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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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치주쿠는 에도시대에 형성된 여인숙 마을로 당시에는 수도로 향하는 영주들이 주로 묵었던 곳이다.

후쿠시마현에서 가장 먼저 드른 곳은 오우치주쿠(大內宿)이다. 강원도 산길과 같은 길을 거슬러 올라가 이제나 저제나 나올까 했더니 어느 순간 버스가 멈춰 선다. 주차장 끝에서 보이는 봉긋봉긋한 지붕을 보니 사진에서 봤던 그곳이 맞는 것 같다.  

   
 눈이 내린 길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짚으로 만든 깔창을 무상공급하고 있다.

오우치주쿠는 에도시대에 형성된 여인숙 마을, 즉 일종의 여관촌이다. 곧게 뻗은 길 양쪽 끝으로 40여채의 전통가옥이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이곳의 가옥들은 대개가 목조건축물이며, 지붕은 짚으로 풍성하게 얹어져 있다. 당시 이 길은 아이즈와카마츠와 닛코 이마이치를 이어주는 최단거리의 길로 경제적으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 길이였기에 에도시대에 수도로 향하던 영주들이 많이 묵었던 곳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다테 마사무네, 호시나 마사유키, 요시다 쇼인, 이자베라 버드(영국의 여성 여행가) 등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묵었다. 

   
차가운 바람과 따스한 햇살을 받으라고 널어놓은 무조각이 보는 이로 하여금 정감을 가지게 한다.

여관은 편안한 쉼을 제공하는 숙박시설이지만 '숙(宿)'에는 항상 따라야하는 것이 '식(食)'이 아닐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우리네 속담을 이네들도 알고 있나보다. 초입부터 오우치주쿠의 명물 네기소바로 유명한 식당이 발길을 잡는다. 겨울동안 사용할 땔감을 쌓아두고, 먹을 양식을 좋은 볕에 말리려 늘어 놓는 모습은 왠지 보는 이로 하여금 정감을 가지게 한다. 겨울이 오면 제일 먼저 김장을 하고, 겨울내내 사용할 연탄과 기름을 채우고나서 미루었던 숙제를 말끔하게 해치운양 편안해했을 우리 부모님의 마음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노릇노릇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생선과 화롯불은 따뜻함과 이색적인 분위기를 함께 제공한다.

네기소바집은 찬바람에 굳어진 몸을 천천히 녹일 수 있도록 상당히 따뜻한 분위기로 이루어져 있다. 바로 이것이 배고픔과 심리적 만족감을 함께 채울 수 있는 일석이조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곳이 아닐까. 살짝 칼집을 낸 밤과 호일로 싼 고구마를 화롯불 깊숙히 집어 넣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듯 하다. 


   
찬것과 따뜻한 것 중 개인의 선호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전투적으로 꽂혀있는 파는 젓가락 대용으로 사용하면서 반찬도 된다. 소바를 퍼먹다가 심심하면 한입씩 베어 먹으면 된다. 찬것과 따뜻한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조금 더 이쁜 가마쿠라를 만들어보겠다고 손끝을 놀린 사람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배도 채웠으니 본격적인 오우치주쿠 여행에 들어가는데 눈에 익은 풍경이 들어온다. 예전 TV드라마 <아이리스(Iris)>에서 주인공들이 뭔가를 구워 먹던 이글루의 모습이다. 가마쿠라(かまくら)라고 불리는 이것은 아키타의 상징으로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오우치주쿠에서 여행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시간을 통해 무르익은 고드름이 절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 없이 내리던 눈은 내리고 녹고, 내리고 녹고를 반복했나보다. 그런 시간의 흐름이 오우치주쿠에 고드름 절경을 만들었다. 어린 시절 집 앞에서 보던 고드름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간이 이들을 이렇게 무르익게 만들었나 보다.

   
 툇마루에 가지런히 늘어놓은 기념품들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잡아 이끈다.

3, 400년 전의 오우치주쿠는 숙박지역이었지만 지금의 오우치주쿠는 내국인에게는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장소가, 외국인에게는 이국적인 정취를 맛볼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서로 다른 모습을 가진 추억의 모티브를 제공하는 중심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기념품들이 있다.

   
아이즈와카마츠의 상징 코보시는 인내와 빠른 회복력을 의미한다.

뭐니뭐니 해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아이즈와카마츠의 상징인 코보시다. 코보시의 원래 이름은 아키아가리 코보시(起き上がり小法師)로 '넘어지면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를 가졌다. 한마디로 오뚜기인 셈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아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전통 인형으로 행운의 마력을 지니고 있으며, 인내와 빠른 회복력을 의미한다. 7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개구리 왕눈이의 정신,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다는 캔디의 정신을 가진 인형이다. 

 

   
소의 근면성과 복을 상징하는 아카베코도 이 지역에서 인기있는 기념품이다.

오우치주쿠에 코보시만 있다고 생각하면 아카베코가 섭섭하다. 아카베코 역시 400년 전부터 악운을 쫓고 행운을 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후쿠시마 지역 사람들이 집집마다 적어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전통인형이다. 소(牛)라는데 코를 보니 돼지와 더 비슷하게 생겼다. 이곳에서 조금만 세심히 살핀다면 지역 사람들이 아카베코를 얼마나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지 금새 알아차릴 수 있다. 길거리에도, 기차에도, 과자에도... 눈을 돌리는 곳마다 아카베코가 인사한다.

   
오우치주쿠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의 지붕으로 화재를 대비하는 이 지역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오우치주쿠의 전통가옥들은 모두 목조건물이다. 나무로 만든 집에 짚으로 엮은 지붕, 언뜻 생각만으로도 화재에 취약했으리라 싶다. 그런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그들은 오우치주쿠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의 지붕을 만들었다. 그들만의 의식으로 지붕 처마 아래에는 작은 염원을 담았다. '수(물, 水)'자를 새겨놓고 수자의 주변에 용을 한 마리씩 새겨 놓았다. 물은 불과 상극이니 불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그들의 마음이었을 것이고, 그 염원들을 신성하게 여겨지는 용들이 잘 지켜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오우치주쿠의 모든 가옥들에 새겨진 그들 선조의 염원이다. 그리고 내가 본 오우치주쿠가 가진 에도시대의 흔적 1호이다.

   
에도시대의 천연 냉장고였던 수로로 차갑고 깨끗함이 특징이다.

그럼 에도시대의 흔적 2호는 바로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수로이다. 길 따라 서 있는 초가집만큼 눈길을 끄는 수로엔 이렇게 차가운 날씨에도 세차게 물이 흘러 내린다. 지금 흐르는 물은 예전의 그 물은 아니지만 수로의 모습은 그때와 다름 없다. 이 물은 아주 차갑고 깨끗한게 특징이라 당시에는 냉장고의 역할까지 했다고 한다. 시원한 맥주를 담궈두고 먹을 수 있는 천연의 냉장고이다.

   
겨울의 오우치주쿠는 멋있는 풍경을 간직하고 있지만 문을 닫은 곳이 많으므로 여행을 떠나기 전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한바퀴를 돌아나오니 예상보다 꽤 시간이 흘렀다. 약간의 아쉬움이 남지만 뭔가 조금 빈 듯해야 더 기억이 남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핑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법이다. 오우치주쿠에서도 그 핑계를 만들어 놓고 다시 떠나온다. 후쿠시마에 들리면 꼭 오우치주쿠를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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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치주쿠에서 에도시대의 흔적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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