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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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민희식 기자] 6개월 만에 다시 밀라노를 찾았다. 밀라노는 이탈리아 도시 중에서 가장 매력 없는 도시 중 하나다. 베네치아 같은 낭만도 없고 피렌체 같은 문화적 우월성도 느껴지지 않는 밋밋한 도시다. 만약 쇼핑을 미친 듯이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내 말에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밀라노는 패션 도시답게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의 총본산이긴 하다. 하지만 도시 자체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럭셔리하다거나 전통적인 느낌은 전혀 없다. 같은 이탈리아지만 피렌체와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격이 다르다. 쇼핑을 제외한다면 밀라노는 두오모 성당과 스칼라 극장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세 가지가 전부라고 할 만큼 무료한 도시다.
20140622_174549.jpg▲ 밀라노 두오모 성당
 
하지만 난 이탈리아를 좋아한다. 특히 밀라노는 상업 도시의 삭막함을 대변하듯 불친절하게 다가왔지만 그 도시가 품고 있는 브랜드 파워는 실로 대단하기 때문이다. 내가 밀라노를 방문하는 목적의 대부분은 컬렉션을 보기 위해서다. 구찌, 아르마니, 제냐, 프라다, 돌체&가바나, 토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밀라노는 다른 도시와 비교해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20140622_174447.jpg▲ 밀라노 엠마누엘 2세 갤러리
 
내가 이탈리아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탈리아 남자들이 옷을 잘 입는다는 점이다. 아마 세계에서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중년 남자들의 옷 입는 센스는 탁월하다. 중년이 되면 으레 배가 나오기 마련인데 그럼에도 옷태가 훌륭하다. 블레이저와 바지의 컬러가 잘 어우러지기도 하지만 우선 몸에 꼭 맞게 옷을 잘 입는다. 옷 핏이 잘 맞으면 패셔너블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20140622_125838.jpg▲ 한가한 일요일의 밀라노 골목길
 
우리나라 중년 남자들이 어쩔 수 없이 아저씨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옷을 크게 입어 버릇하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이 캐주얼과 스포츠웨어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 있다. 대부분의 중년 남성들이 골프 웨어가 캐주얼인줄 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등산복이 몹시 눈에 거슬린다. 등산복이 일상복으로 정착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대단한 마케팅의 승리다.
20140621_214318.jpg▲ 밀라노의 호텔
 
이탈리아 피렌체는 남성 패션의 매카다. 매년 여름 남성복 박람회인 피티 워모가 피렌체에서 열리는데 그곳에 모인 이탈리아 남자들의 패션 감각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들이 즐겨 입는 스타일은 비즈니스 캐주얼이다. 비즈니스 캐주얼에는 비즈니스에 방점이 찍힌다. 가볍고 편한 것보다는 캐주얼에도 격식을 우선시 한다는 얘기다.
20150620_195145.jpg▲ 밀라노 컬렉션 무대
 
비즈니스 캐주얼의 필수 아이템은 블레이저다. 바지는 다양한 소재와 컬러를 활용하지만 블레이저만큼은 신경 써서 선택한다. 블레이저에 부토니에나 포켓스퀘어 정도로 장식했을 뿐이지만 패션의 고수다운 풍모가 느껴진다. 비즈니스 캐주얼의 화룡점정은 바로 셔츠다. 어떤 셔츠를 입느냐에 따라서 비즈니스 캐주얼의 품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드레스 셔츠를 입는 게 일반적이지만 칵테일파티나 격식을 차려야 할 때는 실크 셔츠나 칼라가 독특한 셔츠를 입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캐주얼 차림으로 출근하는 직장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하지만 출근 복장이 라는 것이 주말 레저용 차림과 별반 차이가 없다면 심각하게 반성해볼 일이다. 출근할 때 입는 캐주얼이라 함은 비즈니스 캐주얼을 의미한다. 아무 생각 없이 피케 셔츠에 데님 차림으로 출근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근사한 블레이저는 아니더라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재킷 정도는 걸치고 다니는 것이 패션 테러리스트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티셔츠에 데님 차림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있다면 성공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날라리처럼 입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신경 써서 입으란 얘기다.

사실 이탈리아 남자들이 옷을 잘 입는 것은 조상 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로마시대부터 르네상스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의 문화적 자산이 만들어놓은 결과가 패션에 녹아든 탓이다. 인간은 환경에 맞춰 옷을 입게 마련이다. 어떤 환경에서 생활하느냐에 따라 패션 감각이 결정된다고 본다. 밀라노는 매력적인 도시는 아니지만 이탈리아 문화가 응축된 곳이다. 이곳에서 세계 패션을 리드하는 브랜드들이 매 시즌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하는 것도 이탈리아니까 가능한 일이다.

일본 사람들은 자국에서 생산한 자동차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지만 이탈리아 명차라면 사족을 못 쓴다. 기술력이나 생산 시스템에서는 일본이 이탈리아보다 훨씬 앞서지만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앞에서는 그 높던 콧대로 이내 허물어지고 만다. 그것은 일본이 기술력만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이탈리아다운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패션도 마차가지다. 내가 밀라노 출장을 힘들어하면서도 또 찾게 되는 것은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이탈리아만의 정수가 그곳에서 펼쳐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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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패션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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