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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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마디’가 당선되며 문단에 데뷔한 구효서의 직업은 전업작가다. 그는 등단이래 누구보다도 치열한 작가정신과 다양한 스펙트럼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이력을 쌓아왔다. 중견소설가로서 그의 이름은 어느새 서점가의 브랜드가 되었다. 
구효서2.jpg▲ 소설가 구효서(사진=트래블아이)
 
작가 구효서는 신작을 내놓을 때 마다 서정성과 탄탄한 주제의식, 재미를 겸비한 소설로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호평을 받아왔다. 쉽게 읽히면서 깊고 다채로운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각도에서 사회를 보는 (눈을 가진) 이 시대의 진정한 소설가 구효서 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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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터미널 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작가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초면이지만 사진으로 많이 보아왔기 때문일까? 커피숍을 찾아 걸어가는 동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단정한 외모 탓에 샐러리맨으로 보이지만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아우라가 금방이라도 무언가를 보여줄 것 같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궁금증의 진원지를 찾아보고 싶었다. 비록 한정된 시간과 인터뷰라는 형식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불만은 없었다. 먼저 이메일로 보낸 질문지를 중심으로 작가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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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올 봄에는 단편집이 나옵니다. 그동안 써왔던 단편을 묶어서 창작집 형태로 내고 첫 장편소설을 재출간합니다. 또 지난 12월부터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한 ‘타락’이 7월에 완료되면 멜로소설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새해계획이다. 많은 작업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직업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분량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직업으로서 소설가를 택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잡지사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소설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여러 가지 상황이 그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고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직업소설가가 된 후 26년 동안 소설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다행이란 표현은 내게 ‘행복’으로 들렸다. 우리나라에서 시 또는 소설만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 작가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문단에 나온 후 지금까지 작가는 그의 말대로 많은 소설을 써왔다. 일정한 톤이나 색깔로 예상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쓰기보다 새로운 양식이나 주제로 옷을 바꿔 입었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의 신작을 대할 때 마다 신선함을 선물로 받았다. 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작가 구효서의 스타일은 앞으로도 ‘광대무변’할 것 같은 예감이 들 정도다. 평론가들도 독자들처럼 그의 도전을 신선함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작품성을 담보한 중견작가의 신선함은 근래에 찾아보기 힘든 모델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력을 봐도 전업작가로서 그가 얼마나 신선함을 견지하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다.   
구효서1.jpg▲ 멜로 소설에 도전한다는 작가 구효서
 
1994년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2005년 「소금가마니」 이효석문학상 수상, 2006년 「명두」 황순원문학상 수상, 2007년 「시계가 걸렸던 자리」 한무숙문학상 수상, 2007년 「조율-피아노 월인천강지곡」 허균문학작가상 수상, 2008년 『나가사키 파파』로 대산문학상을 수상 등 작가로서 그의 행보는 올해에도 어김없이 이어져 새로운 도전을 한다.   

취재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일뿐, 나머지는 작가의 상상력 바로 ‘멜로소설’이다. “멜로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 하자 작가는 소년처럼 웃으면서 “멜로디와 드라마의 합성어”라고 답한다.   

“멜로소설은 멜로디처럼 감미로운 드라마가 될 겁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오래전 영화화 된 <침향>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생각났다.  1995년 출간한 ‘낯선 여름’은 이듬해인 96년 홍상수 감독에 의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1996년 출간된 중편소설 「나무남자의 아내」는 김수용 감독의 <침향>으로 각각 스크린에 옮겨졌다. 

두 소설이 모두 남녀의 사랑(삼각관계 포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멜로적 성격을 갖춘 것이라 작가가 올해 멜로소설에 도전할 것이란 말을 어떻게 해석할지 고민했다. 좀 더 욕심을 내서 어떤 내용인지 들어보려다 더 이상의 질문은 피했다. 김이 빠지면 안 될 것 같아서다. 대신 소설쓰기에 대해서 화제를 돌렸다.   

“취재를 하는 경우는 제 소설 ‘동주’(자음과모음 펴냄)처럼 실존인물을 쓸 때 필수입니다. 이미 수많은 작품과 언론보도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그의 행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죠. 오히려 그러한 사실을 제대로 파악해야 그 틈을 메울 수 있는 상상력이 발휘되니까요.”   

소설 ‘동주’을 쓰기 위해 그는 일본으로 건너갔고 교토에서 동주의 행적을 쫓았다. 그리고 작가의 말대로 사실과 사실 사이의 틈을 발견했다. 소설 ‘동주’는 그렇게 탄생했다. 

“주인공은 윤동주(1917~1945)와 동시대를 산 소녀와 현대의 재일교포 3세로 윤동주가 머물렀던 일본의 아파트에 사는 요코는 윤동주가 경찰에 끌려가는 현장 등을 본, 윤동주를 남몰래 좋아하는 15세 아이누족 소녀입니다. 그리고 한 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현대에 사는 재일교포 3세 김경식은 윤동주 유고 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실종된 친구를 찾아 나서는데 그 과정은 곧 윤동주의 유고에 가까이 가는 길이 됩니다. 

두 사람이 좇는 윤동주의 길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동주'(자음과모음 펴냄)는 윤동주가 소재지만 주인공은 아니다. 주변 인물의 눈으로 윤동주의 삶과 시의 세계를 살펴본 것이다.   작가는 계속해서 소설쓰기에서 취재는 필수라기보다 선택이라고 얘기한다. 

“모든 소설이 취재를 필요로 하지는 않아요. 제 경우에는 오히려 앉아서 쓴 소설이 더 많습니다. 연예소설이나 굳이 취재가 필요없는 주제는 상상 속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책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데올로기의 산물, 넌센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도배된 세상에서 독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그리고 작가는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한마디로 넌센스입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이데올로기를 조장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저는 오히려 책 속에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꼭 책속에만 길이 있습니까? 책 밖에도 길이 얼마든지 있는데요. 종이책을 대신해서 e북이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젊은이들이 책을 멀리하는 것도 문제될 게 없습니다. 아들과의 대화에서 논리정하게 말하는 것을 볼 때마다 수세에 몰리는 쪽은 나입니다.”   

작가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한마디로 독서지상주의사고는 깨져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세상에 대한 경험치는 결코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현대사회에서 책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영화와 음악과 여행과 많은 놀이들이 책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책의 지평은 종이만이 아니다. 구 작가는 2000년 e북에 ‘메별’을 연재했다. 이 작품은 이듬해 세계사에서 장편으로 출간됐다.   

‘랩소디 인 베를린’ 영화로 만들고 싶어   앞서 언급한 두 소설이 영화화 되었기 때문에 이번엔 작가 스스로 감독이 된다면 어떤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싶은지 물어 보았다.   

“그런 기회가 온다면 ‘랩소디 인 베를린’입니다. 일단 스케일이 크거든요. 음악을 가미하기 때문에 소설보다 매력적일 것입니다.” 

두 천재 음악가의 삶을 그린 장편소설 ‘랩소디 인 베를린’은 18세기 말 독일 바이마르와 평양, 21세기 베를린과 일본과 한국을 잇는 배경 속에서 두 조선인 음악가의 불꽃같은 삶을 그리고 있다.     

문학적 덕목은 작가의 언어로 말하는 것구효서 작가는 87년 등단작 ‘마디’이후 지금까지 그는 총 92권의 책을 출간 했다. 작품 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모두 그의 이름이 나온 책들이다. 26년 결과물인 셈이다. 현재 55세인 그가 앞으로 26년 동안 또 얼마나 많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그동안 써온 작품들이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개작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주제나 방향은 지금도 마음에 들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끝으로 그는 작가의 문학적 덕목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작가의 언어가 아닐까요? 사람들은 저마다 각각의 언어가 있다고 생각해요. 미술가, 음악가, 샐러리맨, 공무원, 선생님, 목사님, 정치인 등 저마다 활동하고 있는 세계에서 쓰는 언어가 있잖아요. 작가도 마찬가지에요. 책을 통해 자신의 언어가 드러나죠. 그리고 스타들처럼 이미 대중한테 이름이 알려진 작가들은 책 속에서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자신의 언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내 언어는 어디에 속할까’ 생각하면 조심스러워집니다.”    

작가는 최근 시비가 불거진 작가들의 모습이 일반인들한테 좋은 인상을 줄 수 없다면서 작가의 덕목은 언어에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작가가 정치언어를 쓰면 어떨까요? 논쟁을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하면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문학인이라면 적어도 자신의 언어가 세속적이거나 정치적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비판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멜로소설에 도전

인터뷰가 끝날 무렵 구 작가는 대뜸 자신의 모습이 소설가 같냐고 묻는다. 이렇게 질문이 많은 인터뷰이는 처음이다. 그런데 질문과 동시에 환하게 웃으며 자신의 질문에 답을 한다.  

“전업작가가 된 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스타일입니다. 9시 출근해서 글을 쓰니까요. 옷은 물론 수염도 깨끗하게 정리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소설가라기보다 회사원으로 봅니다.”   

작가의 말에 긴장이 풀어지면서 웃음이 나왔다. 그는 수년 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 가 아닌 스터디다. 작가지망생들이 팀을 짜서 그에게 요청하면 응하는 식이다. 하지만 3그룹을 넘기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보통 6명 정도 모인 그룹이 3개 정도 되는데 한 주에 1개의 그룹을 2시간씩 합니다. 그들의 열정을 보면서 내가 얻는 게 많아요.”   

그의 마지막 멘트 속에 열정이 강조된 것을 보면 올해 도전하는 멜로소설은 젊은이들이 읽기에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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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설가 구효서...“올해 감미로운 멜로소설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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