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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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민희식 기자] 이탈리아 피렌체는 르네상스 발상지로 무척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피렌체에 대한 내 기억은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로부터 출발한다. 개봉한 지 10년도 훨씬 더 된 영화지만 아직도 또렷이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 배경지인 피렌체의 낭만적인 풍경이다. 영화 자체는 지루하고 답답했다는 기억밖에 없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주인공 준세이가 두오모 성당의 돔에 올라 딱 트인 피렌체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연인을 기다리던 장면은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이 영화 덕분에 내 버킷 리스트가 하나 늘었다. 그것은 두오모 성당에 올라 주제곡인 ‘The Whole Nine Yards’를 들으며 피렌체 시가지를 굽어보는 것이다
20140621_104652.jpg▲ 두오모 성당 종탑에서 피렌체 시가지
 
드디어 죽기 전에 반드시 가 봐야 할 도시 중의 하나인 피렌체에 첫발을 디뎠다. 좁은 골목을 따라 시가지에 진입하자 영화에서 봤던 낯익은 두오모 성당의 아치형 붉은 돔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백 년 전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사색에 잠겨 걸었을 거리를 나는 밴을 타고 달렸다. 피렌체는 골목골목마다 중세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20140619_212308.jpg▲ 목가적 풍경의 피렌체 골목
 
도착 첫날, 나는 피렌체를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변을 거닐었다. 호텔을 빠져나와 고색창연한 골목을 비집고 걷다 보니 어렵지 않게 아르노강과 만날 수 있었다. 바람도 좋고 기온도 적당했다. 단테가 이곳을 거닐면서 시상을 떠올릴 만했다. 마냥 걷다 보니 산책 나온 사람들 사이로 14세기에 지어졌다는 베키오 다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단테와 베아트리체가 이곳에서 처음 만나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했다는 바로 그 유명한 다리다. 교각 위에 상가 건물이 겹쳐 지은 독특한 형태의 다리다. 지금 상가에는 보석상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다리 입구에는 관광객들이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을 기리기 위해 채워놓은 자물쇠로 가득하다. 여전히 많은 연인들은 이곳을 찾아와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며 자물쇠를 채운다. 유치하지만 사랑의 열쇠는 세상 어딜 가나 존재한다.
20140620_132443.jpg▲ 노천 박물관을 방불케하는 시뇨리아 광장
 
이튿날 아침 시뇨리아 광장을 향해 길을 나섰다. 그곳에 가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뇨리아 광장에 위치한 시청(베키오 궁전) 앞에 서 있던 진품은 보존상의 이유로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복제품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아무리 복제품이라고 해도 다비드상은 아름다웠다. 우선 5미터가 넘는 크기에 압도당한다. 차가운 대리석에 섬세하게 표현된 근육과 골리앗을 향한 결연한 얼굴 표정은 리얼리티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20140621_105323.jpg▲ 두오모 성당 종탑에서 바라본 피렌체 시가지
 
이런저런 생각 속에 시뇨리아 광장에서 다비드상을 바라보며 점심 식사를 했다. 피렌체에 와서 새삼 느낀 것인데 이곳에서 만든 빵은 아무런 풍미를 느낄 수 없다. 무색, 무취, 어떠한 맛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피렌체에서 만든 빵의 고유한 맛이라고 한다. 이유가 어떻든 이방인 입장에서 보자면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빵이지 싶다.

때마침 피렌체는 피티워모(Pitti Imagine Uomo : 남성복 박람회) 기간이었다. 1년 두 번 1월과 6월이 되면 전 세계 멋쟁이들이 이곳 피렌체로 몰려든다. 피티워모에 참가하거나 바잉(Buying)을 하기 위해서다.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모여들어서 그런지 특히 멋지게 차려 입은 중년 남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번 출장에 동행한 여자 후배 편집장은 너무 멋진 남자들 속에 파묻혀 있다 보니 멀미가 날 지경이라고 앓는 소리다. 피렌체 남자들은 옷 입는 데도 규칙이 있다. 한여름이라도 비즈니스 슈트를 입을 때는 절대 반팔 셔츠를 입지 않는다. 아무리 더워도 긴팔 셔츠 소매를 접어 입는다. 다양한 색상의 치노 바지와 블레이저를 매치해 입는 것도 이탈리아 남자들의 트레이드 마크다. 피렌체는 명실공히 세계 남성 패션의 메카다.

마지막 날, 벼르고 별러서 두오모 성당을 찾아 나섰다. 비로소 내 버킷 리스트가 실현되는 날이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다. 내가 묵었던 호텔로부터 걸어서 10분 거리도 안 될 만큼 가까웠다. 바로 그곳에 <냉정과 열정 사이>의 여주인공 아오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상상과는 달리 두오모 성당 앞은 각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영화 속의 낭만적인 풍경은 말 그대로 영화 속 풍경일 뿐 현실과는 영 딴판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긴 줄도 마다하지 않고 414개의 계단을 걸어서 종탑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죽을 힘을 다해 종탑에 오르니 드디어 피렌체 시가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정말 아름다웠다.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를 실천한 셈이다.

종탑에서 내려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우피치 미술관이다. 그곳에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마주했다. ‘비너스의 탄생은 우피치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 중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다. 우피치 미술관은 중세를 아우르는 방대한 작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를 대표하는 회화 작품들로 유명하다. 한마디로 르네상스 발상지답게 인본주의, 문예부흥의 총본산으로서의 규모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부러웠다.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새삼 떠올랐다. 개최국 이탈리아는 로마 시대부터 르네상스 시대를 거쳐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로 상징되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개막식을 통해 이탈리아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 만방에 유감없이 과시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콘텐츠의 힘이다. 이탈리아가 명품의 나라가 된 것도, 피렌체가 세계인들의 버킷 리스트가 된 것도 그곳에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가 풍부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매달 콘텐츠 생산해내야 하는 사람으로서 이탈리아는 분명 부러운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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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나의 버킷 리스트 피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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