드보르작 그리고 차이코프스키가 된다. 바흐도 되고, 사라사테와 윤이상도 될 것이다. 그만큼 그는 작곡가의 의도대로 작품을 해석해 관객을 사로잡는 힘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거장도 이제 이틀 후 바이올린을 들고 프랑스 파리의 집으로 돌아가면 그는 평범한 아버지와 남편이 된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아내 마르틴 슈트헤른과 딸 인아를 데리고 산책을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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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이 사랑하는 음악의 여행자- Virtuoso ‘강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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