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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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박사 원정혜 [사진_비엠코리아]


그녀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를 달리는 프로였다. 요가 전도사 또는 수행자로서 원 박사는 19세 때부터 요가를 시작해 지금까지 17년째 외길을 걷고 있는 기인이다. 원박사를 대뜸 기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의 삶 자체가 평범과는 거리가 있어서다.

 

이제부터 원정혜라는 주인공이 요가에 빠져들게 된 경위와 그의 평범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을 직접 들어보도록 하자. 

출발전 수세미가 된 머릿속
017-209-**** 뚜뚜... 통화중이다. 다시 한 번 번호를 확인하고 엄지에 힘을 실어 꾹꾹 눌렀다. 이번엔 신호가 길게 간다. 요즘 흔한 컬러링도 아니고 그냥 일반신호음이다. 요가와 관련된 신비한 음악소리를 기대했는데 조금 실망스러운 느낌이 잠깐 동안 스쳐지나갔다. 무뚝뚝한 기계음은 오랫동안 귀를 간지럽게 하더니 곧 녹음된 여자의 안내멘트가 나왔다. 동시에 폴더를 닫았다. 순간적으로 녹음을 할까 생각했지만 문자를 남기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사님. 4월호 커버스토리때문에 연락드립니다. 전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몇 번의 수정 끝에 겨우 글자수를 맞춰서 보내고 연락을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리던 휘파람 소리는 쉽게 울리지 않았다. 다른 취재원과 통화를 끝내고 다른 꼭지를 진행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던 중 휴대폰에서 휘파람소리가 터져 나왔다. 혹시...예감은 적중했다. 원정혜 박사였다.

휴대폰 속 목소리는 무척 쾌활한 명랑소녀 같았다. 간단히 커버스토리의 컨셉과 진행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 하지만 그녀는 난감한 목소리로 완곡하게 거절을 해왔다. 이유는 아침 7시부터 강의를 시작해 저녁까지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것이었다. 설마 매일 그럴까? 다시 한 번 시간을 빼달라고 부탁했다. 

겨우 **출판사 기획자와 약속 건을 뒤로하고 인터뷰를 잡을 수 있었다. 원래 커버스토리의 기획의도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따라다니면서 주인공의 하루를 스케치하는 것이었는데...시작하기도 전에 꽝이 되고 말았다. 머릿속이 수세미처럼 엉키고 있었다.

요가박사를 만나기 전 준비운동

그녀를 만나러 가기 전에 인터넷을 뒤졌다.
“요가박사, 요가수행자, 2001년 SBS 오락프로그램 ‘장미의 이름’에서 요가코너 진행자, EBS문화센터 요가강사 및 요가프로그램 MC, 유명대학(고려대, 연세대, 숭실대, 숙명여대, 차병원, 중문의대 등)강사, 유명 문화센터 요가강사, 대기업 초청강사, 요가관련 비디오 및 단행본 저자...등” 

원정혜라는 이름을 입력하자 바로 그녀와 관련된 인터뷰, 비디오, 뉴스단신 등 많은 정보가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그중 **잡지와 인터뷰 한 기사를 읽어보았다. 대부분 요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역시 요가짱이구나. 요가박사 앞에서 요가가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서 요가관련 사이트를 찾아 요가에 대한 기초정보를 살펴보았다.

프린트를 해서 보니 재미는 없었지만 아주 조금 요가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요가는 인도에서 약 6천년 전부터 수행자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수행의 방법으로 어원은 결합한다는 뜻의 yuj이며, 의미는 마음을 긴장시켜 어떤 목적에 상응 혹은 합일한다는 것이다. 요가의 수련과정은 소우주인 자신과 대우주의 조화를 위한 정신력 개발과 육체강화가 목적이다.  

인체는 앉고, 서고, 눕는 기본 동작만을 충실히 해도 충분한 운동효과를 볼 수 있는데도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못해 인체의 수많은 근육중 사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되고 그것을 반복하다보면 몸의 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어 몸에 이상이 생겨 질병이 발생한다. 요가는 몸의 근육을 골고루 사용해 몸을 부드럽게 만들어 건강을 얻고자 하는 운동이다.’

그밖에도 요가에 관한 여러정보들이 정리되어 있었지만 그녀를 만나려는 목적이 요가강의를 듣기 위한 것이 아니기때문에 요가의 정의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원정혜 박사를 만나다
7호선을 타고 숭실대에서 내렸다. 약속장소인 ‘일 보스코’를 찾기 전에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아직 택시를 못 잡아서 마을버스라도 타고 온다고 한다. 천천히 오시라고 말한 후 ‘일 보스코’를 찾아보았다. 사진기자가 “저쪽에 있어요”한다. 노화가 벌써 왔나 왜 내 눈엔 안보이지? 최기자의 손가락을 따라가 보았다. 생각보다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때 아닌 폭설로 인도는 빙판이 되어 있었다. 종종걸음으로 ‘일 보스코’를 향해 갔는데 문이 닫혀 있다. 토요일이라 주인이 늦잠을 자나? 아무래도 인터뷰는 다른 장소에서 해야 할 것 같았다. 마침 바로 위에 분위기 좋은 커피숍이 보였다. 아직도 걸어오고 있는 사진기자를 부르러 밖에 나갔는데 그 옆에 키 큰 여자가 함께 있었다. 한눈에 원정혜 박사임을 알 수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커피숍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연하게 메이크업을 하고 온 그녀는 나이에 비해서 훨씬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오랜 수련으로 명징한 눈이 인상적이었다. 시종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하는 모습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차를 시키면서 토스트를 부탁했더니 그녀는 여유있게 구워달라고 덧붙였다. 차가 나오는 사이 100년 만의 폭설이 내린 날씨 얘기를 잠깐 나눈 후 약속된 인터뷰 시간이 길지 않아서 준비해 간 질문을 빠르게 풀어놓아야 했다.
 

먼저 원정혜 박사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물어 보았다.

“그 날 일정에 따라서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어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밤11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납니다. 기상 후 3시부터 4시까지 명상이나 호흡, 원고 쓰는 일 등 개인적인 시간을 꼭 갖습니다. 정확하게는 말씀드리기 어렵네요. 하하 죄송해요. 그리고 낮에는 대학강의나 방송, 글쓰는 일, 만남, 언론사 인터뷰 등을 합니다. 특히, 아침강의가 6시부터 있는 날에는 하루 24시간이 너무나 부족해요. 개인적으로 면허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택시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데 부족한 잠은 주로 차안에서 보충합니다. 일을 할 때는 집중력이 대단한 편이어서 EBS명상의 시간 1개월 치를 하루만에 녹화한 적도 있어요. 물론 감독님께서 후한 점수를 주신 덕분이지만요. 하하”
 

그녀는 고려대 조치원 분교에서 요가강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매주 수, 목요일을 빼고는 거의 매일 장거리를 뛴다. 하루에 많을 때는 8개 학교의 강의를 나간다는 그녀. 거기에다 단행본 집필, 비디오 제작, 방송 MC, CF촬영 등 많은 일들을 소화해 내는 샘솟는 체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5세부터 발레를 시작했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때까지 특기생으로 다녔지만 꼭 10등 안에 들었어요. 공부도 잘하고 싶었거든요. 성격이 워낙 아버지를 닮았나 봐요. 완벽하지 않으면 시작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제 가방에는 없는 것이 없었고 애들은 그런 절 만물상이라고 불렀어요. 초․중․고 재학시절 발레와 리듬체조 선수를 했지만 체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대학 때 알게 된 요가를 통해서 지금의 체력이 길러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원 교수는 어릴 때부터 날씬 했던 것은 아니었다. 발레와 리듬체조 그리고 에어로빅 등으로 가꿔온 몸매였지만 살이 찌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그녀는 심한 스트레스로 키167cm에 몸무게가 78kg까지 나가게 되었고 이때부터 요가에 더욱 정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에게 요가는 또 다른 세계였고 삶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방학때 해인사와 송광사를 찾아가 매일 일천배를 올린 것도 마음수련을 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특히, 박사학위 논문 준비를 위해 해인사를 찾아갔을 때는 매일 3천배를 올렸고 해인사의 원성스님이 머리를 깎으라는 권유를 했을 땐 실제 스님이 되려는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 함께 갔던 후배가 집에 연락을 해서 동생(원현성사진작가)이 오지 않았으면 비구니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절에서 내려온 그녀는 요가를 통해 몸무게를 무려 22kg이나 감량하는데 성공했다.
  

원 교수의 어린시절은 보수적인 집안에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 아버지 원오재(70)씨는 현재 **기업 대표를 맡고 있으며 어머니 정영자 씨는 전 유니세프 위원이었고 현재 교통심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버지는 고대를 나왔고 어머니는 숙명여대를 나왔다 두 분 다 정도를 지키는 깐깐한 분이다. 


그녀가 대학은 숙대를 나오고 대학원은 고대를 나온 이유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권유에서였다. 세상물정 전혀 모른채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들어와서 그녀는 상당히 많은 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 특유의 적극성과 완벽함은 요가를 만나면서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대학에서도 그녀를 인정하게 되었다 25세부터 대학 강단에 선 그녀는 고려대에서 29세 때 요가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박사학위 취득 후 세상에 요가를 전파하기 위해 요가전도사가 된다.

요가 수행시 주의할 점
이제부터 원정혜박사의 요가강의가 시작될 참이다. 주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일반인들이 요가를 통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제 수업에 들어오시는 분 들 중에서 가장 많이 말씀하시는 부분이 ”마음이 편해지고 몸의 불편한 부분이 해소되었습니다 하는 것인데요. 이는 요가의 수행이 부자연스러운 일상에서 오는 불편함을 해소시켜주어서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되고 명상과 호흡을 통해서 스스로 마음의 상태를 정확하게 바라보고 문제점을 인식함으로써 본질적인 평온함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사소한 일에서부터 큰일에까지 많은 생각과 판단, 그리고 결정을 하게 되죠, 그러한 과정 중에 스스로의 몸과 마음의 상태는 매우 중요한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요가를 통해서 몸과 마음이 정화되면 몸과 마음의 걸림돌이 되는 문제들 또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요가를 하면서 주의할 점은 무엇이며 반드시 지켜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첫째, 요가 다이어트는 최소한 3개월 후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초보자의 경우 몸이 요가에 적응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물론 2주일 만에 5kg이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미국인은 1주일만에 3kg이 빠졌다고 합니다. 공통적으로 고집이 없고 순수한 사람일수록 반응이 빨랐어요. 반응이 늦더라도 조급하게 굴지 말고 자신의 상태를 꾸준히 지켜봐야 합니다. 

둘째, 반드시 규치적으로 해야 합니다.

셋째, 반드시 공복상태에서 해야 하고, 식후 2~3시간 후일 때가 가장 적당합니다. 목욕한 직후에도 피해야 하며, 요가체조를 하고 난 뒤에도 곧바로 목욕, 세수, 머리감는 일 등은 피해야 합니다.

넷째, 에콜스무브먼트나 요가의 체조부분은 혼자서 해도 좋지만 제대로 요가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믿을만한 지도자의 지도를 받도록 합니다. 시중에 나온 책이나 비디오만 믿고 요가를 독학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다섯째, 병을 앓은 경험이 있거나 현재 어디가 아픈 곳이 있으면 수련을 받기 전 미리 지도자와 상의 합니다.

여섯째, 타인과 경쟁하거나 비교하며 수련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수행의 결과도 개인차가 작용합니다. 설령 다른 사람의 진행과정보다 뒤처지더라도 자신의 그릇과 인연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합니다.

일곱째, 항상 긍적적으로 생각하고, 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합니다. 마음이 불안하고 어지러우면 요가다이어트의 효과는 나타나지 않습니다.“그녀가 하는 말을 들으면서 정말 요가박사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이 배어나는 목소리와 해박한 지식 그리고 건강한 모습을 통해 원정혜 박사에 대한 신뢰감이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갖는 것 요가의 정신

그녀가 요가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일까? 다이어트 성공 아니면 요가전도사로서 이 땅에 요가를 널리 알린 것보다 더 구체적인 무엇이 있을 것 같았다.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구요. 그것을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그러한 과정 중에 많은 분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셨다거나 좋은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원박사가 요가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앞서 언급한 대로 다이어트 때문일까?

“하하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중고생 때부터 이미 3천배를 엄청했었구요. 지나고 보니 그것도 요가 수행의 일부였어요. 그리고 요가이론이나 실기는 대학에 들어와서 배웠어요. 이곳저곳에서 인연이 되는 선생님들께, 그리고 스님들과 수행자들에게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예뻐지고 살빠지고 건강해진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이렇게 전공까지 하게 되었네요. 박사 논문까지 요가에 관해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해보니 가장 정확한 전인교육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서요. 다른 어떤 테마를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석 박사 논문을 모두 요가로 쓰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나이는 37이다. 얼굴은 아직 서른 전후로 밖에 안보이지만 적지 않은 나이다. 어쩌면 화려한 싱글을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그녀에게 살아오면서 기억에 남는 일 중 가장 힘든 일과 가장 기뻤던 일을 물어 보았다.

“늘 하우스 안의 화초처럼 생활해 오다가 20대 중반이 되어 갑자기 많은 일들을 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살아온 삶에 대한 생각들이 다른 경우 얼마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그 때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느끼게 되었어요. 그래서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처음 알았죠. 헌데 예술작품을 하는 저로서는 그런 맑지 않은 마음이 작품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글과 작품을 위해서 사시촌이 있는 절로 들어간 것이구요. 

새벽에 많은 예불과 절을 드리면서 순간...내 몸 하나, 마음 하나도 다스리지 못한 채 무용을 하면서 이렇게 살이 쪄 있고, 행복하고 싶지만 불행으로 있으면서 누가 내 맘에 든다 안든다.....하는 것은 오만함이었구나...나부터 맘에 들고봐야지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몸과 마음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금도 누군가가 맘에 안든다면...나는 스스로 얼마나 맘에 드는 생활을 하고 넘어가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녀는 절에 들어갈 때의 마음이 가장 힘든 때였고 절에서 5년 동안의 수행을 마치고 나올 때의 마음이 가장 기뻤던 때라고 털어 놓았다.

그렇게 절에서 요가를 통해 몸과 마음의 정화를 하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그녀에게 세상적인 꿈이 있을까? 수행자에게 부귀영화가 어색한 옷이기에 그녀의 답이 궁금했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않게 되는 것이 인생은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 수행자로서 교육자로서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에 벗어나지 않는 일과 제가 하고 싶은 일이라면 굳이 도전이라기보다는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하게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꿈이 아닐까요?”

그녀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힘이 있었고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설득력을 갖고 있었다. 요가전도사로서 이론과 실제뿐 아니라 충분한 자양분을 소유한 그녀는 요가를 배우는 후배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몸과 마음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를 인식하고 스스로의 상태를 잘 조절할 수 있는 지혜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아름다움을 끌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몰랐던 몸과 마음에 대한 걸림을 스스로 인식하고 일상에서 맑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수 있기를 바래요. 그리고 요가를 수행하는 분들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건강해져서 서로에게 사랑과 기쁨을 나누어주고 타인의 기쁨을 함께 하고 타인의 슬픔을 함께 아파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요가의 경전을 얼마나 알고 얼마나 어려운 동작을 얼마나 할수 있는 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늘 수행자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요가수행의 길이 아닌가 합니다. 요가를 수십년 했어도 말과 행동이 지저분하고 술과 담배에 능하며 늘 시기질투심에 사로잡혀서 자신만이 정답이라고 자만한다면 그것은 요가를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 늘 겸손하게 열심히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참스승은 나의 어머니

언제 왔는지 **출판사 기획자 두 명이 뒤쪽 자리에 앉아서 원박사에게 인사를 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 10분. 아무래도 더 이상의 인터뷰는 무리일 듯싶었다. 마무리를 하기 위해 위해서 남은 질문을 서둘렀다.

 

단답형 질문에 그녀도 분위기를 눈치 채고 짧게 대답해 주었다.

박사님이 존경하는 분(스승)이 있습니까? 있다면 이유는 무엇 입니까?

“주변에 좋은 스승님들이 정말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께 좋은 말씀을 듣거나 수행법들을 많이 배웠어요. 지금의 제가 알고 있는 내용들도 모두 그분들 덕분에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온전한 스승님을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절에도 들어가고 많은 분들을 뵈었지만 스승님은 가까운 곳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저희 어머니세요. 스님들도 수행하지면서 많이 상담을 하시기에 그런가 보다...라고만 했는데요. 수행중에 오는 걸림돌을 해소 하는데는 어머님의 지혜로움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구요. 어머니의 삶의 모습을 보면서 그 반정도만해도 저는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을 할만큼 큰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0년이상 청소년가장돕기 장학회를 운영해 오시면서 아이들 마음에 금이 가지 않게 지로로만 주시고 주변분들에게 늘 베푸시고 하시는 모습이나 미국에서도 크게 활동하시면서 늘 겸손하신 모습...가정적으로 내조도 잘하시고 자식들에게도 헌신적이시면서도 당신의 삶을 잃지 않으시는 모습 등...너무나 따라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그녀에게 10년후의 모습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웃으면서 수행자답게 넉넉한 답을 해주었다.

 

“구체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지만 10년후에도 늘 지금 곧 죽음에 직면해도 후회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돈이나 명예나 사물은 왔다가 스쳐가는 것인데 지나치게 얽매이다가 중요한 사람들과 사랑이나 여유로움을 잃지 않는 지금의 삶을 그대로 가졌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친 후 그녀는 **출판사 직원들과 앞으로 나올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고 사진기자와 나는 커피숍을 빠져 나왔다. 인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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