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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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평택~논산

 

▲ 테일지코리아에서 협찬한 전기자전거는 오르막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평택에서 하룻밤은 평온하지 않았다. 평소 자전거를 타거나 운동을 꾸준히 한 것도 아니어서 엉덩이와 허벅지가 사정없이 욱신거렸기 때문이다.

잠을 설치다보니 개운해야 할 몸도 물먹은 솜처럼 무겁기만했다
. 그렇다고 시작도 하기 전에 종주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다시 라이딩 옷을 입으며 각오를 다졌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모텔이라 자전거를 어깨에 매고 3층에서 내려오는데 힘이 들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힘차게 밟으니 상쾌한 바람이 머리를 맑게 해줬다
. ‘오늘은 평택에서 전주까지 달리는 게 목표다. 충전한 자전거는 어제대로라면 3시간이 못가서 방전될 것이다.’

가능한 오르막에서만 전기동력을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천안, 성환 도로표지판을 보고 힘차게 달렸다. 날씨는 어제와 다르게 구름한 점 없이 맑았다. 하늘을 보니 푸른 물감을 탄 것처럼 예뻤다.

아침을 먹지 못해 살짝 배가 고팠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 평택시를 빠져나가자 자전거도로는 없어졌고 천안까지 계속 1번 국도를 이용했다.

도로 상태는 좋았다
. 차들도 생각했던 것보다 많지 않아서 라이딩에 힘을 보탰다. 오르막이 아닌 평지에서는 되도록 페달을 많이 밟으려 했다. 언제 오르막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정된 전기동력을 나눠 쓰지 않으면 낭패를 볼 것 같았다
. 하지만 충전된 밧데리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빨리 방전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장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 마치 내 몸에서 엉덩이가 분리되는 느낌이다. 허벅지의 근육이 터질 듯 통증이 심해졌다. 중력의 법칙이 허리 아래쪽으로 완전히 적용되고 있었다.

▲ 천안 이정표

2시간을 넘게 달려서 조치원 표지판이 나타났지만 아직 천안도 오지 못했음을 알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자전거에 몸을 싣고 라이딩을 시작했다.

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어서 도로 위에 정지한 상태로 후드 티를 입었다
. 반팔 라이딩복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바람이었다. 마침내 천안으로 접어들자 연휴를 즐기려는 차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섰다. 아침을 안먹고 달려서 갑자기 허기가 밀려왔다. 마침 도로변에 옛날짜장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중국음식만 파는 게 아니라 한식, 분식 등 한쪽 벽면을 가득채운 메뉴들이 50가지는 족히 되어 보였다
.

▲ 평택 천안 국도변에서 휴식을 취하는 미니벨로.
▲ 국도 변에서 본 아름다운 농촌의 풍경.


청국장을 시키고 기다리는 동안 엉덩이와 허벅지를 주물렀다. 10분쯤 지나자 한상가득 음식들이 차려졌다. 청국장도 푸짐하게 나왔다. 6천 원 식사치곤 훌륭했다. 후식으로 먹는 식혜도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사장님이 어디까지 가냐고 묻는다.

▲ 청국장 백반 상 차림.

여수까지 종단한다 말하니 놀라는 눈치다. 왜 자전거로 국토종단을 하는지 궁금해 하는 것 같아 세월호 참사로 우리나라가 여행하기 안전한지 직접 경험하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그러자 좋은 일을 한다며 커피를 한 잔 타 주셨다.

나도 가방에서 설문지를 한 장 꺼내 드렸다
.
사장님도 한 장 써주세요. 번호만 체크하셔서 여기 적혀있는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되거든요. 사시는 지역, 연령, 성별만 기재해 주세요.”
그러자 사장님이 손으로 오케이를 표시하며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세월호 희생자들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요.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생겨서 어린 목숨들이 그렇게 가다니.”

커피를 마시면서 세월호 관련 얘기를 나누고 밖으로 나왔다
. 전주까지 가려면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서둘러야 했다. 자전거를 타려는데 사장님이 보여줄게 있다면서 잠깐 오라고 한다.

10
년도 넘었다면서 유리 뚜껑 속에 있는 된장을 가리켰다. 옆에는 간장이 있었다. 커다란 항아리가 한 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았다. 잠깐이지만 청국장 말고 된장찌개를 먹을 걸 후회가 되었다. 알고 보니 청국장은 다른 곳에서 파는 것을 가져온 것이었다.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한 후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 그렇게 한 참을 가다 천안에서 유명하다는 원조 천안옛날 호두과자점에 들렸다. 내려가는 길에 전주 어머니께 드리려고 1만 원짜리 선물용을 샀다.

천안에서 이번엔 대전을 향해 방향을 바꿨다
. 밧데리는 한칸을 남겨놓고 있었는데 눈 앞에 경사가 있는 오르막이 나타났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남은 한칸은 오르막 끝에서 사라졌다.

밧데리가 완전방전 되었음을 알았고 동시에 이제부터 순전히 내 힘으로 달려야 하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 터널에 들어갔을 때는 자전거에서 내려 오른쪽 벽에 바짝 붙어서 천천히 걸었다. 터널 안에서는 크고 작은 차들이 질주하며 내는 타이어와 노면의 마찰음이 터널 벽, 천장에 부딪히며 공포감을 조성할 정도로 컸기 때문이다.

꽤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머리가 아플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 터널이나 도로에서 자전거에 대한 배려는 전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동차들은 자전거 한 대 정도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듯 또는 귀찮은 듯 속도를 내며 신나게 질주했다.

자전거의 속도와 차들의 속도 차가 크기 때문에 바로 옆에서 느끼는 속도감은 훨씬 컸다
. 불과 1미터 간격도 안 되는 상태에서 10톤이상 되는 트럭들이 달릴 때는 도로가 들썩거리며 내가 탄 자전거가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핸들을 꽉 움켜쥐고 등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살아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다.

차들이 한가한 도로에서는 그래도 주위 풍경을 볼 수 있다
. 점점 짙어가는 녹음과 밭갈이 하는 농촌의 모습 그리고 강물의 흐름까지 꽤 괜찮은 장면들을 여유 있게 하나 둘 눈에 담는다.

조치원을 지나 공주에 도착 한 시간은
4. 앞으로 전주까지 가려면 90km정도가 남았다. 밧데리 없이 무려 5시간을 달린 셈이다. 몸상태를 체크해보니 허리 아래로는 통증이 대단했다. 더 이상 간다는 것은 무리일 듯 싶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공주에서 논산을 향해 갈 때는 경사가 낮은 오르막이 더욱 지키게 만들었다
. 그리고 쉬다 가다를 반복하다 결국 사고가 났다. 다리가 풀린 탓에 페달에서 한쪽 발이 이탈하며 중심을 잃고 넘어진 것이다. 다행히 차가 없었기에 큰 사고는 피할 수 있었다.

약간의 타박상을 입고 자전거를 끌다시피 가다 버스 정류장을 발견하고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다시 재정비 한 후 라이딩을 시작했다. 오르막도 없고 꽤 긴 내리막을 달릴 때는 몸이 가벼워지면서 마치 날고 있는 듯 착각이 들었다.

꽤 먼 거리를 짧은 시간에 달려 온 것 같았다
.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등이 너무 가벼운 느낌. 그제서야 알았다. 내 등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어야 할 배낭이 없다는 사실을.<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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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 안전여행을 촉구하는 자전거 국토종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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