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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幻聽으로 나에게 온 물고기

고운 최치선

▲ 여수 엑스포 O 쇼의 한 장면  [사진: 최치선]

물비린내 나는 대학로 연못에는 물이 없었다 바닥까지 말라버린 연못은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이리저리 천덕꾸러기처럼 어울려 있을뿐이다 한쪽에서는 포크레인의 육중한 삽이 연못을 파헤치고 있는데 어디선가 비늘 터는 소리가 들린다 비둘기의 푸드득 하는 날개 짓과는 확연히 다른 철썩거림이다 환청이겠지 무시하고 코를 막는 순간 좀 더 명료하게 들리는 파닥거림이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허리를 활처럼 휘어서 물고기의 형체를 찾는다 그러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물이라곤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는 연못에 무슨 물고기가 있단 말인가 잠시 한 눈을 팔았나 보다 그럼 그렇지 일어나 걷는데 가늘게 이어지는 소리 분명 연못에서 나는 소리다 기어이 내 발 붙드는 정체 알고 싶어 더 깊숙이 허리를 숙이고 살펴 본다 순간 섬광 같은 게 생겼다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부싯돌이 서로 부딪쳤을 때 번쩍거리며 내는 짧은 불꽃 같았다 내 눈과 연못 귀퉁이 그늘진 곳에서 나를 노려보는 눈이 소리없이 충돌한 결과였다 하나의 눈이 다른 눈을 볼 때는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하얀 금붕어 한 마리가 바닥에 살짝 흔적처럼 남아있는 물을 의지하며 꼿꼿하게 지느러미를 세우고 있는 모습은 여기서 이렇게 죽을 수 없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 같았다 금붕어의 두 눈은 이승과 저승의 중간쯤에 걸쳐진 애매모호한 다소 몽환적인 상태로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 보았다 구부정한 자세에서 금붕어의 시선을 받아내던 내 눈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은 그 때였다 눈이 사라진 자리에 날 노려보던 금붕어의 눈이 와서 박혔다 그 눈을 통해 살점들이 떨어져 나가고 온 몸의 피가 빠져나가고 뼈만 앙상한 물고기가 된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닥에만 살짝 물기가 있을 뿐인 연못에서 살기위해 앙상한 꼬리뼈를 흔들며 바둥거리는 한없이 불쌍한 물고기가 있었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른다 지나가던 도둑고양이가 아무렇게나 뜯어먹고 버린 내 살점들처럼 누군가 내 뼈를 여기에 무단투기 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본다 문을 닫고 집을 나올 때만해도 생선 비린내를 싫어한 내가 뼈만 앙상한 물고기가 될 줄 알았을까 하지만 살과 피가 없는 물고기가 진짜 물고기일까 심연에서 올라오는 물고기의 조상은 약 6억 년 전에 바닥을 기어 다녔다는 갑각류물고기라는데 어쩌면 지금 내가 그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이 실타래처럼 이어질수록 바닥은 점점 말라가고 있다 수직으로 내려치는 파열음이 상상의 두꺼운 껍질을 깨버렸을 때 비로소 내 눈은 다시 물고기로부터 돌아 올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또 하나의 눈을 찾아보니 말라버린 연못의 바닥에 등지느러미를 바짝 세운 채 미라가 된 흰 금붕어 한 마리 선 듯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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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幻聽으로 나에게 온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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