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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은갈치의 마지막 독백

사람들이 은갈치를 좋아하는 이유
기사입력 2017.09.2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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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나는 갈치다. 그것도 은빛 찬란한 은갈치다. 집어등 불빛에 반짝거리며 윤기가 흐르는 내 모습을 보면 얼마나 멋진지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완전한 은의 색을 가진 유일한 생물이 있다면 바로 나 은갈치다. 가끔 외모만 번듯하게 잘 빠져서 실속은 없을 거라 속단하는 이도 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눈부신 외모만큼이나 속까지 영양으로 꽉 채운 그야말로 신이 내린 완벽한 몸이시다. 그런 내가 지금 바다에 있지 않고 뭍에 올라와 있다. 그것도 서울 한 복판 지하 스튜디오에서 모델처럼 플래쉬 세례를 받으며 은빛 아우라를 한껏 발산하는 중이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글/진행. 최치선  
사진/정대일

호기심의 끝은 평균수명을 단축시킨다
네이버나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도 소개된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꽤 유명하다. 또래보다 키 크고 몸매도 좋기 때문이다. 내 나이는 이제 3살이다. 우리 은갈치 수컷의 평균 수명이 4살이니까 중년을 넘겼지만 잘생긴데다, 피부도 흠하나 없이 광택이 나서 주위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던 나는 늘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게다가 호기심은 너무나 강해서 처음 보는 것은 무조건 해보거나 만져봐야 직성이 풀렸다. 이런 나의 성격을 늘 걱정하시던 어머니는 사고가 생기던 날도 절대 낯선 불빛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게 어디 한 순간에 고쳐질 일인가.
 
친구들과 함께 멸치사냥을 다니던 나는 멀리서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았다. 잠시 후 친구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어느새 나는 그 불빛을 따라 홀린 듯 헤엄치고 있었다. 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친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 앞에는 그 불빛이 더욱 선명하게 반짝거렸다. 순간 어머니의 말씀이 스쳐지나갔으나 나는 개의치 않고 그 불빛을 향해 마치 풍차를 보고 뛰어든 돈키호테처럼 폼을 잔뜩 잡고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돌진했다. 동시에 내 몸은 수면에서 허공을 가르며 솟구쳤다. 그리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의식을 잃었다.

나를 비롯해 네치(성인손가락 4개를 붙여놓은 넓이) 넓이 정도 되는 성년의 은갈치들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래서 어머니는 언제나 사람조심을 노래 불렀다. 왜 우리들이 인기가 있을까? 선배들이 말해주던 기억이 또렷하다.
우리 몸에 풍부한 단백질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특히 리신, 페닐알라닌, 메티오닌, 로이신, 발린 등과 같은 필수아미노산이 많다. 그래서 곡류를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이 갈치를 먹으면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칼슘 함량이 높아 어린이의 성장에 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DHA도 풍부하여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유익한 먹거리가 된다.
 
내가 제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은색껍질에는 콜라겐과 엘라스틴이 들어 있어 피부미용과 노화방지에도 좋다. 그렇다고 우리들 몸이 모든 사람들에게 무조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이 먹으면 부스럼이 날 수도 있고, 우리를 잡았을 때 표면에는 비늘 대신 구아닌이라는 은색 가루의 유기염기가 손으로 만지면 묻어 나오는데, 날로 먹을 때는 이것을 깨끗이 벗겨내지 않으면 복통과 두드러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반짝이는 이 은색 가루는 인조진주의 광택원료나 립스틱 성분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많았다.
‘칼을 닮은 물고기’의 최후
그들이 우리를 부를 때는 갈치(Trichiurus lepturus)라고 한다. 우리 몸은 아주 길고 납작해 띠 모양으로 누구나 긴 칼을 연상하게 된다. 그래서 ‘칼을 닮은 물고기’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한국인들의 고어에는 ‘칼’을 ‘갈’이라 불렀다고 한다.
일반적인 물고기와 달리 우리들이 옆으로 헤엄치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는 습성때문에 일본에서는 ‘서 있는(立つ) 물고기’라고도 부른다. 영어로도 긴 칼집 또는 휜 단검처럼 생겼다하여 스캐버드 피시(Scabbard fish) 또는 커틀러스피시(Cutlass fish)라고 부르며,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긴 꼬리를 보고 헤어테일(Hairtail)이라고도 부른다.
 
나와 친구들은 어릴 때부터 몰려다니며 멸치사냥을 즐겨했는데 칼처럼 대부분 선자세로 수면에 떠다니는 멸치떼를 공격하곤 했었다. 우리는 심해성 어종으로 수심 100m 정도의 모래와 펄이 섞인 곳에 살지만, 6~10월의 산란기(주 산란기는 8월)에는 연안 가까운 얕은 곳으로 이동해 물고기들을 잡아먹는다.
 
특히, 내 경우는 식욕이 왕성해 멸치, 비늘치, 오징어 및 새우 등 닥치는 대로 마구 잡아먹었다. 친구 중 한 녀석은 먹성이 너무 좋아서 같은 친구를 잡아먹는 습성이 있어 사람들은 친구들을 미끼로 우리를 잡는데 사용했다. 하지만 우리들도 만만치 않아서 내 이빨의 맛을 한 번 보면 누구라도 항복할 것이 뻔했다. 2살이 막 되어서 성년식을 마치고 조금 멀리까지 나왔을 때 그만 낚시 바늘에 걸린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쳤고 그 때 내 얼굴에 손을 대려는 사람에게 이빨을 드러내 위협했다.
 
급기야 커다란 입을 벌려 그 사람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그러자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화들짝 놀란 나머지 나를 바다 속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그렇게 위기탈출을 한 나는 한동안 사람들을 경계하면서 고깃배 주위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나를 맛있게 먹는 3가지 방법
내가 태어난 곳은 제주도 앞바다. 정확히 말하면 성산포라고 할 수 있다. 성산포 은갈치 하면 명품갈치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서귀포 사람들은 갈치를 재료로 갈치구이·갈치조림·갈치국 등을 만들어 먹는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어종인 우리와 멀리 목포 갈치로 유명한 ‘먹갈치’ 또한 태생이 같은 동료다. 우리가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먼 바다로 나가 조업을 하는 유자망 어선이다. 그물 무게만 8톤이고 바다에 이 큰 그물을 펼쳐 갈치를 잡는 조업 방식이 유자망의 특징이다.
 
유자망에서 잡아 올린 갈치는 채낚기 어선에서 잡은 우리 친구들과는 그 색깔부터 다르다. 그물에 서로 뒤엉켜 입가 쪽이 검은 빛을 띠고 있다고 해서 ‘먹갈치’라고 부르는데 친구들 은갈치 보다 비교적 낮은 가격에 거래된다. 이렇게 친구들은 사람들이 잡는 방법에 의해 이산가족이 되고 이름마저 나누어진다. 그 피해는 주로 8월에서 11월 사이에 대부분 집중된다.
 
우리들의 수명은 전 세계적으로는 최대 15세까지 살고 키는 2m를 넘는다고 알려져 있으나, 여기서 보통 볼 수 있는 최대 크기는 1m 정도이며, 수컷은 4살, 암컷은 6살까지 생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있던 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던 할머니 은갈치는 7살 이었는데 원래는 나처럼 수컷이었는데 2살이 지난 어느 날 암컷으로 성전환이 되었고 그 후 산란을 거쳐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사람들은 우리를 잡으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요리를 해서 먹는다. 우리는 풀치였을 때부터 사람들이 우리를 잡아서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 교육을 받는다. 그래서 더욱 인간들을 두려워하게 되고 그들이 타고 다니는 배에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나처럼 호기심이 본능이 되어버린 수많은 우리 동료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채낚기와 그물과 낚시에 현혹되어 잡히고 짧은 생애를 마감하게 된다. 그래서 나처럼 잡혀서 아주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경우는 인간세상에 유행하는 로또보다 더 희박한 확률이다. 대부분의 은갈치들은 잡히게 되면 제 성질에 못이겨 곧바로 죽게 되는 운명이다. 바다에서 멀어지는 순간 거의 99% 이상이 끝난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죽은 후 순서대로 얼음과 함께 아이스박스에 들어가거나 갑판 위에서 횟감이 되어 사람들의 안주가 되기도 한다.
 
아이스박스나 냉동 저장된 동료들은 배에서 내려져 공판장을 거쳐 등급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고 전국 백화점과 수산시장, 음식점 등으로 보내진다. 그렇게 갈 곳이 정해진 후 음식점이나 일반가정에서는 우리들을 일반적으로 토막을 내어 약간의 소금에 절였다가 기름에 튀겨내거나 무를 넣고 적당히 양념한 조림을 해서 먹기도 한다. 물론 살아있을 때 우리를 기절시켜서 비싼 가격에 팔거나 신선한 상태에서 횟감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우리 몸에서 묻어나오는 구아닌 성분은 신선도가 떨어지면 공기 중 산소에 의해 산화되어 쉽게 변질되고 비린내가 나 현지가 아니고서는 회로 해먹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귀하신 몸을 위협하는 방사능
우리가 얼마나 비싼 몸인지 궁금하다면 싱싱한 횟감도 아닌 냉동된 내가 비행기를 타고 올라와 강남의 제일 부자들이 산다는 이 곳 백화점에 입고 된 후 팔린 가격표만봐도 알게 된다. 9만 9990원이란 가격표가 내가 들어가 있는 아이스박스에 붙어 있다. 그래서 지금 이런 호사를 누리는 것인지 모르지만 우리들 은갈치는 불과 두 달 전만해도 이곳에서 금갈치로 불렸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흘러나온 방사능때문에 우리들 제주산 은갈치들마저 도매금으로 외면당하고 만 것이다.
 
조류가 정반대로 흘러서 내가 사는 제주 앞바다까지 오려면 최소 5년이란 시간이 걸리지만 소위 인간들의 건강염려증은 그걸 계산할 만큼 한가롭지 않은가 보다. 아무튼 방사능 덕분에 비싸고 귀한 수산물로 소문난 동료들의 인기가 떨어진 가격만큼이나 급락하고 있어 안타깝다.
우리들을 가장 높은 가격에 팔기 위해서는 은빛 몸에 상처를 내지 말아야 한다. 제주 바다에서 가장 값을 높게 받을 수 있는 조업 방식은 바로 ‘채낚기’다. 채낚기로 상처 나지 않고 귀하게 떠 올려 특유의 은빛광택을 그대로 유지한 은갈치는 최상품이다. 요즘에는 성년이 되지 못한 어린동생들을 마구잡이로 잡는 바람에 우리들의 가격이 평년보다 2배 정도 폭등해 귀한 몸이 된 것이다.
 
유체이탈 한 은갈치 모델되다
이정도 얘기했으면 내가 어떤 존재인지는 대강 짐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가 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느냐이다. 바다에서 내 몸이 이탈되는 순간 나는 죽었다. 어릴 때 할머니한테 들었던 유체이탈이란 걸 한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인간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게 아닌가. 아니다.
 
인간들도 아무나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보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 이 상황이 재밌기도 하다. 만약 다시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구에 존재하는 우리 어종뿐 아니라 모든 물고기들의 신이 될지도 모른다. 내가 알기로는 역사이래 다시 부활한 물고기는 없었으니까. 플래쉬가 터지고 누워있는 내 모습은 고스란히 카메라의 메모리카드 속으로 들어간다. 슬쩍 사진작가의 얼굴을 보니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생각만큼 내 모습이 멋지지 않아서인가?
 
아니면 원하는 구도가 안 나와서인가?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왜 그러지? 조용히 기자와 작가의 대화를 들어보았다. ‘얼음이 녹고 있어요. 갈치 배가 이상해요. 사과가 무거운가봐요. 터지면 어떡하죠?...’무슨소리야. 나는 무엇보다 터진다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뭐가 터진다는 거지? 그러고보니 얼마전부터 가슴이 답답하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다시 유체이탈을 해야 할 것 같다. 누워있는 이자세로는 내 상태가 어떤지를 알 수 없으니까. 농담이다. 이미 나는 유체이탈을 한 상태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입을 반쯤 벌린 채 누워 있는 내 몸을 본다.
 
커다란 사과가 내 배위에 턱하니 올라와 있었다. 도대체 왜 저걸 내 몸에 올려놓은 것일까? 놀라움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감히 내 몸에 이물질을 올려놓다니. 도대체 날 뭘로 보고. 이렇게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는데 사진작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정도면 괜찮은데. 이거로 갑시다.’ 그말을 듣는 순간 사라진 줄 알았던 호기심이 돌아왔다. 뭐가 괜찮다는 건데. 다시 찬찬히 우스꽝스럽게 치장된 내 몸을 살펴보았다. 노란색 소국과 안개꽃 거기다 거봉과 홍로라는 사과로 내 몸을 장식해 준 것이 보인다. 지금 보니 사진작가의 말대로 나쁘지 않았다. 멋진 사진까지 남겼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래 죽어서 이렇게 향기롭고 달콤한 꽃과 과일에 둘러싸여 호강을 누리는 갈치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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