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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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만의 작품 <사막>

지하철역에서 처음 그를 보았다. 유명 카메라 광고모델로 나온 그가 한쪽 벽을 다 채운 커다란 광고판에서 행인들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레게 머리를 하고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던 그의 눈이 궁금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청담동 스튜디오 ‘벨벳언더그라운드’를 방문했을 때 그는 3월에 열리는 두 개의 사진 전(AFRICA PROJECT. 1. ADIDAS ORIGINALS WITH PHOTOGRAPHER KIM JUNG MAN
박여숙 화랑 3월 5일 ~ 15일, KIM JUNG MAN THE BLOSSOM PHOTOGRAPHS. PYOGAUERY BEIJING. 3월 7일~31일) 준비로 여유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허락된 인터뷰는 그의 주문대로 특별한 무엇을 만들어야 했다. 사진과 글 모두 그를 상징적으로 보여줄수 있는 아이콘이 필요했다. 하지만 두시간만에 그가 작업해 온 35년의 시간을 담아낼 수는 없었다. 결국 다섯 개의 주제로 압축된 파일이 나왔다. 각각의 파일은 통조림처럼 상당히 많은 내용물을 함축하고 있다. 지나온 추억과 사진에 대한 그의 생각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이 들어있는 상당히 무거운 통조림이다.

Luminous
스튜디오 안은 아프리카를 닮았다. 가지가 많은 커다란 나무와 새들, 빠른 템포의 음악,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장신구와 가면, 얼룩무늬 카펫 등은 레게머리의 주인과 잘 어울렸다. 제한된 시간이라 표지 촬영을 먼저 했다. 그는 꽤 오래된 대형 카메라 앞에서 직접 작업하는 포즈를 취해 주었다. 세계적인 사진작가 ‘김중만’이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모습은 신선했다. 
 
그는 마치 거울에서 자신을 보듯 자연스러웠다. 사진기자가 조명을 준비하자 한마디 툭 던진다. “생으로 가자” 창을 통해 들어 온 자연의 빛으로 자연스럽게 찍자는 말이었다. 촬영이 진행 될수록 누가 누구를 찍는지 구분이 안 될 만큼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이번엔 내 팔만 찍어줘” 그의 오른 팔을 보자 ‘Luminous’라고 새겨진 타투가 선명하다. 카메라를 든 손으로부터 ‘Luminous’가 새겨진 팔까지는 오래전부터 하나라는 느낌을 주었다. 그가 왜 저런 포즈를 보여주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처음이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주문을 해보기는’ 그러면서 ‘알지만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는데 손해가 많더라. 이제는 조금씩 아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그는 촬영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표현해 주었다.
 
인터뷰는 미리 준비해 간 다섯 개의 주제(1.인연 또는 운명-프랑스 니스에 있는 국립응용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사진을 하게 된 동기, 2.차이-사진과 그림, 3.변화-시기별 작업의 변화, 4.회상 - 부친에 대한 추억과 관계, 5.자유와 꿈)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Fate
어릴 때 꿈은 소설가였어. 초등학교 5학년 때 로빈슨 크루소의 ‘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탐험소설을 쓰고 싶었거든. 그렇게 꿈을 키우고 있던 어느 날 나에게 기적이 일어난거야. 아버지께서 나를 데리고 아프리카로 가신거지. 그 때는 정말 좋았어. 드디어 내 꿈을 이룰 수가 있겠구나. 그런데 막상 아프리카에 도착해 보니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르잖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사막 밖에 없었어. 정글과 타잔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야. 어린시절 꿈은 그렇게 사라졌지. 
 
그 후 나는 혼자서 프랑스 유학을 떠났어. 아프리카에서 꿈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길을 떠난 것인지 잘 모르겠어. 아무튼 나는 프랑스에 와서 막연하게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어. 그래서 미술대학에 들어갔고 서양화를 전공했지. 사진을 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었어.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같기도 하지만. 어느 날 암실을 갖고 있는 친구 집에 갔는데 놀라운 사실을 알았어. 친구를 따라 들어간 암실에서 하얀 인화지에 사진이 입혀져서 5분만에 나온거야. 
 
그걸 보는 순간 머리를 때리는 충격을 받았어. 그림은 몇 개월에 걸려서 겨우 하나 나올까 말까 한데 사진은 불과 몇 분만에 한 장이 나오잖아. 지금은 디지털카메라가 나와서 찍은 즉시 나오지만 말야. 그 일은 내 인생의 반환점을 마련해 준 중요한 사건이었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35년 동안 사진을 하고 있으니까.

Difference
사진과 그림의 차이는 공통점도 있지만 다른 점이 더 많아. 그림은 크리에티브한 세계지만 사진은 리얼리즘이 중요시되는 세계야. 내 영혼이 사진을 통해서 한 꺼풀 덧 입혀지면서 새로운 체험을 하게되지. 실내에서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제약이 많지만 기본제품으로 완성되기 때문에 그림보다는 훨씬 간단해. 물론 시각적인 분야는 같지만 수 천 년 된 그림과 불과 2백년도 안된 사진은 차이가 많다고 봐야지.
 
하지만 그림과 사진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 그림은 작가의 상상력이 무척 중요하지만 사진은 보이는 피사체가 전부야. 그렇다고 사진이 눈에 보이는 것만 담지는 않아. 여기에 사진의 매력이 있거든. 내가 못 보았던 것을 인화된 사진 속에서 찾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때마다 신기하고 놀라워. 언젠가 인터뷰에서 말했지만 로스앤젤레스의 피코(PICO)가에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어. 아주 오래전이지. 
 
내가 찍은 것은 아무 의미없이 거리에 방치된 채 사람들의 발에 치이는 작은 돌멩이였어. 그런데 사진을 인화하자 그 배경으로 잡힌 초점 잃은 뿌연 화면 속에 도로가 보이고, 그 끝에 태평양이 이어져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 된거야. 그게 나한테 두 번째로 가져다 준 충격이었어. 사진은 그림에서 볼 수 없는 사물에 대한 진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 같아.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닐까 생각해.

Transition
사진을 처음배우고 작업할 때는 나를 버리지 못했어. 대학에서 배운 그림에 대한 지식과 습관을 그대로 적용했거든. 사진을 찍을 때 머릿속에 모든 것을 생각했어. 붓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듯 모든 작업을 스케치 하고나서 촬영했거든. 나한테 사진은 캔버스 대신 필름을 이용한 작업이었어. 
 
그렇게 10년 동안 하다가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 사건이 있었지. 여름에 일본의 호텔 수영장에서 아주 우연히 벌어진 일이야. 수영장의 갈라진 틈 사이 들꽃 같은 게 피어 있는데 너무 아름답잖아. 순간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이 댔어. 그때까지 나는 머릿속에서 생각한 사진 외에는 찍지 않았는데 말야. 그 날 많은 것을 생각했어. 그리고 결심했지.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찍은 사진 말고 기록적인 사진, 다큐적인 사진을 찍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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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자유를 노래하는 빛의 여행자 '김중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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