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제목 화폭에 자연의 원형을 담는 작가 김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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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자연의 원형을 담는 작가 김동석

“오기로 시작한 그림, 나와 세상을 힐링시켜 줍니다”
기사입력 2017.10.0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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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61x61Cm 씨앗,스톤젤미디움,아크릴. 2012



평론가 고충환 씨는 김동석의 회화를 이렇게 평했다. “그의 그림은 문학적이고 서사적이다. 그러면서도 생리적으로 소설보다는 시에 가깝다. 말을 걸어오는 방식이 풀어서 설명하기보다는 함축적이고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문법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런 말 걸기 방식은 그림에서도 나타나고 주제에도 반영된다. 이를테면 어머니의 사계(1996)외 연작, 나에게 길을 묻다(2007-2008), 그리고 and 그리다(2009-2010) 등이다.” 지금부터 대지를 화폭에 옮겨 놓는 작업을 통해 존재의 원형을 표현하고 있는 김동석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글·최치선 사진·정대일

자료사진·김동석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림을 하게 된 동기를 묻자 김동석 작가는 큰 고민없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예상 밖의 답에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림을 오기로 그리기 시작했다는 말씀이냐는 질문에 웃으면서 맞다고 한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한 눈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어느 날 뒤통수를 가격당하는 충격을 받았어요. 무슨 연유에서였는지 내가 받은 상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겁니다. 남들 다 타는 1년 개근상이나 선행상도 타지 못했더군요. 그래서 졸업하기 전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반드시 상을 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 작가는 그로부터 얼마 후 학교에서 도내 미술대회에 나갈 학생을 뽑는 다는 사실을 알았다. 평소 그리기를 좋아하던 작가는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자신을 내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미술부도 아닌 학생이 학교 대표로 나가겠다는 말에 선생님은 황당해 하면서 이미 나갈 학생들이 정해졌으니 어렵겠다는 말을 했다.

“그때는 꼭 나가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고 싶었으니까요.”


그러나 아무리 졸라도 선생님은 허락을 하지 않았다. 당시 크게 낙담을 한 그는 대회에 나간 학생들이 얼마나 잘 그리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마침 대회가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열렸는데 소방차들이 물 쏘는 장면을 그리는 것이 주제였다. 그는 그림 그리는 아이들을 하나 둘 살펴보기 시작했다. 특히, 추천받은 아이들을 더욱 유심히 봤는데 누구도 자신보다 잘 그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김 작가는 그 날 상보다 더 소중한 것을 얻었다. 바로 자신감이었다.

중학교에 진학 한 후 김 작가는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운중지월(雲中之月)이었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받은 상은 그림이 아니라 노래였어요. <누가 누가 잘하나>에 출연해서 1등상을 받았거든요.”

김 작가의 끼는 그림에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예술은 통한다 했던가. 그는 노래를 통해 먼저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미술부에 들어간 김 작가는 첫 실기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그 때의 기분은 정말 좋았다.

“미술로 인정받은 첫 상이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후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 나가 입선도 하면서 그림에 대해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어요.” 


▲ 어머니의땅-아름다운 비행53.0X45.5cm 2007스톤젤미디움,켄버스에아크릴


육사의 꿈을 접고 화가를 준비하다

김동석 작가의 꿈은 처음부터 화가가 되는 것이었을까?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렸고 대회에 나가서 여러차례 상도 탈 정도면 화가를 꿈꾸었을 것 같았다.

“아닙니다. 제 꿈은 처음부터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은 오기 때문에 시작했는데 적성에 맞았던 것일뿐 제가 동경했던 곳은 육사였어요.”

세 번째로 의외의 답이 나왔다. 갑자기 그의 머릿 속에 든 생각들이 궁금해졌다.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문과가 아닌 이과를 선택했는데 결과는 좋지 않았어요. 진학상담을 받았지만 성적 때문에 육사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의 상실감은 엄청 컸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좌절감 같은 것이 밀려왔으니까요.”


김 작가는 혼란스러웠다고 한다. 당시 목표하던 꿈이 사라져 버리자 그는 정신적으로 큰 위기에 처했고 방황을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다 문득 새로운 꿈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잘하는 일 바로 그림 그리는 것이었다. 미대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방학 때마다 홍대 근처에 찾아와서 개인교습을 받았다.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떨어졌어요. 홍대에서 살아도 붙기 어려운데 방학 때만 올라와 배우니 한계가 있었던 것이죠.”


그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계예술대에 진학한다. 하지만 등록금을 주지 않자 하는 수 없이 입대를 하게 된다. 제대 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집에서는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했어요. 그래서 등록금을 주지 않으면 스스로 관두겠지 했던가봐요.”

자퇴 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지도교수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고 선처를 구했다. 다행히 휴학처리가 되었고 그는 1년동안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입시를 준비했다. 국민대 의상디자인과에 들어갔으나 맞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 김동석 작가

 우여곡절 끝에 개최한 첫 전시회 용기를 얻다

“첫 개인전은 96년에 열었습니다. [어머니의 사계]라는 주제로 전시를 했어요.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그린 것이었습니다.”


초기 김 작가의 작품은 어머니를 모티브로 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어머니의 사랑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의 생명을 잉태하는 대지 역시 어머니와 같았다.


“첫 번째 전시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전시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화실 보증금을 담보로 제가 대학 때부터 거래하던 은행에 찾아갔어요. 은행지점장을 만나서 사정을 얘기하고 천만원 대출을 받았습니다.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인사동과 순천에서 순회전시를 열었는데 순천전시는 6학년 때 선생님께 인정받기 위한 의도가 컸어요.”


그는 첫 전시기간 중 작품 한 점을 팔았다. 그것도 전혀 모르는 관람객이 자신의 작품을 사겠다고 했을 때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실기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은 이후 그림을 통해 인정받은 두 번째 사건이었다.



“100만원에 작품이 팔렸는데 정말 기분이 이상하더군요. 제 그림이 누군가에게 팔리는 것을 처음 경험했거든요. 그 분 덕에 용기와 희망을 얻었습니다.”

 

땅을 통해 어머니와 자연의 원형을 그리다

김 작가는 지금까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마다 엔돌핀이 솟아 나왔다.

“제 그림은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 많습니다. 캔버스는 대지이고 나무와 꽃, 길, 호수, 바다 등이 만들어지는데 초기작품에서는 황토를 직접 발라 대지를 표현하기도 했어요. 총천연색으로 대상을 그리던 중 문득 인공적인 색보다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콩껍질이나 호두 같은 자연의 재료를 이용해 작업을 하게되었어요. 캔버스도 돌가루를 뿌려서 거친 느낌을 주었죠. 일기장에 쓴 한글을 배경으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한글서체를 만들었는데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것이라 일반인들은 암호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김 작가의 작품성향도 작업 방식에 따라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초기엔 어머니를 주제로 많이 그렸다면 지금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같이 나를 찾는 작품이 많아요. 실제 아이들과 여행을 많이 하는데 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2009년 LA에서 약 1개월간 머물며 전시회를 갖는다. 버질아메리카의 초대로 김동석 개인전을 갖게 된 것이었다.

“전시기간은 물론 전시가 끝나고도 아이들과 여행을 했어요. 가족과 함께 미국이란 나라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죠.”

▲ 어머니의 땅-한반도(91.0X72.7cm)혼합재료

 

여행으로 작가의 시야와 아우라를 넓히다

작가에게 여행은 새로운 동기부여를 제공한다. 작품의 모티브를 얻거나 새로운 소재를 발견하기도 하고 시야가 확대되면서 작품의 성향이 바뀌기도 한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는데 그 중 해외에 나가면 자연을 보면서 색에 대한 개념이 바뀌는 경향이 있습니다. 몽고에 갔을 때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을 보고 놀란 적이 있어요.”

그때 작가는 ‘내가 그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2005년부터 내 작품에서 색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어요. 화이트와 블랙만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이 묻는 거에요. “아빠는 화가인데 색을 쓸 줄 모르냐고”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려다가 문득 아이들은 나의 영원한 팬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이들을 위해서 오방색에 해당하는 황(中), 청(東), 백(西), 적(南), 흑(北)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아빠를 진짜 화가로 인정해 주는 것 같아 작가도 기뻤다.

▲ 나에게로떠나는여행(53X33.3cm)

 

입체적인 작품 속에 세상을 담아내다

작업을 통해 작가의 마음이 드러난다. 그는 작품을 그리는 작가의 혼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작업을 할 때 최선을 다한다. 그렇지 못하면 작품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작품을 만들었다면 그 다음은 관람객의 몫입니다. 내 품을 벗어난 작품은 나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니까요.”


김동석 작가의 작품은 입체적이다. 화면을 평면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입체를 두고 싶어한다. 그래서 공간을 연결하기도 하고 씨앗을 심기도 한다.

그의 새로운 시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그림은 힐링 그 자체니까요. 꿈의 장이고 희망이고 위안이고 위로를 주니까요.”

 

시간의 흔적을 그리며 행복을 얻다

그에게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면서 가장 만족스러웠을 때는 언제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번에도 재미있는 답이 나왔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작품이 나왔을 때 만족감이 가장 큽니다. 신혼 초에 집이 넓지 않아서 방바닥에 작품을 놓고 그리다 잠깐 나갔다 왔는데 처음보는 발자국들이 찍혀 있잖아요. 처음엔 당황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들이 건너가다 찍어 놓은 발자국들이었어요. 그 발자국들을 그대로 살려서 작업을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김동석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분명히 1시간 집중했는데 5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많아요.”라며 털털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행복한 사람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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