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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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청마문학상 수상자 신세훈 시인

한국문단의 대들보 같은 존재이면서 남북 통일문학의 선구자인 아산(我山) 신세훈 시인(73)을 서울 남산한옥마을에서 만났다. 시인은 지난 4월 심사위원단 만장일치로 올해 청마문학상 본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시상식을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 뒤늦게 “축하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꼭 받고 싶은 상이었는데 이렇게 이루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라고 웃으며 답한다. 햇살이 제법 뜨겁게 느껴지는 날씨 탓에 촬영이 힘들지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되었는데 시인의 미소가 그런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시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움에 도전 하는 에너지원

선생은 중앙대 연극영화과 재학시절, 22세인 1962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 당선으로 시단에 나왔다. 당선시 ‘강과 바람과 해바라기와 나’는 당시 심사위원인 무애 양주동, 목월 박영종 으로부터 ‘한국문학의 획을 그을 문재’라는 극찬을 받게 한 작품이었다. 그 후 51년의 시간이 지났다. 말 그대로 반세기가 흐른 것이다.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 100세라 해도 50년은 쉬이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궁금했다. 선생에게 시는 무엇이고 50년 넘게 시인으로 살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경제가 안 되는 일을 해 오며 살았습니다. 1991년부터 발행한 계간 자유문학을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내 왔으며, 2010년엔 반 년간 문예지 민족시학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매번 적자를 보고 있지만 내가 숨 쉬는 공간 속에서 벗을 삼은지 오래되었어요. 시인이 된 후 시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지금까지 시인으로 사는 것이고 앞으로도 시인으로 살 것입니다.”

선생은 시의 힘으로 경제가 안 되는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그만큼 선생에게 시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움에 도전 하는 에너지원이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시인으로 지내 온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비록 돈은 되지 않았지만 멋진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순리대로 물 흐르듯 그렇게 사는 게 마음 편하지 않을까요?”

30년 간 차 마셔 건강 유지, 녹차의 카데킨 면역력 강화

시인으로서 소회를 묻자 처음과 같은 답을 주는 선생의 얼굴은 소년처럼 맑은 모습이다. 고희가 넘어서도 깨끗한 피부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좋아하는 일을 하고 건강한 생각과 차를 가까이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루 일과는 아침 8시부터 시작됩니다. 일어나면 먼저 기체조로 몸을 풀고 가벼운 식사를 해요. 11시쯤 사무실로 출근해서 업무를 보기 시작하는데 보통 8시에서 일이 많으면 저녁 10시까지 하는 편입니다. 퇴근이 늦는 경우가 많아 자기 전에 꼭 저녁을 먹습니다. 그래서 잠은 보통 새벽 2시가 돼야 잡니다.”

피부가 좋은 이유는 30년 동안 차를 마셔서 그렇다고 한다. 정식으로 차를 배운 게 1984년이라고 하니 올해로 서른 해가 되는 셈이다. 차를 마시는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차례’라고 한다. 일본은 ‘다도’ 중국은 ‘다법’으로 부른다. 선생은 예가 도나 법보다 위에 있다.

“당시 차 마시는 것은 대중화 되지 않았습니다. 고작 커피정도였는데 나는 차가 입에 맞았어요. 녹차, 보이차, 홍차, 감잎차, 대추차 등 다양한 차들이 있지만 그중 최고의 차는 녹차입니다. 매일같이 녹차를 마시면 카데킨이라는 항산화제가 암예방은 물론 면역력이 증가되어 감기도 안 걸리고 알레르기도 진정 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혓바늘이나 생인손 등을 앓을 때 녹차를 지속적으로 바르면 증상을 완화시키거나 낫는 경우가 많아요.”

녹차는 토마토, 브로콜리, 마늘 등과 함께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선정한 ‘세계 10대 건강식품’에 속할 만큼 우리 몸에 이로운 물질이 많다. 선생은 매일 물대신 이런 녹차를 수시로 마시는데 그 때문에 암도 극복하고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몇 해전 일입니다.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으로 일하면서 외부 모임이 많아 외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왔던 모양입니다. 건강검진을 받는데 의사가 정밀검사를 받자고 그래요. 갑상선 암이 의심된다는 거죠. 검사결과 다행히 초기였어요.”

선생은 암 진단을 받은 후 항암치료 대신 자신만의 비법으로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의사가 꿈인 적이 있어요. 그래서 평소에도 동의보감 같은 의학관련 책들도 많이 보았어요. 그런데 갑상선 암 진단을 받자 처음엔 덜컥했지요. 그 때 갑자기 머릿속에 있던 민간요법들이 떠오른 겁니다. 집에 가서 아내한테 커다란 찜통을 내달라고 했어요. 거기에 상황버섯과 인진쑥, 녹차, 양파, 마늘 등 온갖 채와 약재를 넣었어요. 먹다 남은 야채의 뿌리도 넣어서 매일 수시로 마셨습니다. 큰 컵으로 가득 따라서 물대신 그렇게 달인 것을 3개월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었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어요.”

정기검진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의사가 깜짝 놀란 것이었다. 갑상선 암세포가 다 사라졌다는 말을 하며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면서 어디서 치료를 받았냐고 물었어요. 나는 그냥 웃기만 했습니다. 의사한테 내가 처방한 민간요법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두었어요.”

그렇게 암을 치료한 선생은 지금도 녹차를 마시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민조시 개척, 우리문학의 뿌리 찾기 관심 커 후학 양성


50년 문단활동을 하며 선생이 해 온 일은 시만 쓴 게 아니었다. 앞서 얘기한대로 경제가 안되는 문예지 2개를 발행하고 있으며 장편수필, 청소년시, 청소년 소설, 청소년 희곡, 민조시 등을 개척했다. 그 중 민조시의 경우 3,4,5,6조 운율에 맞춰 쓴 우리가락이다. 선생의 입을 통해 민조시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내가 민조시를 처음 쓴 것은 1976년 10월 14일 부산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3·4·5·6조 1·2·3’연작 3편 민조시를 같은 날 한꺼번에 쓴 것입니다. 그 후 24년 만인 2000년 6월에 민조시집 ‘3·4·5·6조’(도서출판 천산) 가 처음 나왔고, 2008년 3월 두 번째 민조시집 ‘통일꽃 핀다’, 2012년 9월 제3민조시집 ‘천부경 나라’를 펴냈습니다. 내가 민조시에 빠진 이유는 대학 때부터 우리문학의 뿌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민조시는 한마디로 우리민족의 장단가락입니다. 그것은 이미 농악의 4물놀이와 대중가요의 트롯까지 아우릅니다. 우리가 아는 시조 역시 초장·중장·종장, 3장 6구 12음보로 나눠져 있지만 결국 형식과 내용은 3·4·5·6조입니다. 그런 구조가 예부터 내려오던 소리 장단가락, 무용의 춤사위 등에 응용되었습니다. 왜 그러면 우리 민족이 3박, 3을 중요시했으냐, 이게 역학과 관계가 있습니다. 3·4·5·6조가 바로 1·3·5·7·9의 기본 홀수의 수리, 천부경에 보면 1은 3하고 같은 개념(1=3=天地人=○△□=우주=3재·3신사상)입니다. 3이 곧 6이 되고, 3X3=9가 되고. 9X9=81이 되고, 또 ‘天符經’은 81자인데 곱하기, 나누기, 더하기, 빼기가 모두 천부경안에 들어있습니다. 우리 인류의 수리학과 철학은 우리 조선 동이족의 선조들이 다 해놓은 것입니다.”

선생이 말하는 민조시는 '한 사상'이 배경이다. 한은 일반에 알려졌듯 슬프고, 괴롭고 그런 게 아니다"면서 "크다, 많다, 하나다, 으뜸이다, 우두머리다, 한울타리다라는 뜻이다. 선생은 순우리말도 '한하게'(많이) 만들었다. '풀머리/깨어있는/동녘산자락 청시울가에,/홀로/나/잠드네,/달머리/잠빛 밝은/서녘강허리 금물목샅에./나 홀로/눈뜨네.' 이 민조시에서 풀머리, 청시울가, 달머리, 잠빛 등 시어를 만들었다. '살섞는다'는 말도 처음 사용한 것이다.

선생은 문학(민조시)을 통해서 잃어버린 우리민족의 뿌리를 되찾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100편이 넘는 민조시 관련 이론을 발표했고, 직접 민조시 분야를 개설해 현재 70명의 후학들이 활동하고 있다. 반년간지 민조시학도 꾸준히 발행하고 있다. 머잖아 이 분야가 새롭게 주목을 받으며 크게 발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버킷리스트는 문학관 건립과 몽골, 인도, 천산 여행...

선생은 중앙대 연극영화과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왜 국문과가 아닌 연영과를 택한 것일까?


“시인이 되기 위해 일부러 연영과에 들어갔어요. 연영과를 택한 것은 연극과 시가 하나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는 연극이 곧 시니까요. 세익스피어와 고전시학은 물론 나중에 내 시의 토대가 된 몽타주기법이나 오버랩 등 영화편집기법 등을 배웠습니다. 심상운 씨하고 중대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썼는데 이 때 국문과인 심상운 씨를 따라 국문과 강의를 많이 들었어요. 신청 할 수 없는 것은 도강도 많이 하고 그랬습니다.”

선생은 시인이 아니었다면 아마 정치가나 군인의 길을 걸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고 시인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끝으로 지금 버킷리스트를 만든다면 무엇인 있을지 궁금했다.

“먼저 그동안 하지 못한 문학 관련 도서 3만 5천권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고향 시골학교의 폐교를 구입해서 아산 문학관과 시인학교를 설립하고 민조시 문학연구회 같은 연구시설도 갖추고 싶어요.
두 번째는 못 가본 세계를 여행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국제 펜클럽 한국 본부 부회장과 한국문협 이사장을 하면서 세계시인대회 참석차 많은 나라를 다녀봤지만 아직 몽골과 중국 천산(곤륜산), 인도 등은 가지 못했어요.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행하면서 쓴 시가 많은데 책으로 엮지 못한 게 많아요. 주로 기행시인데 대부분 장시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끝으로 그동안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남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게 도움 받은 것에 대해 갚을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은 물론 정신적으로도 빚을 갚고 싶습니다.“ 


멋진인생은 물처럼 욕심없이 순리대로 사는 것

촬영이 끝나고 한옥마을을 내려오면서 선생은 멋지게 사는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욕심없이 순리대로 사는 것이라고 답한다.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았어요. 때로는 배신하는 사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오면 반겨주고 또 떠나면 보내주고 그렇게 물처럼 살려고 노력합니다. 바위를 만나면 물이 돌아서 가듯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처럼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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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申世薰 詩人]“시인으로 살아온 반세기 감사하고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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