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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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도착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파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첫 날이었다. 하지만 시차적응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루만 푹 자면 문제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거의 삼일 동안은 계속 피곤했고, 저녁 먹을 때쯤이 되면 졸음이 쏟아져 왔다. 게다가 첫 날 날씨는 정말 최악이었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고, 비가 조금씩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했다. 설마 앞으로 계속 이런 날씨인가 했는데, 다행히 가장 끔찍했던 날씨로 기억된다.  :namespace prefix = o />

숙소에서 나와 향한 첫 목적지는 일요일 점심을 예약한 식당이었다. 숙소를 나서기 전에는 먼저 구글 스트릿으로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따라갔다. 이렇게 한 번 길을 보고 나면 마치 알던 길을 다니듯이 헤매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물론 길이 복잡하거나 경유지가 많을 때는 한계가 있지만 한 번 헤매고 난 길은 더 확실히 기억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식당까지는 30분 정도 거리였다. 걷기에 짧은 시간은 아니었으나 우리는 여행 내내 거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다녔다. 

   
▲ Etinenne Marcel 거리. 건물의 구조가 상당히 유사하다.

파리에서 교통수단보다는 주로 걷기를 선택한 이유

교통수단보다는 주로 걷기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버스는 노선을 잘 몰랐고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지하철은 타기 싫었다. 다른 이유는 정수복의 <<파리를 생각한다>>라는 책 때문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파리는 걸을 만한 규모의 도시이자 걷기 좋은 도시이고, 무엇보다 걸음으로써 더 잘 알 수 있는 도시이다. 이 책에는 도시 걷기의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저자는 파리에 체류하면서 7년 넘게 파리를 걸었고, 그 생각들이 모여 책이 되었다. 걷기와 생각은 얼핏 이질적인 행위 같지만 걷기를 통해 생각을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에게까지 이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걸으면서 대화하고 토론하기를 좋아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지어 지상의 세계를 관찰하기 위해 네 발로 기어다기도 했다. 즉, 걷기는 구체적인 현실과 마주하는 한 가지 방법인 셈이다.
 


정수복 역시 파리 걷기를 통해 구체성과 현실을 들여다보고, 그로부터 파리를 읽었다. 이때 파리는 마치 하나의 거대한 도서관과 같으며, 파리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하나하나 의미를 담고 있는 책과 같다. 파리를 책처럼 읽고자 한 또 다른 이는 발터 벤야민이었다. 벤야민은 파리를 거대한 도서관 열람실로 보았다. 그는 누구보다 파리를 많이 걸었고, 파리 걷기를 통해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미완의 저작을 남겼다.
 


물론 걷는다고 자연스럽게 파리가 읽히는 건 아니었다. 서울과 달리 모든 건물의 일괄적인 층수, 회색빛 건물, 문이나 창문의 똑같은 모양새, 반복되는 유사한 거리의 형태들은 지루함으로 다가왔다. 책처럼 꺼내서 유심히 살펴볼 만한 풍경이나 장면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 며칠 동안 파리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처럼 생각되었다. 걷다 보면 마치 아파트 단지 안 놀이터처럼 주요 장소 혹은 관광지가 나오는 식이었다.
 


   
▲ 이 정도 거리 폭의 신호등에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린다면 십중팔구 관광객이다.

그러나 파리가 걸을만한 도시인 것은 분명했다. 일단 규모가 작았다. 이를테면 노트르담에서 조금 걸으면 루브르 박물관이 나오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조금 걸으면 오르세 미술관이 나오고, 오르세 미술관에서 조금 걸으면 콩코르드 광장이 나오는 식이었다. 하지만 파리를 걸을만한 도시로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무단횡단이 자유로운 데에 있다. 차가 많은 큰 도로라면 위험하겠지만 그 밖의 길가에서는 신호에 관계없이 차가 없으면 그냥 건너도 되기 때문에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이 없다. 교통경찰이 중앙에서 도로를 정리하는 중에도 파리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차가 오는지만 살피고 도로를 건넜다. 


해산물 레스토랑 Goumard에 도착!


   
▲ 해산물 레스토랑 Goumard의 입구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 먼저 Etienne Marcel 거리를 걸었다. 숙소에서 내려오면 바로 만나게 되는 큰길가로 가장 많이 걸어 다닌 길 중 하나다. 이 길에서 쭉 직진하다가 방돔 광장을 지나서 한 번 방향을 꺾은 후에 직진하면 목적지인 Goumard라는 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Goumard는 1구에 있는 해산물 레스토랑으로 다양한 종류의 생굴과 해산물 플레이트, 그리고 생선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파리 레스토랑 중 국내에서 비교적 쉽게 후기를 볼 수 있는 곳인데, 우리는 일요일 점심에 오픈한다는 이유 때문에 예약했었다. 결과적으로 실망스러운 집이었다. 많은 사람이 미슐랭 원스타라고 포스팅을 했는데, 현재는 아니다. 수긍이 가는 게 원스타부터는 음식에서 상당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1층에 들어서니 먼저 해산물을 손질하는 분이 인사를 해주고, 안쪽으로 리셉션이 나온다. 리셉션에서 역시 인사를 건네고, 예약했는지를 물었다. “봉쥬~ 레져베이숑?”. 예약을 확인하고 2층으로 올라가서 자리에 앉았다. 12시 반쯤 도착했는데, 이미 몇 테이블이 있었고, 얼마 지나니 자리는 거의 꽉 찼다. 아무래도 일요일 점심에 여는 식당이 드물기 때문이 아닌지 싶다. 테이블은 2인석에 앉았다. 왼쪽에 앉은 아주머니는 우리가 궁금한지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며 재팬 어쩌고 하는 걸 봐선 우리를 일본인으로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2 코스로 주문했다. 각자 전채요리인 엉뜨레entre와 메인요리인 쁠라plat, 쁠라와 디저트인 데쎄흐dessert로 주문해서 나눠 먹었다. 이상하게도 음식은 고를 수 없었고, 정해져 있다고 했다. 메뉴를 주문하면서 음식을 고르지 못한 곳은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어쨌든 빵과 함께 이곳이 해산물 식당임을 다시 한 번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해초류가 곁들여진 버터가 나왔다. 다음으로, 엉뜨레는 달팽이 튀김이 곁들여진 루꼴라 샐러드였다. 루꼴라는 신선했고 쫄깃한 달팽이의 식감도 괜찮았지만 너무 평범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사였기 때문에 기대가 너무 큰 탓도 있었다. 

   
▲ 메인으로 나온 생선 요리

쁠라 역시 직접 고르지 못하고 제공된 요리라 어떤 생선인지 짐작이 안 된다. 생긴 형태로 봐서 홍어류로 짐작만 할 뿐이었다. 껍질은 없고, 긴 가시가 많은 생선이었는데, 양은 적지 않았다. 특히 알감자와 베이컨, 양파를 볶아낸 가니쉬의 양이 상당해서 꽤 배가 불렀다. 데쎄흐는 감과 식감이 비슷한 과일을 올린 타르트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곁들여졌다. 맛없기 힘든 무난한 메뉴였다.

   
▲ 센 강. 좌측에는 루브르 박물관의 한 쪽 끝과 우측에는 오르세 미술관이 보인다.

 저녁은 마트 음식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식사를 마치고 기분전환 겸 센 강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웬걸, 강도, 하늘도, 건물도 회색빛으로 뒤덮여 있는 모습에 기분은 더 가라앉았다. 더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고 저녁이 되니 둘 다 졸립고 피곤했다. 결국 저녁은 마트에서 장을 봐 숙소에서 먹기로 했다.
 

   
▲ 마트 냉동 식품치곤 맛이 좋았던 쵸리죠 피자

마트에서는 전자레인지로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초리죠 햄이 올려진 냉동 피자를 샀다. 냉동치고는 꽤 먹을 만했고, 가격도 5유로 내외로 저렴했다. 무엇보다 1유로 이내면 탄산수 1.5리터를 살 수 있어서 파리에서는 식당에서든 집에서든 탄산수만 계속 마셨다. 피자와 함께 먹기 위해 남부론 와인도 한 병 샀고, 후식으로 판나코다까지 곁들이니 꽤 근사한 식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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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③ 지루한 파리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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