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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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오는 기억

고운 최치선

▲ 여수 엑스포 빅오쇼의 한 장면 [사진=최치선 기자]

태초에 천공 가운데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생명을 잉태하고 사물에 이름을 지어주었다

세상은 빛으로 충만했고 사람과 식물과 동물들은 제 수명을 누렸다

넉넉한 품에 가득 고여 있는 빛은 아무리 퍼주어도 없어지지 않았다

빛을 생명이라 여기던 때는 사람도 식물도 동물도 하나였다

그렇게 영원할 줄 알았던 빛은 사람의 욕심에 상처를 입고 차츰 나이를 먹기 시작했다

빛에 주름이 하나 둘 생기고 주름과 주름 사이에 틈이 생기고 빛은 생기를 잃어갔다

따뜻한 빛은 온도를 잃고 밝게 비추던 빛은 환함을 잃고 탱탱한 피부에는 검버섯이 피어올랐다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된 빛은 세상의 피가 다 빠져 나가는 찰나에 다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어둠 속에서 더욱 환하게 비추던 빛은 이제 온전히 서 있을 기력조차 잃고 희미해지는 기억의 빛 한 자락에 의지해 오지도 않는 사람을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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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빛으로 오는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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