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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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이 시작된 후 바라 본 타지마할의 전경.
약 1시간 남짓 타지마할을 배경으로 셔텨를 눌러댄 것 같다. 그것도 주위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더이상 노출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일찍 타지마할에 도착했다면 좋았을텐데...아쉬움에 출구 쪽을 향해 걸으면서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미 해가 진 후의 타지마할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가이드와 약속한 시간때문에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좁은 시골도로는 타지마할에서 빠져나온 수많은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했다.

약속한 장소에는 먼저 도착한 배틀 수상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을 태운 봉고버스는 아그라역에 내려놓고 사라졌다. 하루 일정치고는 무척 힘든 스케줄이었는지 얼굴에는 피로와 고단함이 가득했다. (인도 여행을 시작한지 하루만에 지쳐버린 모습을 보자 마음 속으로 미안함이 번졌다. 세계문화유산답사는 순전히 취재를 위해 계획된 것이었고 여기에 그들이 동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2일 동안 10개의 세계문화유산을 취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왔다. 어쩌면 일행들과 함께 여행하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너무 없었기에 혼자서 움직이기도 버거울 거란 예감이 든 것이다.)  

   
타지마할 주변 상점들의 모습.
   
 
플랫 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인도인들처럼 바닥에 배낭을 내려놓고 등을 기댄채 짧은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잠시 눈을 감고 있었는데 깜빡 졸았나 보다. 일행 중 한 명이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이다. 클락룸에 가서 짐을 찾고 식사를 하기 위해 역사안에 있는 패스트푸드 점으로 들어갔다.

빵과 음료수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하고 카주라호 행 기차를 기다렸다. 보통 1시간 이상 연착되는 게 이 곳 열차 사정이라 처음부터 도착시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을 안썼다.

플랫폼에 있는 수많은 인도인들은 익숙해진 표정과 행동으로 기다리는 시간을 즐기는 것 같다. 대부분 가지고 있던 천을 바닥에 깔고 누워 있었는데 가족단위 여행자들은 음식도 나눠먹고 게임도 한다. 흡사 소풍이라도 나온 학생들처럼 들떠 있는 모습이 더위를 잠시나마 잊게 만들었다.   :namespace prefix = o />

카주라호 행 기차는 자정이 조금 안된 11시 35분 쯤 아그라칸트역에 나타났다. 예정시간인 11시 20분보다 겨우 15분 늦게 온 것이다. 이 정도면 이 곳에서는 연착한 게 아니다. 벌레와 쥐, 소똥 냄새로 가득한 플랫 폼에 더이상 누워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기뻤다. 

미리 예약한 카주라호행 기차는 에어컨이 없는 슬리퍼칸으로 인도서민층이 주로 이용했다. 침대칸이지만 한 구역에 9개의 침대가 있었다. 좌, 우 마주보고 3개씩, 통로쪽에 3개까지 모두 9개의 침대에 9명이 들어갔다. 그뿐이 아니다. 먼저 와서 누워있던 사람들은 침대 주인이 나타나자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다가 다시 바닥에 주저 앉는다. 그들을 피해 맨 위층 침대에 올라가자 맞 닿을 듯 가까이 먼지로 새까맣게 찌든 선풍기 두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회전하고 있는 선풍기의 상태가 금방이라도 비명을 지르며 떨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카주라호역까지는 417km. 다음 날 9시 도착이다. 무려 10시간 동안 침대 속에 있어야 한다. 잠깐 끔찍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잠에 취하고 말테니까 상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실제 침대에 누워보니 침대가 너무 작고 짧아서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새우처럼 구부정하게 누워야 했다. 그래도 맨 위층이라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남을 배려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리를 펴지 못한 채 잠을 자려고 했으나 너무 불편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통로쪽으로 다리를 펴고 잤다. 그러다 통행하는 사람들때문에 다시 다리를 접은 채 자다 쥐가 나서 몇 번이나 깨고 말았다.

몇시쯤 되었을까? 그렇게 쪽잠을 자던 중 승무원이 검표를 하러 와 다시 잠이 꺴다. 그후로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누군가 불을 꺼서 침대칸 주위는 어두웠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으나 내려가는게 귀찮아서 그냥 참기로 한다. 하지만 불과 5분도 안되 결심은 깨지고 급하게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려 보냈다.

순간 어떤 물체가 발목을 꽉 잡는다. 3층에서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등골이 오싹했다. 잠이 확 달아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느낌에 사람 손이 분명하다. 발목을 잡힌 채 바닥에 겨우 내려왔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보니 인도 소년의 손이 10루피를 요구 한다. 화장실이 급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잡히는대로 지폐를 소년에게 주었다.  

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피해 간신히 통로를 빠져나오자 화장실 표시등이 보였다. 화장실 옆에는 누더기가 된 숄 차림의 인도여인과 할아버지 그리고 여자의 아들인 듯한 소년이 바닥에 앉은 채 자고 있다.  

화장실문을 여는데 인도여인이 깨고 말았다. 그녀의 어깨가 공교롭게 화장실 문에 걸쳐져 있었던 것이다. 순간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으악~'하고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녀의 눈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동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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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풍경과 상상의 부스러기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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