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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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침몰 후 해경의 구조헬기가 배 위를 돌고 있다.

세월호 침몰로 우울증 걸린 대한민국

결함 투성 여객 운항 완벽한 人災 사망·실종 304명

지난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준 인재이자 대참사였다. 476명의 승객 중 구조된 수는 174명에 불과했다. 특히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난 325명의 안산 단원고 학생들 중 생존이 확인된 수는 78명에 그쳤다. 결함투성이의 여객선을 운항한 것도 부족해 자리를 비운 선장대신 경험이 없는 3등 항해사가 가장 위험한 맹골해역에서 무리한 변침을 지휘해 배가 기울어진 채 표류하다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더욱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배에 물이 차기까지 약 45분의 골든타임이 있었는데도 이를 교신만하며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그 후 급조된 중대본의 재난대응시스템 역시 생방송으로 전국민에게 무용지물임을 각인시켜주었다.


▲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결국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세월호는 바다 위에 2시간 넘게 떠 있었지만 선장과 선원들은 교신 후 바로 배와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했다. 그러나 학생들을 비롯해 승객 302명은 자리를 지키라는 안내방송에 따라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왜 이런 참사가 빚어진 것일까? 세월호 침몰에 대한 모든 것을 정리해 보았다.


“움직이지 마라” 안내방송 대참사 불러
배에 충격이 가해지자 “움직이면 더 위험하다, 움직이지 마라”는 선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곧 구명조끼가 지급됐고 순식간에 배가 기울었다. CNN방송은 선내 안내방송이 대참사를 불렀다고 전했다. 실제로 생존자들 대부분은 안내방송을 무시하고 객실 밖으로 나온 승객들이었다.

갈팡질팡 정부발표
사고 직후만 해도 이렇게 엄청난 인명 피해가 날 것이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다. 세월호는 좌초(坐礁) 후 선체가 왼쪽으로 90도 기울긴 했지만 2시간 반 가까이 떠 있었다. 해경·해군은 구조 선박 수십 척과 헬기 18대를 보내 구조 중이라고 했고, 일부 구조 장면이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오전 11시 넘어 학부모들에게 '단원고생 전원 구조'라는 문자 메시지까지 보냈다. 하지만 오후 들어 구조 인원 집계에 착오가 생겼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안전행정부와 해경이 실종자 숫자를 수정해 발표하는 등 우왕좌왕했다.

인원집계 발표와 수색작업 발표 역시 차질이 있었다. 세월호 선내 진입에 성공했다고 하더니 잠시 후 실패했다고 바꾸어 발표하는 등 이후 발표는 계속해서 번복됐다.

승객 버리고 도망친 선장
이번 사건의 최대 이슈는 ‘배를 버리고 탈출한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이다. 사고 수습에 몰두해야 할 선장이 가장 먼저 배를 빠져 나왔다. 이번 세월호에서 “승무원이 가장 나중”이라며 승객 구조를 한 건 22살의 박지영 승무원과 몇몇 일반승무원이었다. 학생과 승객들이 위험에 처하자 구명조끼를 입혀주고 재빠른 현장판단으로 아이들에게 뛰어내리라고 했던 그녀는 결국 시신으로 발견됐다. 한편 승무원 24명 중 생존자는 20명. 선장 이모씨는 해경에 구조된 첫 생존자다.

부실점검과 과적, 불법 증축, 조종 미숙 침몰원인
조타수 박모(61) 씨는 “선박의 선미 부분 증축으로 무게중심이 높아진데다 항로 변경 과정에서 선박 과잉 회전으로 각도 조절에 실패해 발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박 측면 침수가 발생하고 대형 트럭과 컨테이너 등 화물들까지 한쪽으로 쏠려 배가 뒤집어진 것이지 암초 충격이 아니다. 승용차로 치면 차량 지붕에 짐을 잔뜩 싣고 과속 급회전 핸들 조작을 하면 원심력이 작동하며 차량이 구르는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고 사고의 원인을 밝혔다. ‘인재(人災)’라는 얘기다. 박 씨는 “권고 항로를 운항했으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증축으로) 배의 무게중심이 높은데다 제주를 향해 가던 배가 권고 항로를 벗어나 사고 해역을 지나며 섬과 섬 사이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뱃머리를 급선회 하다 균형을 잃은 게 사고 원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 여파로 이미 배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기관실이 침수되고 발전기도 고장나 힐링(배의 균형 장치) 스위치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실종자 가족 두 번 울린 허위 SNS·스미싱
“민간 잠수부가 '살려달라'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해경이 민간 잠수부 투입을 막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밑도 끝도 없는 각종 루머가 인터넷을 떠돈다.
세월호가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다거나 한미연합 군사훈련으로 세월호 항로가 변경됐다는 의혹도 나왔다. 하지만 국방부 대변인은 “사고 당시 해당 수역 인근에서는 작전이나 훈련이 없었다. 또한, 그곳은 수심이 얕아서 잠수함이 활동할 수 있는 수역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침몰사고를 사칭한 스미싱 문자도 기승이다. 지금까지 적발된 세월호 관련 스미싱 문자만 10건. 악성앱을 설치해 개인정보를 빼낸다. 이렇게 세월호 침몰 후 유족들 가슴을 두 번 울리는 각종 루머들과 스미싱이 국민들의 분노지수를 더 높이고 있다.

침몰 전 골든타임 약 2시간 놓친 증언들
촌각을 다투는 위급상황에서 단 1분이라도 구조가 먼저 이뤄졌다면 사망·실종자만 302명이 발생한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구조의 손길이 미칠 때까지 잃어버린 시간은 '9분'이 전부가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전9시6분부터 약 31분간 진도 VTS와 교신한 것 외에도 이미 1시간 전부터 이상징후를 느꼈다는 승객, 선원, 목격자 등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된 선원 송모(20)씨는 "승객 배식이 한창 이뤄지고 있던 때부터 배가 기울기 시작했다"며 "오전 8시 조금 전이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보일러실에 근무한 선원 전모(61)씨도 "오전 7시 40분께 업무를 마치고 업무 일지를 쓰던 중 갑자기 배가 기울었다"며 "창문이 박살 나고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릴 정도였다"고 전했다. 인근 해역에서 작업하던 어민들의 목격담도 이를 뒷받침한다.

진도군 조도면 주민 이모(48)씨는 "미역 양식 때문에 새벽 일찍 나갔는데 오전 8시 무렵 큰 배가 멈춰 있었다"며 "그렇게 큰 배가 서 있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되돌이켰다.

구조작업에도 참여했던 어민의 말은 더 구체적이다.
이 어민은 "바다로 미역을 따러 나가는 시간이 아침 6시 30분이니 내가 바다에서 그 배를 본 것이 아마 7시에서 7시 30분쯤이었을 것"이라며 "하얀 배가 가만히 서 있어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그냥 마을로 돌아왔는데 9시 좀 넘어서 이장이 구조작업에 동참해달라는 방송을 했다"고 전했다.

이상의 목격담 등을 종합하면 세월호에는 외부에 위험이 알려지기 1시간 전부터 이상징후가 있었던 셈이다. 선장 등 승무원이 이상징후를 조기에 감지했는지, 감지했다면 어떻게 대처했는지 명확한 규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해경 골든타임 때 해군 UDT 잠수 막았다
언딘 투입위해 최정예 해군 대기시켜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에 구조 당국의 초기 대응이 늦었다, 생존자를 구조하기 위한 이른바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이 계속 돼 왔다.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이 국방부에 확인한 결과, 해경이 민간 업체를 우선 투입하기 위해서 해군의 정예 잠수 요원투입을 통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투입된 해군 최정예 요원은 대한민국 최고의 잠수사였다. 1999년에 남해에서 북한의 반잠수정을 인양했는데, 그 때 해저 깊이가 147m이었다. 이것은 국제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심해 잠수 작업이다. 그래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2012년도 12월에는 서해 변산 앞바다에 떨어진 북한의 장거리 로켓 추진체를 인양했는데, 이때에도 수심이 88m이었다. 영하 5도의 기온에서 작업을 해서 국제적으로 아주 실력이 뛰어나다, 라고 하는 인정을 받고 있는 최정예 부대다.

17일 오전 7시 정조 시간. 해군 최정예 대원들인 SSU, UDT 요원 19명이 고무보트 4척에 나누어 타고 잠수를 준비하면서 현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잠수를 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민간업체 언딘의 우선 잠수를 위해서 해경이 현장 접근을 통제해서 잠수를 실시하지 못했다. 군은 상호 간섭을 배제하기 위해서 해경의 통제를 수용했다.”

이에 대해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30일 진도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간 제기된 (세월호 수색 과정에 대한) 모든 의혹은 추후 수사기관과 감사원 등에서 명명백백하게 밝혀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숱하게 제기된 초기 구조 실패와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언딘) 특혜설 등에 대한 일종의 해명이었다.

김 청장은 또 ‘언딘’이 세월호 구난 작업을 우선 할 수 있도록 해양경찰이 해군 잠수요원들의 현장 투입을 막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작업일지 과정이나 이런 부분에서 좀 착오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더이상 설명은 없었다. 또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방위원회)에게 ‘언딘 우선 잠수를 위해 해경이 현장 접근을 통제하여 잠수 미실시’라고 답변한 해군은 논란이 일자, “해경이 잠수를 막았다는 뜻이 아니고, 재난 구호 책임기관인 해경의 종합적 판단에 의해 실시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 발 물러났다.

그러나 애초 국방부가 진 의원에게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언딘 우선 잠수 때문에 해군 요원들이 잠수하지 못했다고 밝힌 만큼, 향후 감사와 수사를 통해 해군과 해경의 초기 대응 과정에 대한 더욱 명확한 규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해군보다 언딘을 더 신뢰한 해경 
세월호 침몰 직후 구조·수색 작업을 하려면 먼저 하잠색(잠수부용 가이드라인)을 설치해야 한다. 국방부(해군)가 제출한 답변서와 이날 국방위 국회 답변을 종합해 사고 발생 직후 이틀간의 구조·수색 상황을 돌이켜보면, 현장에 먼저 도착한 해경은 오전 11시50분부터 오후 3시까지 하잠색을 설치하지 못해 구조를 위한 잠수를 아예 하지 못했다. 하잠색은 뒤이어 도착한 해군이 오후 6시에 들어가 설치했다. 그러나 하잠색을 간신히 설치했으나, 물살이 거세 잠수를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해군은 오후 6시35분 이후 잠수 작업에 투입되지 못했다. 사고 발생 둘째 날인 새벽 1시35분께 해난구조대(SSU) 요원 10명을 현장에 투입시키려 했지만, 조류가 강해 들어가지 못했다.

오전 7시의 정조시간(물살이 약한 시간)은 세월호 탐색 작업에 중요한 시간이었다. 해군은 이때 19명의 요원을 투입하려 했지만, 해경에서 “민간업체(언딘)가 우선 잠수해야 한다”고 통제해 작업을 못했고, 언딘은 해군이 설치한 하잠색을 이용해 수색에 나섰다는 것이 해군의 설명이다. 이를 미뤄보면, 해경은 해군 해난구조대보다 민간업체인 언딘의 구조·수색 능력을 더 신뢰한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해군은 이날 밤 10시28분 해난구조대 2개조를 투입했으나, 조류가 강해 선체 탐색에는 실패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해경-해군 불협화음
국방위에서는 해군과 해경의 초기 협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대목들이 지적됐다. 김광진 새정치연합 의원은 “사고 당일 해군의 링스헬기가 오전 10시4분 현장에 도착했는데 교신 내용을 보면 해경은 ‘해경 헬기가 사고 선박 상공에서 인명구조를 하고 있으므로 현장 서쪽 2마일에서 머무르라’고 요구했다.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또 “사고 당일 오전 10시42분에도 해경은 현장에 도착한 해군함정에 ‘현장 주위 200야드 밖에서 해상탐색 및 지원태세 유지해달라’고 하는데 급박한 시간에 대기하라고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내용을 지적하는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의 질의에 김 장관은 “역할 분담으로 협조됐을 것이다. 초동조치 단계 잘못은 따지겠다”고 말했다.

도덕적 해이·엉터리 국가시스템 그대로 노출
세월호 침몰 참사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마치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하고 있다. 희생자ㆍ실종자 가족들과 고통, 슬픔을 함께하는 한편으로 답답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분노와 불신, 무력감에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중소기업 대표인 최모(60)씨는 20일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으로 큰 성장을 이룬 내 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는데 이번 참사로 도덕적 해이, 국가 시스템의 초라한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봤다"며 "화려한 겉모습 뒤에 이런 후진성이 남아 있었다는 것이 너무 충격적이고 부끄럽다"고 탄식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박모(57)씨는 "생때 같은 아이들이 탄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정부는 제대로 구조도 못하고 책임 총괄 부처가 어디인지 발표 하나 정확하게 못하며 혼선만 거듭했다"며 "천안함 사고 이후 세금 1,590억원이나 들여 만들었다는 구조함(통영함)은 진수식 후 1년 7개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시험 중이라 투입을 못한다니 이것이 국민 생명을 보호한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수준이냐"고 되물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로 겪고 있는 국민들의 심리적 고통을 결코 가볍게 봐서는 안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심리기획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이명수씨는 "사람의 정신은 쉽게 붕괴되지 않지만 이 정도면 그야말로 집단 '멘붕'상황"이라며 "100년 정도 지나야 사회가 회복될 정도"라고 우려했다.

되풀이되는 인재와 유명무실한 정부
세월호 대참사는 1993년 10월 전북 부안 격포 앞바다에서 사망자 292명을 낸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후 21년 만의 참변(慘變)이다.

세월호는 인천~제주를 오가는 6825t급으로 정원이 920명이나 되고 차량 180대와 컨테이너 150개를 선적(船積)할 수 있는 대형 여객선이다. 게임룸·레스토랑·샤워실도 갖추고 있다. 운항사인 청해진해운 측은 '국내 최대 크루즈 선박'이라고 홍보해왔다.

이번 세월호 사고는 1993년 10월의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과 비교해볼 때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사고였다. 서해훼리호는 110t으로 세월호의 60분의 1밖에 안 되는 크기였고, 정원이 207명인데 362명이나 타고 있었다. 화물도 과적(過積) 상태였다. 반면 세월호엔 정원의 절반도 타고 있지 않았다. 서해훼리호 침몰 땐 초속 10.5m의 강한 바람에 파고도 2m나 되는 등 기상 상태도 나빴다. 세월호는 파고가 0.5m로 잔잔한데도 침몰하고 말았다. 서해훼리호는 배가 뒤집힌 후 10분 만에 완전히 가라앉았지만 세월호는 두 시간 반이나 떠 있었다. 그런데도 두 사고의 인명 피해는 큰 차이가 없다. 세월호의 운항부터 구조(救助) 과정에 이르기까지 뭔가 말도 안 되는 실수와 과실들이 겹쳤음을 보여준다.
1990년대 초·중반엔 서해훼리호 사고 말고도 성수대교 붕괴(1994년·32명 사망),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1995년·101명 사망),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501명 사망) 등 후진국형(型) 인재가 잇따랐다.

고양이에 생선 맡긴 해수부
해운업계 안팎에서는 이른바 '해수부 마피아'들이 세월호 침몰 사고에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오랜 기간 해양수산부 출신 퇴직 관료들이 한국선급, 한국해운조합 등 해양 안전 및 운항을 담당하는 민간기관에 진출하면서 형성된 전현직 해양 공무원들의 커넥션 때문에 엄격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비판이다.
정부에서 선박 검사를 위임받은 한국선급은 해수부 퇴직 관료들이 많이 가는 대표적인 기관. 1960년 출범한 민간 사단법인이지만 11명의 회장 중 현직 전영기 회장 등 3명을 제외한 8명이 해수부나 그 전신인 해무청, 항만청 출신이다.

올해 2월 한국선급은 세월호의 구명뗏목 46개 중 44개가 안전하다고 판정했다. 하지만 사고 당시 펴진 구명뗏목은 1개뿐이었다. 한국선급은 해수부가 2008년에 청해진해운의 시설물 점검 업체를 '우수사업장'으로 지정하자 서류점검만 실시해 왔다.
해수부는 한국선급에 선박검사, 해운조합에 여객선 운항관리 업무를 위임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해운사가 낸 출자금으로 만들어진 조합이다. 한 민간 해양재난 전문가는 "해수부 평직원들도 퇴직 후 이들 단체에 재취업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 '해수부 마피아'가 해양 분야의 민간 위임업무를 독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해수부는 "선박 검사와 안전점검 등을 전문기관에 맡기는 것은 국제기준에 부합한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안전 분야에서만큼은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의 임용을 배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참사 키운 운항규정, 점검표, 재난대응시스템
이번 참사는 모양뿐인 여객선 운항 관련 규정과 형식적인 점검 그리고 유명무실한 재난대응시스템이 만든 합작품임이 드러났다. 검·경 합수부는 세월호 선장 이모(69)씨가 사고 당시에 조타실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 사고 당시 배의 조타를 잡은 사람이 3등 항해사로 조사됐다.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6천825t급)가 사고 당시 적재 중량을 초과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화물차량 기사들은 여객선 과적이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적재가능 최대 중량이 4.5t인 트럭 짐칸에 20t의 화물을 꽉꽉 눌러 채운 뒤 여객선에 싣는데도 과적 단속은 없었다는 것이다. 참사에서 구조된 화물기사 이모씨는 “인천에서 제주도로 갈 때 세월호를 많이 이용하는 이유는 과적 단속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4.5t 화물차량 짐칸에 보통 20t의 화물을 싣는다"며 "화주들이 운반비를 아끼기 위해 한 번에 많이 실어 달라고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여객선에 승용차나 화물차량을 실을 때 선박 바닥에 고정하는 '라이싱'이 허술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 다른 화물차량 운전자 김모(56)씨는 "운항노조원들이 20만원을 받고 라이싱을 대신해 준다"며 "차량 바퀴에 고잇목을 대고 와이어로 고정하며 파도가 높을 때는 차량 하부와 짐을 로프로 묶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 당시 라이싱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물차량이나 트레일러가 쓰러지면서 여객선도 빨리 침수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국무총리 대책본부'에 중대본 역할 '실종'
중대본이 준비 없이 대형 사고를 만난 상황에서 수습 역량도 부족했지만, 정부는 그나마 법으로 정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를 사실상 '무의미한' 존재로 만들었다. 지난 17일 정부가 세월호 사고 수습과 사후대책을 총괄할 범정부적 차원의 대책본부를 목포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 구성하고 정홍원 국무총리가 본부장을 맡으면서 중대본이 유명무실해졌다.
'국무총리 대책본부'는 더 강력한 재난대응을 지휘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체계적인 대응을 위해 법으로 만들어 놓은 범정부 재난대응체계를 일순간에 '부정'한 조치라는 지적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을 찾아 대응방침을 제시한 것이 되레 기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기회를 없앤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관가에서는 국무총리가 범정부 대책본부를 현장에 구성함에 따라 강병규 안행부 장관이 이끄는 범정부기구는 사실상 역할이 없어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방재 관련 단체의 한 관계자는 "중대본의 역할이 부처간 역할 조율인데, 총리가 나선 이상 안행부 고위층 운신의 폭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국무총리가 지휘하는 범정부 재난대응체계는 법적 근거도 약하다. 이런 지휘체계가 더 옳다고 본다면 법을 개정해 재난대응체계를 새로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신이 본 세월호 참사 "이런 지옥은 없다"
외신들은 이번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실종자 부모는 CNN에 "우리 아이가 아직 저 차갑고 어두운 바다에 있다"면서 "우리 애를 살려 달라"고 애원했고 또 다른 부모는 "살아만 있다면 내가 바다에라도 뛰어들겠다"고 절규했다.
그러나 이같은 슬픔과 비탄은 곧바로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해경의 구조 상황 브리핑이 이뤄지고 있는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한 부모는 "어느 누구도 제대로 답변해주지 않고 책임만 전가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부모는 "도대체 변한게 무엇이냐"며 "이런 식으로 한다면 1년, 2년, 3년이 걸릴 것"이라고 울부짖었다.

CNN은 한 부모의 말을 인용해 "그 어디에도 이런 지옥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 CBS는 실종자 가족들이 시신조차 찾지 못할 수 있다는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혀있다면서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구조와 수색이 지지부진하는 등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자 분노가 폭발한 실종자 가족 100여명이 "청와대로 가자"는 상황까지 빚어졌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를 경찰이 막아서자 한 부모는 "(대응을 제대로 못한) 정부가 우리 애를 죽였다"고 외쳤다고 CBS는 전했다. 영국 BBC도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를 향하자 경찰이 막아서 실랑이가 벌어졌다고 보도하면서 정부 관계자들은 이번 사고의 여파가 정부에 악영향을 줄지를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맨탈붕괴 대한민국..범국민적 '정신적 외상 관리 시스템' 절실
세월호 참사가 국민들에게 준 '대리 외상'(바이케어리어스 트라우마)은 어느 정도일까. 심리학자와 정신보건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수몰되는 끔찍한 장면을 속수무책 지켜본 충격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상처를 치유하는 첫 작업은 정부가 이제라도 사태 수습 능력을 보여주고 재난대응 시스템을 정비해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국가 차원의 정신적 외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세월호에 탑승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는 대개 40, 50대다. 전문가들은 이들과 비슷한 연령층이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상황, 오열하는 동년배를 지켜보다 보면 인간의 공감 본능이 자동적으로 발동한다. '내 아이가 타고 있다면…'이란 생각을 이 연령층은 누구나 한번쯤 하게 됐다는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또래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연령층도 상황이 좋지 않다. 전문가들은 또 상당수 국민이 세월호 생존자의 정신적 외상과 비슷한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형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통상 '서바이벌 증후군'을 겪는다. 살아남은 것에 대한 미안함, 지켜주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이 정신적 외상으로 이어진다. 극도의 무력감이나 자책감, 분노나 공격성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서바이벌 증후군의 극단적 사례는 지난 18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교감이다. 자신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이 비극적인 선택으로 이어졌다.

구출된 아이들, 사망·실종자 가족 등 피해 당사자의 대리 외상이 주변으로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을 일으킬 우려도 있다. 당사자→가족→친지·이웃 등으로 피해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리 외상을 입을 경우 '공포·무기력·분노→불안→불신'으로 이어지는 심리 변화를 겪게 된다고 설명한다. 학생들의 수학여행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이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현상은 국민적 불안감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민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의 오명
올해 우리 1인당 GDP 전망은 2만6000달러이다. 거의 선진국 문턱까지 도달해 있고, 분야에 따라서는 우리가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는 것이 적지 않다. 조선(造船) 분야만 해도 건조 물량과 기술에서 세계 1위 수준에 올라섰다. 그러나 '세계 1위'라는 번드르르한 포장을 걷어내고 나면 그 안의 알맹이가 어떤 수준인지 세월호 참사가 분명히 보여줬다.

정부는 실종자 집계 하나 제대로 못 해 허둥댔다. 선박·휴대폰·자동차 같은 물건을 제조하는 기술은 일류가 됐지만 그 물건들을 다루는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다. 국민들은 무엇보다 이번 참사를 통해 대한민국은 인간의 생명(生命)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나라가 아닌가 하는 기분을 뼛속 깊숙이 느끼게 됐을 것이다. 이대로는 선진국이 되기도 힘들다. 설령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다고 해도 국민 의식과 사회 제도·관행이 지금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이번보다 더 끔찍한 비극들이 앞으로도 계속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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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세월호 대참사 의문투성이 비밀을 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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