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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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최치선 기자] 중원과 아시아를 넘어 멀리 유럽까지 정복했던 칭기즈 칸(테무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내몽골(네이멍구)을 찾아가 보았다.  칸의 후예는 지금도 드넓은 초원과 사막에서 용맹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말타기와 씨름경기를 통해 이들한테 여전히 칭기즈 칸의 피가 흐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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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고2.jpg▲ 내몽골의 씨름은 전통 복장과 신발을 착용하고 한다. (사진=최치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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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고5.jpg▲ 내몽골의 가장 큰 축제인 나담축제 기간에는 씨름 외에도 말타기, 활쏘기 등의 경연이 펼쳐진다.
 

물론 내몽골은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기는 하지만 최초의 자치구로서 어느 정도 독립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렇게 몽골은 정확하게 말하면 외몽골과 내몽골로 나누어진 반쪽짜리 국가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힘에 의해 내몽골과 외몽골이 병합하지 못하고 나누어진 채 반쪽은 내몽골 자치구로 중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2백여 년 동안 몽골에게 조공을 바쳐왔던 러시아가 강대해지면서 몽골을 거쳐 남진하게 된다. 이때 러시아와 청나라는 몽골을 완충경계 지역으로 삼는다. 청조가 망하고 중화민국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외몽골 지역의 몽골인들은 독립을 선언하고 내몽골 지역까지 병합해 하나의 몽골제국을 재건하려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결국 중국과 러시아의 압력으로 좌절된다.   


그 후, 1917년 러시아의 볼셰비키 붉은 혁명이 성공한 뒤,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외몽골은 독립권 확보를 위해 중국과 러시아 백군(반혁명세력)의 지원을 받고 있는 몽골의 활불 정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독립을 하게 되자 반쪽의 독립국가가 만들어졌다.   

1945년 중국을 대표하던 장개석 정부와 스탈린은 대일본 전쟁을 위해 외몽골을 끌어들인다. 당시 대장정을 마치고 섬서성 연안에 머무르고 있던 모택동은 일본의 점령지 내몽골에 대해서 이후 자치구로 인정할 것을 약속하게 된다. 이 약속은 1947년 5월 1일 지켜져 내몽골이 중국에서 최초로 자치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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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 칭기즈 칸의 후예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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