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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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맬버른의 오래된 루나파크

맬버른을 돌아보면, 우선 첫날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거짓말 처럼 햇볕이 나오는 말도안되는 날씨였다.

하루에 4계절을 모두 체험할 수 있는 변덕스러운 곳이 바로 맬버른의 날씨이다.

따뜻한 호주의 중심부로 어서 가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는데, 정작 애들레이드로 떠나려고 하니,

맬버른에 대한 모든게 아련해지기 시작한다. 이놈의 망각 !

▲ 맬버른 뮤지엄 : 흐린 맬버른의 하늘과 더불어 거대한 규모로 정갈하게 꾸며진 맬버른 뮤지엄 입구

망각이라는 것이 한 번 시작되면 그와 동시에 미화라는 녀석이 함께 작동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본인 마저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은 새로 쓰기 시작한다. 행복을 위한 기억의 재구성이 시작된다.

맬버른 트램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 버스보다 지하철보다 편하고, 창이 크고 타기 편한  쾌적한 트램이 너무 좋았는데...

맬버른을 상징하는 몇 가지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단연 시내를 누비는 트램이다.

깔끔하게 전면광고가 붙어있어 마치 2030년 어느 도시를 보는 것 처럼 미래적이기도 하고,

오래된 클래식 트램은 옛 향수가 가득하다.

맬버른 숙소에서의 생활도 좋았던 것 같아. 새벽마다 수압마저 약하고 뜨거운 물이 잘 나오지 않아서,

미간에 힘을 줬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핑크색 벽이며, 탁 트인 천장, 그리고 항상 누군가 나즈막히 틀어 놓았던

재즈음악이 떠오르면서 그 지저분하던 방의 냄새마저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 브런즈윅 거리에 위치한 오래된 레코드 샵.


브런즈윅 거리가 정말 좋았던 것 같아.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베기기 힘들 정도로 개성넘치고

재미있는 것들이 가득했던 가게들, 빈티지 샵들, 오래된 레코드 점들과 자신의 가게를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브런즈윅

사람들이 기억이 난다. 향수에 젖어있으면서도 트렌드했던 소품과 패션 음악들!

▲ 마키야토를 마시러 들어간 카페

맬버른 페더레이션 관장에 있는 transfer bar의 맥주가 정말 좋았던 것 같아.

오가는 길에 악명높은 맬버른의 변덕스러운 날씨덕에 추위에 덜덜 떨면서 비를 맞았는데,

달콤한 치킨이랑 같이 마시던 생맥주의 맛이 훨씬 또렷한 이유가 뭐지? 그날 비를 맞으며 돌아가다가

파이가게에서 마신 마키야토가 정말 따뜻하고 좋았는데. 한국에서는 좀처럼 마시지도 않은 달달한 마키야토가 그날

따라 어찌나 맛있었던지.

▲ 세인트킬다 비치의 야자수들


망각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점점 희미해져가는 어제와 오늘의 기억들은 망각하는 삶의 특권일까?

하지만 흐릿한 이미지 속에서 점점 따뜻해져가는 기억과 이야기들을 되새겨보니 망각이란 놈이 그리 밉지는 않다.

이렇게 좋고 아름다운 기억들만 필터링 해주다니. 그러나 여전히 계속 되는 망각들. 어쩌면 다시 맬버른에 올때는

또 멍청하게 계절에 맞지 않은 옷을 잔뜩 챙겨와서 추위에 떨면서 거리를 돌아다니고,

깜빡하고 트램요금을 내지 않았다가 관리인에게 경고를 듣고, 우리동네처럼 여겨지던 거리들이 새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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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③강혜진의 맬버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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