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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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다들 자기의 포부와 꿈이 있다..

 

쭈니의 꿈 중 하나....

 

꼭~~~!!!! 보고픈 것 중 하나....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인접해있는 사해이다...

 

역사의 이름...신기한 바다....죽은 바다...아무것도 살지 않는 바다....

 

온통 소금염분으로....

 

신기가 하늘을 찌르는 곳...

 

사해에 서있는 쭈니 모습에서....꿈을 이룬...쭈니가 대견하다...^^;;;

 

사해에 있었도 보고...사해의 물속에서 하늘도 보고.....사해의 물속도 보고

 

정말 책속에서 처럼 선생님 말씀처럼...

 

사해 속과 밖은 소금물과 소금 덩어리 밖에는 없었다...

 

고요함이 무서운..그리고 신기함이 공존했던....사해.....쭈니는 꿈을 이루었다....아~~흣!!! ^^




▲ 사해를 배경으로 한장..^^




호면이 해면보다 400m 가량 낮아 지구에서 가장 낮은 수역(水域)을 형성한다. 북반부는 요르단령, 남반부는 요르단령과 이스라엘령으로 나누어지나 1967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이후 이스라엘군이 서쪽 기슭 전체를 계속 점령하고 있다.

 

사해는 서쪽의 유대 구릉지대와 동쪽의 트란스요르단 고원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북쪽으로부터 요르단 강이 흘러든다. 길이 80㎞, 너비 18㎞, 면적 1,020㎢, 최대수심은 396m에 이른다. 동안(東岸)의 알리산('혀'라는 뜻) 반도를 경계로 크기가 다른 2개 수역으로 나뉜다. 북쪽의 수역이 보다 커서 호수 전체 표면적의 약 3/4을 차지하고, 수심도 396m에 달하는 반면 남쪽 수역은 수심이 평균 3m 미만이다. 성서시대와 그후 8세기까지는 북쪽 수역 주변지역에만 사람이 살았으며, 호면은 현재보다 35m 정도 낮았다. 호면은 1896년에 해수면하(海水面下) 약 389m로 높아져 최고 수위에 달했으나 1935년 이후 다시 낮아졌다.

사해라는 이름은 적어도 헬레니즘 시대(BC 323~30)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사해는 히브리인의 조상 아브라함 시대 및 고대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이후의 성서사와 관련되어 있다. 〈구약성서〉에는 소돔과 고모라가 주민들의 부도덕으로 인해 하늘에서 내린 불로 멸망했다고 전하는데, 이 두 도시 터는 현재 사해의 남쪽 수역에 가라앉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호수로 유입되는 강들 주위의 황무지들은 이스라엘 왕 다윗과 훗날 유대 왕 헤로데 1세의 피난처가 되었다. 헤로데 대왕은 BC 40년 파르티아인이 예루살렘을 포위 공격할 때 마사다의 한 요새에 피신했다. 마사다는 AD 73년 로마에 반항하던 유대의 열심당원들이 3년간에 걸친 포위 공격을 받은 끝에 성채를 파괴하고 집단자살을 한 곳이기도 하다. 사해사본(死海寫本)으로 알려진 성서사본을 남긴 유대교 종파도 사해 북서부의 동굴들을 은신처로 삼았다.

사해는 길이 560㎞의 요르단-사해 지구(地溝) 최하부를 차지한다. 이 지구는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북쪽 연장 부분으로, 사해는 이 가운데 지반이 함몰하면서 생긴 거의 평행한 두 단층 사이의 요지(凹地)에 자리잡고 있다. 사해 쪽에서는 모압 고원 가장자리를 따라 있는 동쪽 단층이 유대 지방의 보다 완만한 융기 습곡을 알려주는 서쪽 단층보다 더 잘 보인다.

지구가 생기기 전인 백악기와 쥐라기(6,500만~1억 9,000만 년 전)에는 지중해의 물이 시리아와 팔레스타인까지 뒤덮고 있었으나, 마이오세(700만~2,600만 년 전)에 해저의 융기로 트란스요르단 고지대의 습곡구조와 팔레스타인 중앙부의 산맥이 형성되면서 지각 파열이 일어나 사해 지역이 침강했다. 그당시 사해의 크기는 오늘날과 비슷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해는 그후 플라이오세(약 1만~250만 년 전)에 현재의 호면보다 약 215m 높은 고도까지 융기해 북쪽의 훌레 계곡지대로부터 현재의 남쪽 경계 너머 64㎞ 지점까지 320㎞에 걸치는 광대한 내륙해를 이루었다. 사해지역의 융기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물이 아카바 만으로 넘쳐 흐르지 않았던 것은, 네게브 중부 고지의 동쪽 연장부를 따라 흐르는 계절천인 와디 알아라바의 가장 높은 부분이 약 30m 정도 융기하여 사해를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대략 250만 년 전쯤 사해로 유입된 대량의 하천수가 혈암(頁岩)·점토·사암·암염·석고 등 두꺼운 퇴적층들을 쌓았고 나중에 점토·이회토(泥灰土)·연질백악(軟質白堊)·석고 등의 퇴적층이 모래와 자갈층 위로 내려 쌓였다. 사해는 지난 1만 년 동안 물이 강수에 의해 보충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증발함으로써 점차 현재의 크기로 줄어들었으며, 그 과정에서 사해 골짜기를 덮고 있는 퇴적층이 1.6~6.4㎞ 두께까지 드러나게 되었다.

알리산 반도와 세돔 산(옛 이름은 소돔 산)은 지각변동으로 이루어진 지형들이다. 세돔 산의 가파른 절벽들이 사해의 남서쪽 연안에서부터 치솟아 있다. 알리산 반도는 점토·이회토·연질백악·석고 등의 퇴적층에 모래와 자갈층이 사이사이에 끼어서 이루어졌다. 알리산 반도와 사해 골짜기 서쪽의 비슷한 물질로 형성된 지층 모두 동쪽으로 경사져 있다. 사해의 남쪽 단애는 세돔 산과 알리산 반도의 융기작용으로 인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훗날 바닷물이 이 단애의 서반부를 뚫고 현재의 수심이 얕은 사해 남단으로 넘쳐흘렀다.

사해는 사막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강우량이 적고 불규칙하다. 알리산에는 연간 65㎜ 정도, 세돔(고대 도시 소돔 근처)에는 50㎜ 정도의 비가 내린다. 한편 고도가 낮고 움푹 패어 있어 주변지역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때문에 겨울에는 기후가 온화하고 쾌적하다. 1월평균기온은 세돔이 있는 남단이 17℃, 북단이 14℃ 정도이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 여름은 매우 무더워 세돔의 8월평균기온이 34℃에 달하며, 최고 51℃까지 올라갈 때도 있다. 연평균 140㎝ 정도의 호수의 물이 증발하며 호면 위에 짙은 안개가 자주 생긴다. 유입 하천들 위의 대기 습도는 5월의 45%에서 10월의 62% 정도로 분포한다.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호풍(湖風)과 육풍은 낮에는 호수 바깥쪽을 향해 불어대지만 야간에는 반대로 호수의 중심쪽을 향해 분다.

요르단 강으로부터 유입되는 수량은 겨울과 봄에 최고를 기록하며, 매년 평균 5억 4,000만㎥에 달한다. 동쪽의 요르단으로부터는 알우자이미·자르카마인·알마우지브·알하사 등 크지는 않지만 연중 물이 흐르는 4개의 하천이 깊은 협곡들을 통해 흘러내린다. 그밖에도 수많은 와디들이 인접 고지대로부터 단기간 단속적으로 유입되며 와디 알아라바의 함몰지로부터도 물이 들어온다. 유황 온천들도 흘러든다. 여름철에는 증발량이 많고 겨울과 봄철에는 하천수의 유입량이 많기 때문에 호수의 수위는 30~61㎝ 사이에서 계절적 변화를 나타낸다.

사해의 물은 매우 많은 염분을 함유하고 있으며 염분 농도는 바닥으로 내려갈수록 높아진다. 사실상 사해에는 성질이 다른 두 수괴(水塊)가 있다. 40m 깊이까지는 표층수로 분류되는 수괴가 존재하는데 이 수역에서는 수온이 19~37℃로 변화하고 염도는 300‰이 채 안 되며, 수중에는 황산염과 중탄산염이 특히 풍부하다. 수심 40~100m의 천이지대를 지나 그 아래에 존재하는 저층수는 대략 섭씨 22℃의 일정한 수온과 약 332‰의 높은 염분농도를 유지한다. 황화수소와 고농도 마그네슘·칼륨·염소·브롬 등이 함유되어 있으며 보다 깊은 곳에서는 염화나트륨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바닥으로 침전된다. 저층수는 염분의 농도가 너무 높아 영구히 바닥에만 머물러 화석화되고 있다. 표층수는 성서시대로부터 2,3세기가 지나면서부터 이루어졌다. 사해의 짠물은 밀도가 높아 사람의 몸이 위로 쉽게 떠오른다. 요르단 강에서 흘러든 담수는 호면에 머무르는데 봄철에는 요르단 강물이 사해로 흘러드는 지점에서부터 48㎞ 남쪽까지 강물의 진흙 빛깔이 호수 수면에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농도의 염분 때문에 세균을 제외하고는 어떤 생물도 살지 못한다. 홍수가 일어났을 때 요르단 강이나 작은 하천을 통해 유입된 물고기들도 이곳에서는 금방 죽고 만다. 유입 하천 주변에 있는 식물들 외에 사해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이라고는 수명이 짧은 것들뿐이며, 주로 염생식물에 국한되어 있다.

사해는 거대한 소금 매장지로도 유명하다. 소금 광상들이 남서쪽 기슭의 세돔 산 구조지형에 자리잡고 있다. 아득한 옛날부터 소규모로 채취되던 소금을 개발하기 위해 1929년 요르단 강 어귀에서 가까운 칼리야에 칼륨 공장이 하나 세워졌고, 나중에 세돔에 부속 시설들이 들어섰다. 칼리야의 공장은 1948~49년 아랍-이스라엘 전쟁중 파괴되었으나 1955년 사해조업회사(Dead Sea Works Ltd.)가 세돔에 공장을 세운 후 칼륨·마그네슘·염화칼슘 등이 생산되고 있다. 또다른 공장에서는 브롬과 기타 화학제품들을 생산한다. 사해는 분쟁지역인 요르단-이스라엘 국경지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항행에는 크게 이용되지 못했다. 연안지대는 방치되어 있어 영구적인 시설물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세돔의 공장, 칼리야에 있는 2~3개의 호텔과 온천장, 그리고 서쪽으로 엔게디 지방에 있는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인 키부츠 정도가 들어서 있을 뿐이다. 이따금 호안(湖岸)에서 소규모의 경작지가 발견되기도 한다.-다음 백과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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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추억요르단]사해에서 쭈니 꿈을 하나 더~이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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