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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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발산역 근처 식당에서 장수희 작가(서양화)를 만났다. 그녀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17년째 살고 있었다. 코로나19 장벽을 뚫고 그녀가 한국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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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일부터 6일까지 인사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제6회 개인전 때문입니다.”

개인전이라면 호주에서도 가능한데 왜 굳이 지금처럼 전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봉쇄된 상황에 한국까지 왔을까? 호기심 어린 내 눈을 읽었는지 장 작가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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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원(Long for) I Oil on Canvas I 203 x 107 cm I 2019

 

향수병을 치유받고 싶어서 고국을 찾았어요. 저는 호주에서 생활한 지 17년차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브리즈번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에요. 눈부시게 빛나는 바다와 푸르른 하늘이 사계절 내내 펼쳐지는데, 사계절 변화가 없는 이 나라에서 나는 열일곱 번의 겨울을 여름에 맞았어요. 향수병은 그렇게 여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 향수병을 고국 서울에서 다양한 시선을 통해 나누고 싶었어요. 그렇게 나누다보면 내 안의 향수병도 조금씩 사그라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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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희 작가 ( ⓒ 최치선 기자)

 

향수병에 대해 말하는 장 작가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얼마나 외롭고 그리웠으면 전시회 제목마저 향수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29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가장 큰 120호가 1(염원), 100호가 2점이다. 나머지는 10호에서 12호 작품이다. 29점 중 8점의 작품이 레진으로 작업한 것들이다.

합성수지를 재료로 사용하기때문에 고글과 공업용 마스크는 필수이다. 오랫동안 밀폐된 공간에서 작업하면 건강에 안좋은데 장 작가는 에폭시 작업을 3년째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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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에서 레진아트 작업을 하는 장수희 작가 (ⓒ장수희 )

 

주위에서 건강에 해롭다고 그만두라는데 저는 고민이 많습니다. 하지만 당장 그만두기는 힘들것 같아요. 레진이 움직이는 과정을 즐겨서 계속하고 싶거든요. 레진으로 작업하는 사람은 많은데 아마도 제가 세계에서 레진을 이용해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유일한 작가일 것 같아요.”

 

장 작가는 레진 작업을 하다보면 처음엔 몇 밀리 안되던 캔버스의 두께가 나중엔 몇센티미터가 되어서 두터워진다고 한다. 덕분에 작품들은 입체감이 제대로 표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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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set free) 18ⅹ24cm, Resin on Canvas,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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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50ⅹ50cm, Modeling Paste, Acrylic on Canvas,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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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다버그(Bundaberg) I Bundaberg Sand, Resin on wooden panel I 40.5 x 51.5 cm I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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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coexistence) I Oil, Acrylic on wooden panel I 46 x 61 cm I 2019

 

장 작가는 2016년부터 작품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림은 중학생 때부터 배웠고 대학땐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후 집안 사정으로 작품활동을 하지못했고 2005년 혼자 호주로 와서 결혼 후 브리즈번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먼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 향수병에 걸렸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다 늦가을 어느날인가 집 앞 호수공원에 갔는데 전날 바람이 세차게 불었는지 공원에 있는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전부 하얗게 되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바람에 의해 나무껍질이 전부 벗겨진 것이었다.

 

나는 땅에 떨어진 나무껍질을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그 모습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어요 당시 나는 동생을 잃고 혼자서 호주라는 낯선 땅에 두 발을 온전히 내딛지 못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방향을 잃고 있던 나는 나무를 감싸고 있던 껍질이 땅에 떨어져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저렇게 떨어진채 거름이나 쓰레기가 되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나에 대한 주문이었어요. 나무껍질처럼 나도 버려지고 가치없는 존재가 되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때 장 작가는 바닥에 떨어진 나무껍질을 모아 캔버스에 부치는 작업을 했다. 그결과 나무껍질은 훌륭한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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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녹아(stushily) - Acylic, Bark on Canvas, 75ⅹ105cm, 2016


유칼립투스 나무껍질을 활용한 첫 작품은 <눈이 녹아(stushily)> 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큰 사슴이 상징적인 작품인데, 나무껍질과 사슴뿔의 질감이 거의 흡사해요. 그리고 나무 껍질은 떨어져도 또다시 껍질이 자라나잖아요. 사슴의 뿔 역시 부러지더라도 다시 자라나는 것들이 의미가 서로 소통되면서 탄생한 작품입니다.“

 

그때부터 장 작가는 더이상 방황하지 않았다. 향수병도 차츰 가라앉았고 동생에 대한 그리움도 조금씩 메워졌다.

 

나무껍질이 멋진 작품으로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 역시 희망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작품을 통해 나는 다시 한번 삶의 의미를 부여한 것입니다. 그렇게 작업을 시작하면서 나에게 스스로 위로와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장 작가는 어린시절부터 주홍글씨처럼 자신을 힘들게 했던 다리의 화상자국도 작품을 하면서 배척하고 싶은 상처가 아니라 보듬고 싶은 상처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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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relation) I Modeling paste, Acrylic on Canvas I 지름 50cm I 2021

 

이번 전시회 작품의 특징은 무엇일까?

내 작품의 특징은 모든 풍경에 눈이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눈은 고국 대한민국에 대한 그리움과 고향에 대한 향수병을 표현입니다. 브리즈번에서는 내가 호주에 온지 17년 동안 한 번도 눈을 볼 수 없었어요. 나는 캔버스 위에 눈을 내리게 했고 작품을 하는 순간만큼은 향수병이 사라졌어요.“

 

작가에게 이번 전시회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내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풍경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경치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풍경은 감상자 또한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보기를 바라는 것이죠. 각자의 입장에서 그림을 봤으면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 그림은 더욱 풍성해 질 것이기 때문 입니다.“

 

앞으로의 작품계획은 어떻게 되는 지 궁금했다.

”2023년 상반기에 인터뷰(INTERVIEW)라는 제목으로 제7회 전시회를 할 예정입니다. 제가 17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들과 호주 여행을 하며 보게 되는 풍경이 다음 전시회의 주인공입니다. ‘수필같은 그림처럼 내가 자연을 만나서 인터뷰 하는 것이죠. 호주의 멋진 풍경들이 그 대상이고 캔버스에서 새롭게 해석되고 탄생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코로나시국에 호주의 풍경을 보며 힐링했으면 좋겠습니다.“

 

장 작가는 작업을 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나에게 그림은 삶 자체 입니다. 변치않는 우정이고 친구이고 쉼터 같은 공간이고 치유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그림 작업 할 때가 즐겁고 가장 장수희 답습니다.“

 

작가는 지금의 자신이 있기까지 정신적 멘토가 되어 준 중학교 미술선생님 이었던 정용일 작가님을 존경한다.

제가 미술에 대해 고민할 때 선생님께서 그런 고민할 시간에 너의 손을 부지런히 움직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를 그리고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면 된다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정 선생님의 말씀을 모법답안처럼 가슴에 품고 미술에 대한 고민이나 회의가 찾아올때마다 꺼내든다. 그러면 흐렸던 시야가 선명해지듯 고민이 사라지고 가야할 방향이 분명하게 보인다.

 

장수희 작가는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작가 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의 그림의 시작은 지독히 외로운 그리움이라는 '()'에서 시작했다. 그 점 하나하나에 그리움을 담아 선이되고 세상이 되어, 내가 머물고 싶은 풍경 속 이야기를 만든다. 점은 한 송이 차가운 눈이 되어 겨울이라는 계절을 만들고, 그 속에서 나는 눈을 맞으며 내 고향길을 걷는다.“

 

인터뷰를 마치고 장 작가에게 이번 전시회로 향수병이 치유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자 그녀는 웃으면서 내가 만든 나무껍질을 벗을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장수희 작가 프로필

장수희 작가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시각디자인 학과를 졸업하고, 호원대, 원광대, 삼육대, 청양도립대를 출강했으며, 현재는 호주 브리즈번 One Education Art 디렉터를 역임하고 있다. 국내·외 단체전 참여와 서울, 인천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2021년 6번째 개인전을 인사동에서 개최한다. 2016년부터 호주의 풍경 속에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눈(雪)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외국에서의 생활 속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작품으로 전달하였다.

●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정회원

● 한국미술청람회 정회원 

● 호주 One Education Purple Fish Art College 원장 (브리즈번 & 골드코스트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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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희 작가  (ⓒ최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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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수희 작가 ”나무껍질에 생명을 주는 작업으로 내 삶도 다시 태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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