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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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민희식 기자] 이탈리아 카프리 섬으로의 여행. 누가 마다하겠는가. 더구나 3박 4일 동안 푹 쉬다 오는 여행이라면. 아주 드물긴 하지만 가끔 이런 여행은 보너스처럼 찾아와주니 설레지 않을 수 없다.
2013-06-28 11.52.18.jpg▲ 카프섬 전경
 
꿈의 카프리 섬으로 향하기 위해 파리에서 1박을 하고 나폴리로 떠났다. 이번 나폴리 방문은 정확히 16년 만에 두 번째다. 나폴리 공항에서 카프리행 배를 타기 위해 항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나폴리는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16년 전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달랐다.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찬사가 무색할 정도로 나폴리는 쇠락해가고 있었다.

2013-06-27 20.51.16.jpg▲ 명품숍이 즐비한 카프리의 거리
 
세계에서 가장 맛있다는 피자로 점심을 때우고 나폴리항으로 향했다. 정신없고 지저분한 나폴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항구에 도착하자 앙주와 아라곤 왕조의 성으로 사용됐던 낡은 누오보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나폴리항과 맞닿아 있는 누오보성은 이 도시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를 짐작케 할 정도로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2013-06-28 15.19.16.jpg▲ 카프리 인근에 정박해 있는 요트
 
카프리행 배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나폴리를 바라보고 있자니 도시 윤곽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번성했던 항구답게 그 위용은 대단했다. 비로소 나폴리는 세계 3대 미항으로서의 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폴리는 웬만해서는 낯선 이방인에게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 신화 속 여신처럼 수줍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카프리 섬에서 바라본 나폴리는 밤이 되자 불빛으로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나폴리항에서 한 시간 거리에 위치한 카프리 섬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유럽 부호들의 별장과 명품 숍들이 즐비하고, 파나마 모자로 한껏 멋을 낸 관광객들로 넘쳐났다. 카프리 섬을 운행하는 택시는 모두 특이하게 오픈카의 형태로 개조되어 관광객들의 기분을 한층 고조시켰다. 한 가지 흠이라면 돌아오라 소렌토로’ ‘오 솔레미오와 같은 칸소네 대신 K-POP이 카프리의 깊은 밤에 울려 퍼진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이곳에서도 한류를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과는 전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카프리에서조차 한국 노래가 클럽에서 흘러나오니 말이다.

이탈리아 럭셔리 패션 브랜드가 마케팅 목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VIP들을 카프리에 초대했다. 그곳에 그룹 회장의 별장이 있기 때문이다. 34일 동안 회장이 베푸는 만찬을 즐기고 그가 내준 보트를 타며 진정한 럭셔리의 세계를 경험하기 위한 행사다. 뱃멀미 때문에 다소 고생스러웠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특히 일본사람들 앞에서 촌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다. 한국인으로서 품위를 지키기 위해 크루징하는 내내 갑판 위에서 여유롭게 책 읽는 척하느라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께께묵은 감정일지 모르지만 그들과 묘한 라이벌 의식이 발동했다.

일본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튀는 행동들을 했다. 보트에 오르면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윗옷을 벗어던지고 샴페인 잔을 서로 부딪쳤다. 구릿빛 피부를 자랑하듯이 보트 위에서 그들은 스스럼없이 행동했다. 마치 이런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은 일본에서도 늘 해오던 것처럼 익숙하다는 것을 애써 강조하려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구명조끼 없이 보트에서 바다로 직접 뛰어들며 수영을 즐겼다. 수영 솜씨가 적어도 냇가에서 멱 감던 수준과는 달랐다.

나는 윗옷을 벗다가 이내 다시 입었다. 드러내기에는 내 속살이 너무 뽀얗다 못해 허여멀겠다. 한마디로 백면서생이 따로 없다. 그런 내가 창피했다. 이번 여행에 함께한 후배의 옆구리를 찌르며 바다에 안 들어가냐고 물었더니 무섭단다. 그도 창피했을까? 우리는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보트 갑판 위에서 책장만 만지작거렸다.

일본사람들과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지만 서로 거리감을 좁히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와 동갑인 한 일본사람가  저녁 식사를 하면서 한류를 화제로 한참 수다를 떨었다. 아내는 한국 드라마에 푹 빠져 있고 딸은 한국 아이돌 가수에 열광한다면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기는 솔직히 카라를 좋아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34일은 꿈같이 흘러갔다. 4일째 되는 날 아침, 서둘러 짐을 꾸려 체크아웃하고 호텔방을 나왔다. 내 손엔 파나마 모자가 들려 있었다. 카프리에 도착한 첫날 이곳 분위기에 동화하기 위해 파나마 모자를 샀다. 카프리에는 이곳만의 룩이 존재한다. 파나마 모자에 흰색 리넨 셔츠 그리고 하프 팬츠가 그것이다. 한마디로 지중해 패션이다. 하지만 파나마 모자는 이내 애물단지가 됐다. 보트에서도 그렇고 회장 별장에 초대받았을 때도 나는 파나마 모자를 쓸 기회를 찾지 못했다. 모두들 보트를 탈 때를 제외하곤 파티장에라도 나설 듯이 요란스럽게 차려입었다. 나 역시 재킷에 포켓 스퀘어라도 꽂아야 했다. 파나마 모자를 쓸 기회는 보트를 탔을 때인데 바닷바람 때문에 모자가 날아갈까 봐 손에 들고 있어야 했다. 모자는 프리 사이즈라 안타깝게도 내 머리에 맞는 것이 없었다.

결국 파나마 모자는 지금 우리집 안방 서랍장 위에 그림처럼 모셔져 있다. 그 모자만이 내가 카프리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을 뿐이다. 모자를 볼 때마다 카프리는 준비된 자들만이 즐길 수 있는 섬이라는 사실이 떠오른다. 평소 선탠도 하고 수영도 해서 몸을 만든 다음 카프리 섬에 재도전해볼 생각이다. 교양도 오랜 세월 독서와 자기 성찰을 통해 쌓이듯이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도 축적된 노하우 속에 자연스럽게 몸에 밴다는 사실을 이번 여행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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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카프리, 이탤리언 럭셔리를 경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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