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 전체메뉴보기
 
▲ 보길도 부용동 풍경

[트래블아이=김보라 기자] 보길도는 조선 중기 문신 고산 윤선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인조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고산 윤선도는 노복 수백 명을 이끌고 강화도로 가다가 왕이 삼전도에서 항복의 예를 올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 길로 세상과 연을 끊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를 발견하고,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보길도의 산세가 마치 연못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닮아 부용동이라 이름 짓고, 세연정과 낙서재, 동천석실 등을 포함해 20채가 넘는 건물과 정자를 지었다. 부용동 정원은 크게 낙서재, 동천석실, 세연정 등으로 나뉜다.


윤선도1.jpg▲ 고산 윤선도 원림은 섬속의 낙원으로 불린다.(사진-완도군청)
 

완도국제항으로부터 12km 되는 거리에 있는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가 10여년을 머물면서 세연정, 낙서재 등 건물 25동을 짓고 전원 생활을 즐겼으며, 그의 유명한 작품 "어부사시사"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 섬에는 은빛모래 혹은 자갈밭이 펼쳐진 해수욕장이 세 곳 있어, 여름피서지로도 인기가 있다. 그 중 섬 남쪽에 위치한 예송리 해수욕장은 모래없이 작은 자갈밭이 1.4Km나 펼쳐져 있어 천연기념물 제 40호인 예송리 상록수림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다. 아열대성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 투명한 바다와 신비스런 조화를 이루며, 특히 보길도로 향하는 남해 뱃길에는 푸른 바다 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펼쳐져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이 곳에는 또한 고산 윤선도 유적 외에도 조선 숙종 때 우암 송시열의 글씨가 새겨진 바위도 있다. 우암은 세자 책봉 문제로 상소를 올렸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83세의 노령으로 제주도로 귀양가게 되었는데 도중에 보길도 백도리 끝 바닷가의 병풍처럼 생긴 바위에 탄식의 글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이 바위를 "글씐바위"라고 한다. 그밖에도 예송리 일출과 보족산, 선창리 일몰, 부용리 동백림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주변명소 : 부용동 고산유적, 송시열의 글씐바위, 보옥리 보죽산, 선창리 낙조 , 부용리 동백림, 복생도 풍란향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우리나라 명소 '보길도'...고산 윤선도의 흔적 고스란히 남은 곳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