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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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한지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전주한옥마을의 입구.
 
   
전주한지문화축제를 알리는 방이 경기전의 돌담 벽에 붙어 있다.
2010 전주한지문화축제가 지난 5월 1일부터 5일까지 경기전과 전주 한옥마을 일대에서 진행되었다.

올해로 14번째를 맞이한 이번 한지문화축제는 ‘전주한지, 한바탕 어울림’이라는 슬로건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다. 특히, 같은 기간에 열리고 있는 ‘전주국제영화제’와 맞물려 관광객들에게 영화와 한지문화를 동시에 알리는 시간이었다.
천년 전통의 혼이 살아 있는 전주한지의 우수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 하기위해 축제의 한 복판으로 들어가 보았다. (하지만 확인 한 것은 한지의 우수성만이 아니었다.) 
 
축제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서는 차를 주차시키는 일이 먼저였다. 전주한옥마을 일대와 경기전 주변은 차를 타고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급할 것이 없었기에 천천히 전주의 상징 중 하나인 전주 풍남문 주변을 돌다가 결국 바람에 나부끼는 콩나물 국밥집 현수막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학창시절 새벽에 풍남문 근처에 있는 남부시장 콩나물국밥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추억의 콩나물국밥집에서 길을 잃다
   
추억의 남부시장 콩나물국밥집을 떠올리며 찾아간 음식점의 가스불 위에서 콩나물국밥이 끓고 있다.
대한민국 그집 콩나물국밥(대표 유종성)이란 간판이 추억의 실밥 한 쪽을 잡아당기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시장사람들조차 그 콩나물국밥집의 존재를 몰라서 한 참을 헤매다 겨우 찾아서 들어간 국밥집은 추억의 그 집이 아니었다.
 
콩나물국밥만 20년을 했다는 주방장 아주머니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나왔을만큼 실망스러운 분위기였다.  사장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소문난 콩나물국밥집을 만들기 위해 이름을 대한민국 그집 콩나물국밥으로 지었다고 한다.
 
그래도 맛으로 승부하는 게 음식장사니까 한 번 기다려 보았다. 마침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가스불에 끓고 있는 콩나물국밥은 제법 맛이 있어 보인다. 가만, 그런데 콩나물국밥이 왠지 이상하다. 왜 콩나물만 보이는 것일까?
 
   
콩나물국밥 상차림
전주식 콩나물국밥은 밥이 국 안에 들어 있어야 한다. 주방장 아주머니의 실수였다. 사진이 잘나올 것 같아서 밥을 뺐다는데 석연찮음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와 함께 콩나물국밥은 추억 속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이쯤에서 반전이 있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냥 끝이다. 물론 밥을 넣고 제대로 끓인 콩나물국밥을 먹지 않았으니까 맛이 좋다 나쁘다를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기대했던 추억속의 그 콩나물국밥집이 아니었을 뿐이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된 풍남문
   
전주 풍남문은  상시 개방되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풍남문은 1층은 앞면 3칸, 옆면 3칸, 2층은 앞면 3칸, 옆면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주 풍남문에 걸려 있는 현판액자.
콩나물국밥집을 나오자 마자 시야가 넓어지면서 눈 앞에 커다란 성문이 보인다. 바로 보물 제308호인 풍남문이다. 로터리 역할을 하고 있는 풍남문은 얼핏 남대문과 비슷하나 역시 많은 차이가 있다. 크기와 양식 등 아주 많은 부분이 다르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역사적유물인 만큼 사전에 있는 내용을 인용한다. 풍남문은 일반적인 성문과 마찬가지로 성벽의 일부를 형성하는 석축기대(石築基臺) 중앙에 홍예문이 있고 그 위에 중층문루(重層門樓)가 있다. 1층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2층은 앞면 3칸, 옆면 1칸이다.
 
1734년(영조 10) 성의 시설이 낡아서 수축할 때의 공사 내역을 기록한 조현명(趙顯命)의 〈명견루기 明見樓記〉에 의하면, 이 성문은 조선 초기에 도관찰사 최유경(崔有慶)이 축성했다고 한다. 처음 성(城)을 수축할 때 남문 위에는 명견루(明見樓)라는 3층 문루가 있었는데, 1767년 3월 화재로 소실되자 그해 9월부터 관찰사 홍낙인(洪樂仁)이 재건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현재의 모습처럼 2층 문루가 되었으며 풍남문이라 불렸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대부분의 성벽과 나머지 3개의 성문은 자취를 감추고 이 문만 남게 되었다. 다행히 1978년 중수공사 때 풍남문 양쪽에 있었다는 포루(砲樓)와 종각(鐘閣)을 옹성(甕城)과 함께 복원했다. 문루의 1층에 앞뒤로 4개씩 세워진 높은 기둥은 2층의 변주(邊柱)가 되었는데 이러한 기둥 배치는 우리나라 문루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현재 풍남문은 전주의 상징이고 ‘명견루’라는 별호가 있다.
 
풍남문을 중심으로 전주남부시장과 한옥마을이 연결된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 풍남문의 분위기가 칙칙할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쨍한 날씨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풍남문 앞의 조그만 잔디밭에 소풍 나온 외국인과 한국인 여대생 그리고 연세 지긋한 노인 몇 분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 때문에 풍남문은 무척 생기가 있어 보였다.
 
서행을 하는 자동차들이 풍남문 주위를 돌면서 단조롭지 않은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였다. 매연을 뿜어내는 차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제법 멋진 분위기도 연출되었다.
   
풍남문 앞에 있는 교통표지판에 전주한옥마을 표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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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전주 한지문화 축제의 한 복판으로 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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