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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민희식 기자] 출발부터 걱정이었다. 카운터에서 탐승권을 두 장 받아야 하는데 달랑 한 장만 받았기 때문이다. 파리를 경유해 밀라노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두 장의 탑승권이 필요한데 나머지 한 장은 파리 드골 공항에서 받으란다. 비행기를 갈아탈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한 시간,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출국장 카운터 직원은 한 시간이면 환승하는 데 문제없다는 듯이 사무적인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경험상 한 시간은 빠듯했다. 그 넓은 파리 드골 공항은 환승을 위해 터미널과 터미널 사이를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탑승권과 짐까지 챙기려면 비행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과거 파리 드골 공항에서 제네바행 비행기로 갈아타려다 시간 부족으로 놓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또다시 악몽이 시작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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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나 혼자다. 일행도 가이드도 없이 나 홀로 여행길에 나섰다. 가끔은 이렇게 혼자 여행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때도 있다. 아이패드에 영화도 여러 편 챙겨 넣었다. 스마트폰에는 신곡도 잔뜩 내려받아놨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할 듯해 평소에 미뤄놨던 책도 몇 권 챙겼다. 이만하면 출장 준비는 완벽했다. 비행기만 타면 됐다. 하지만 파리행 비행기에서 밀려드는 불안감은 어찌하지 못했다. 짐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탑승권을 발행해준다는 환승 카운터는 잘 찾을 수 있을지, 제시간에 비행기는 갈아탈 수 있을지, 오만 가지 걱정이 날 불안하게 했다. 영화도, 음악도, 책도 그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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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 남짓 비행 끝에 비행기는 무사히 파리 드골 공항에 착륙했다. 예상보다 15분 늦은 시각이었다. 예상대로 불길했다. 환승 시간은 45, 이 안에 모든 수속을 끝마치고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환승 카운터부터 찾았다. ‘연결 항공편(Flight Connecting)’ 표지판을 따라가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환승 카운터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공항 직원의 도움을 받아 환승 카운터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옆에 두고 헤매고 있었다. 겨우 환승 카운터를 찾았지만 줄이 길었다. 한 무리의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이 길게 늘어서 수속 중이었다. 의사소통도 어려워 보였고 행동도 느렸다. 그들은 급할 게 없어 보였다. 똥줄이 타는 것은 나뿐이었다. 내 차례가 되자 서둘러 밀라노행 탑승권을 받고 짐을 체크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짐이 제대로 밀라노행 비행기로 옮겨질지 불안했다.
내 짐을 밀라노 리나테 공항에서 무사히 찾을 수 있을까요?”
걱정어린 표정으로 카운터 직원에게 물었다.
당연하죠(Sure).”
역시 사무적인 답변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파리 드골 공항은 워낙 복잡하고 넓어서 환승할 때 짐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런 불운이 내게 닥치지 않길 빌 뿐이었다.
비즈니스석이라 라운지를 이용하실 수 있지만 탑승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게이트로 이동하셔야겠습니다.”

시계를 보니 밀라노행 비행기 탑승 시간은 15분 남았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연결 항공편이라고 쓰여진 화살표 방향을 따라 달렸다. 입국 심사대를 통과해 화살표 방향을 따라 계속 움직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연결 항공편이라고 쓰여진 표지판이 보이지 않았다. 뭐에 홀린 듯 맞닿은 곳이 짐 찾는 곳(Baggage)’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공항 안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오던 길을 다시 돌아갔더니 입국 심사대가 가로막고 있어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었다. 짐 찾는 곳과 입국 심사대 사이에 갇히게 된 셈이다. 방법은 짐 찾는 곳을 통과해 공항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밖에 없었다.

당시 판단으로 가장 빠르게 밀라노행 게이트로 넘어가는 방법은 공항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이었다. 밀라노행 비행기의 터미널은 맞은편 건물이었다. 정상대로라면 브리지를 통해 터미널과 터미널 사이를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공항 밖으로 나가버렸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이역만리 타국 공항에서 드라마 한편을 찍고 있었다. 첩보물, 아니면 멜로, 이도저도 아니면 막장 드라마라도 좋다. 비행기만 놓치지 않는다면 에로물도 불사할 판이다.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공항에서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내 눈앞에 보안 검색대가 보였다. 저기를 통과해야 게이트로 향할 수 있는데 알다시피 보안 검색대는 항상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포기였다. 시곗바늘은 탑승 시간을 이미 넘어서 있었다.
10년 전 이곳에서 제네바행 비행기를 놓쳤을 때도 정신없이 뛴 기억밖엔 없다. 게이트 앞에 도착했을 때 비행기는 아직 출발 전이었지만 비행기 문이 닫혔다고 탑승을 거부당했다. 출발 시간 10분 후에 도착해 어쩔 수 없이 눈앞에서 비행기를 떠나보내야 했다. 환승 비행기를 놓치면 여러 가지로 난감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일단 항공사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다음 비행기편 티켓을 발급받아야 한다. 그리고 공항에서 적어도 4시간에서 6시간 동안 대기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짐을 항공편으로 붙였을 경우다. 짐은 먼저 도착해 있고 사람은 다음편 비행기로 도착하기 때문에 짐 찾는 데 매우 복잡해진다. 이럴 때 짐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이런 악몽 같은 일이 내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겨우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니 탑승 시간이 벌써 20분이나 지났다. 다시 뛰려고 해도 다리가 후들거려 걸을 힘조차 없었다. 하지만 다시 숨을 가다듬고 뛰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상한 오기가 발동했다. 인생이 그러하듯 세상일은 어찌 될지 모르니까.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길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모퉁이를 돌아서니 저 멀리 내가 탈 비행기의 꼬리가 눈에 들어왔다. 헤어진 옛 애인을 만난들 이보다 반가울까.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소리라도 질러 비행기를 잡아두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력을 다해 달릴 수밖에 없었다. 몸은 어느새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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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세이]파리 드골 공항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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