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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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게 짜이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겨우 잠을 자긴 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 먹은 솜처럼 무겁기만 하다. 그냥 누워서 실눈을 떠보았다. 밤새 천장에 매달려 툴툴거리며 돌아가던 새까만 선풍기는 여전히 옆에서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 카주라호 상가 거리의 풍경

시선을 돌려 차창 밖을 보았다. 새벽이라 그런지 주위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밖에서 짜이소리가 다시 열차 안으로 들어온다. 이번엔 제법 큰 소리로 배속까지 흔들어 놓는다. ‘아 짜이가 먹고 싶다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술도 안마셨는데 이상하게 해장 같은 걸 하고 싶었다. 여기저기서 차창을 통해 짜이를 사서 마시는 모습들이 보인다. 졸린 눈을 비비면서 나도 차창으로 동전을 내밀었다.


열차가 정차한 동안 선로까지 내려와서 짜이를 팔고 있는 소년이 내 손에서 동전을 가져가고 대신 짜이 한잔을 건네주었다
. 한잔에 1루피다. 흙으로 만든 찻잔은 짜이를 마시고 밖으로 던져버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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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짝지근한 우유맛이 나는 홍차를 여기서는 짜이라고 한다
. 신기하게도 짜이를 마시고 나자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다. 다음역이 목적지인 카주라호다.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배낭을 정리한 후 침대에서 내려왔다.

30분쯤 지났을까? 창밖으로 카주라호 안내판이 보인다. 열차가 정차하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고 싶었다. 세수를 안 한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새벽에 화장실에서 보았던 맹인 인도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끼익~하고 열차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서둘러 세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배낭을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열차 밖으로 나왔다.

▲ 상가건물들과 사람들

카주라호 역은 그동안 보았던 다른 역에 비해 깨끗했고 썰렁했다. 아무래도 역을 세운지 얼마 안된 것 같았다. 도시에서 꽤 떨어진 듯 주변에는 상점들도 없다. 다만 릭샤를 부리는 릭샤왈라들이 호객행위를 하느라 시장통처럼 시끄러웠다.

나와 수상자들은 미리 예약해 놓은 숙소에서 마중나온 칸트(독일 철학자 이름과 같다)의 오토릭샤(오토바이 뒤에 좌석을 얹혀 만든 소형차)에 올라탔다.

▲ 식당으로 안내한 칸이라는 소년의 모습

뚜껑이 절반밖에 없는 오토릭샤를 타고 달리는 기분은 정말 시원했다. 카주라호 역에서 손님을 태운 수십대의 오토릭샤들이 경주라도 하듯 선두를 차지하기 위해 속도를 올렸다. 좁은 도로에서 벌이는 그들의 경주가 다소 위험해 보였지만 스릴때문인지 차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약 1시간 정도 신나게 달리자 눈앞에 건물과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카주라호 시내에 들어 온 것이다.

▲ 식당 내부의 모습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시내라고 하기엔 규모가 작아서 우리나라 소읍정도 되는 마을 같다. 높은 건물도 없고 도로는 비포장이다. 세계문화유산이 있는 마을치고는 생각보다 지저분한 인상이었다. 마을을 둘러보기 전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오랜만에 옷을 갈아 있었다. 휴식을 취하며 방에서 카주라호 지도를 펼쳐놓고 어디를 어떻게 다닐지 생각해 보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었다.

12시가 넘었는지 배꼽시계가 무차별 신호를 보낸 것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숙소 밖으로 나와 상가 쪽으로 올라갔다. 식당은 대부분 2층에 있었다. 1층은 잡화가게와 미니슈퍼, 약국, 스카프와 인도장신구를 파는 상점들이 차지했다.

 

▲ 식당 주방장이 나와서 자신을 소개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지었다(이름은 '파000'라고 했는데 기억이 안난다)

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소년이 다가오더니 내 손을 잡아끈다. 레스토랑이 어디냐고 묻자 소년은 나를 빤히 보면서 먹는 시늉을 한다.

내가 고개를 끄덕거리자 소년이 환하게 웃으며 하늘색 페인트가 칠해진 계단으로 나를 안내했다. 소년의 이름은 칸이다. 인도에선 칸이란 이름이 우리나라 철수처럼 제법 흔한 이름 같았다.  


칸이 안내한 식당에는 점심시간인데도 손님이 한명도 없었다
. 테이블이 10개나 되는 비교적 넓은 식당에는 주방장과 주인 그리고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온 칸이 전부였다.


그나마 식당의 허전함을 벽에 걸린 몇개 안되는 작은 액자들이 채워주었고 천장에는 커다란 선풍기가 소리를 내면서 미지근한 바람을 토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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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풍경과 상상의 부스러기들(11) 카주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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