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 전체메뉴보기
 




‘청암요’의 장상철 사기장(49)은  ‘제6회 대한민국 올해의 명다기(名茶器) 품평대회’에 ‘귀얄사발’을 출품해
대상과 입선을 차지했다. 故 신정희 사기장의 사돈이자 제자인 장상철 사기장은 전남 해남이 고향으로 “이번 대회를 통해 전국의 훌륭한 사기장들과 함께 좋은 작품들을 많이 감상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을 가지게 됐다” 며 “앞으로도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힐링을 얻고 행복해 질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수상 후 경남 양산 하북에 머물고 있는 장상철 사기장에게 전화 인터뷰를 요청해 사발에 대한 얘기를 들어 보았다. 

 

사발 하나로 한국을 알린 사기장
사발은 우리 선조들이 예부터 밥, 차, 제사상에 사용되던 평범한 생활 용기였는데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 웅천도요지의 도공들과 그 가족들 125명이 퇴각하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면서 가마터의 불이 꺼졌고, 그 명맥마저 중단되었다. 그리고 일제 때 조선 땅에 남아있던 대부분의 사발마저 일본으로 가져가면서 국보급 사발들은 전부 일본인의 차지가 되었다.

“그렇습니다. 일본인들이 수차례의 침략을 통해 우리의 찻사발을 가져다가 예술품으로 격상시켰습니다. 그 결과 거꾸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 오는 형국이 되었지요.” 정상철 사기장은 “우리 선조들의 사발 제조기법이 일제 때 많이 무너진 게 사실이고 반대로 일본은 우리 것을 가져가 일본의 색깔과 모양으로 재탄생시켰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그 격차가 확연히 좁혀졌음을 일본이 인정하고 나섰다.

고 신정희 선생은 임진 난 때 도요토미가 최상의 찻사발로 극찬한 이도다완을 국내 최초로 재현해 냈다. 그 뒤를 이어 선생의 수제자인 장상철 사기장은 지난 2010년 일본작가들도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일본 교토의 노무라미술관 초청을 받아 우리 사발 60여 점을 선보이는 첫 전시회를 가졌었다. 당시 6일간 열린 이 전시회 기간 매일 100여 명 이상의 현지인들이 그의 작품을 감상하러 몰려든 기록을 세우며 미술관 최고책임자인 타니 아키라 관장의 권유로 가장 인기를 끈 작품인 ‛통사발’ 의 영구전시까지 이뤄지면서 ‛사발 하나로 한국을 알린 사기장’ 이라는 칭호까지 생겨났다.

예술품으로 오래 남으려면 景致가 있어야 한다
일본인들이 극찬하고 올해 대상까지 거머쥔 사발은 어떻게 만들까?
“15년간 선생님께 흙과 온도(불)를 전체적으로 배웠습니다. 사발의 종류는 크게 웅천사발, 기안사발, 귀얄사발이 있습니다. 작가마다 좋아하는 흙이 다르기 때문에 사발 또한 다릅니다. 저는 귀얄사발을 주로 작업하는 데 특징은 철분이 많은 흙을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흙이 준비되면 머릿속에 그린 사발을 잘 뽑아낸 후 가마에 구워야 하는데 이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사발은 한마디로 불의 예술입니다. 그곳은 인간의 영역이 미치지 않는 곳이죠. 그래서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여름에는 중성이상의 불로 겨울에는 이보다 센불을 유지하며 굽게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색은 초콜릿 색으로 온도가 중간보다 높을 때 나타나는 색입니다.” 장상철 사기장은 “힘든 과정을 구워낸 사발 중 하나도 건지지 못할 때가 많다”면서 “사발이 하나의 예술품으로 오랫동안 남으려면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 사기장은 또 “도예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위해 도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경제적인 지원도 없고 판로도 없는 사발 작업을 평생 하기란 어려운 게 현실이다”고 털어놓으며 “정부나 지자체에서 반짝 이벤트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우리 문화를 지키려는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릇에 대한 예의가 국격을 높인다
사발 작업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작업이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아 스승님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 지원도 전무해서 살아남으려면 돈 되는 것들을 우선 만들어 팔고 그 다음 예술작업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지원은 놀라울 뿐이다. 또다른 고충은 도시에서는 작업자체를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가마를 땔 때 나는 연기는 혐오시설로 오해를 사기 일쑤다. 그때마다 시골로 시골로 깊숙이 들어간다. 그러다보면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어진다.

일본은 우리의 사발을 가져다가 큰 획을 그었다. 예술품으로 승화시켜 세계도자사전에 일본이름으로 사발을 등록했다. 뒤늦게 정부가 나섰지만 결과는 좋지 않다. 일본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의 사발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도예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사발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 사발은 반드시 두 손으로 잡아야 하고 차를 따르는 법도 예법에 맞게 해야 한다. 그런 기본이 지켜지면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이 보는 눈도 달라질 것이다. 

작품을 통해 행복해할 때 힐링된다

장상철 사기장은 불가마에서 원하는 작품이 나왔을 때 소년처럼 들뜨고 즐거워진다. 보통 한번에 30~40개가 들어가는데 나올 때 마음에 드는 작품은 잘해야 1점이다. 그것도 운이 좋을 때 그렇다. 그런데 최근 매우 좋은 작품이 딱 1점 눈에 들어왔고 그것을 많은 사람한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운반 중 깨지고 말아 너무나 아쉽고 속상했다.

지금은 다시 좋은 사발을 통해 기쁨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 그릇을 일반인들이 사용하면서 행복해하고 감사 인사를 전해 오거나 전화로 재주문을 할 때 기분이 좋다.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전국 명다기 품평회 '대상' 수상자 장상철 사기장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