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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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 자리잡은 쇳대박물관 전경

대학로에 위치한 ‘쇳대박물관’은 외관부터 심상치 않다. 커다란 철판으로 만든 상자를 보는 느낌이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바람과 햇볕에 의해 쇠의 색이 변하는 쇠의 물성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이 건물은 바로 건축가 송효상의 작품이다. 2003년 8월 준공된 이 건물은 최홍규 관장을 통해 ‘쇳대박물관’으로 거듭난다. 대학로의 명물이 된 ‘쇳대박물관’은 이제 국내에서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사설박물관이다.
 
지난해 일본의 유명한 박물관인 民藝館에서 초대를 했다. 오는 9일부터 11월 20일까지 민예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을 위해 최 관장은 약 1년을 준비했다. 막바지 전시회 준비로 분주한 최홍규 관장을 3층에 있는 관장실에서 만나 일본전시회와 쇳대박물관 그리고 최 관장 개인적인 꿈 등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박물관에는  두석장 김극천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 온 전시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9월 9일부터 3개월간 일본民藝館서 특별전

“300점만을 엄선해서 특별전을 하려고 합니다. 이번 전시는 일본의 75년 된 박물관에 해외 공예품으로서는 우리가 처음으로 초대받은 것입니다. 우리 공예품을 가지고 세계에 가서 알린다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게 됐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개인적으로 우리의 전시풍토를 바꿔보려고 합니다. 일본은 파리에서 전시를 할 때 매화를 공수해 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디테일보다는 크고 많고 양적인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 편입니다.”

최 홍규 관장은 이번 민예관 전시를 통해 우리의 전시풍토를 바꿔보고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수십 년 동안 젊은 다 바쳐서 박물관하는 관장님도 많은데 일본, 미국 등에 초대 받은 것은 대단한 영광이고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겁다”면서 “성공적인 전시회를 통해 한국에도 우수한 사립박물관이 많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이쪽을 돕는 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미 최홍규 관장은 일본에 이어 내년에는 뉴욕 3개 대학에서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국립박물관도 얻기 힘든 해외초대전을 사설 박물관에서 하게 된 것이다. 박물관을 열고 4년 만에 해외의 박물관에서 초대전을 하게 된 최 관장은 기쁨과 동시에 고민도 털어 놓았다.
최홍규 관장이 전시작품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과연 일본의 유서깊은 박물관에서 쇳대를 가지고 어떻게 우리 것의 우수성을 알려야하는지 그것이 굉장히 고민스럽습니다. 개인적인 바람은 일본전시가 성공적으로 갔으면 좋겠고 언론에서도 이번 전시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취미로 30년간 수집한 4천점은 책임감으로 발전
일본에서 열리는 특별전에 쏟는 그의 기대와 고민을 들으면서 ‘쇳대박물관’의 규모와 수집품들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왜 하필 수많은  쇳대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쇳대는 방언입니다. 경기, 전라, 경상, 충청, 강원 등 많은 지역에서 열쇠를 쇳대라고 불렀지요. 쇳대박물관에는 열쇠도 있지만 주종은 자물쇠입니다.

최 관장은 “서양은 열쇠의 문화지만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은 자물쇠의 문화”라고 설명한다. 4층에 자리 잡은 상설전시관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전통 자물쇠 350여 점을 전시해 놓았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자물쇠를 수집하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중반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면서 학원비라도 벌어보자는 심정으로 서울 중구 을지로의 철물점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스승인 권오상(작고) 사장을 만났어요. 개인적으로 그분을 많이 닮고 싶었죠. 아마 그 영향이 컸을 겁니다. 제가 1989년 논현동에 ‘최가철물점’을 연 것도 권 사장의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봤기 때문입니다.” 

최 관장은 철물을 만들어 팔고 전시하고 수집하며 공부에 대한 콤플렉스를 풀었다. 친구들이 대학에서 공부할 때 그는 철물을 찾아 황학동이나 인사동을 돌아다녔다. ‘최가철물점’을 통해 책임감과 의무감을 동시에 가졌고 그는 사업가로서 성공했다.  사업이 성공하면서 그의 수집도 탄력을 받았다. 철물점을 하면서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한 자물쇠가 몇 년이 지나자 수백점이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자물쇠 수집은 30년 동안 4천점에 이르게 되었고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의 자물쇠를 찾게 되었다.
   


“자물쇠를 주로 수집한 이유는 크기가 작고 기능적인 데다 디자인이 다양해 공부가 됐기 때문입니다. 사명감을 갖고 박물관을 만들진 않았지만 시작하고 보니 우리 자물쇠의 아름다움과 과학적 우수성을 널리 알릴 책임을 느낍니다” 

최 관장은 “우리의 옛 자물쇠 및 세계 각국의 독특한 자물쇠를 주제의 박물관으로 사라져가는 우리의 자물쇠들을 수집, 보존 연구하며 대중에게 전시 활동을 통해 우리 자물쇠의 아름다움과 과학적 우수성을 알리는데 그 목적이 있다”면서 “쇳대박물관은 자물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될 것이며 또한 관람객 스스로가 자물쇠에 대한 문화적 의미와 미학적 의미를 이해하고 흡수하도록 그 기회를 제공하는 수용자 중심 문화형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문화 전달하는 소통과 새로운 해석의 공간
그가 자물쇠를 모으면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무형의 가치이상이었다.
“이걸 모으다보니 쇳대에 얽힌 정신적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물쇠를 보면 그 집안의 가풍과 만든 이의 심성이 다 나타나잖아요. 자물쇠가 가지고 있는 물질적인 것 외에 정신적인 것이 많이 들어있습니다. 작업하는 사람입장으로서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인생의 희로애락 등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인생공부를 할 수 있고 또 다른 것을 반복해서 얻게 됩니다.”

그는 계속해서 자물쇠의 문화적 가치에 대해서 설명했다.
“자물쇠는 조선시대에 복을 빌고 소원을 기리고자 누구나, 지위의 높고 낮음과 신분의 귀하고 천함에 상관없이 늘 곁에 두고 사용한 일종의 문화적 상징이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전통자물쇠에는 일상생활의 작은 부분까지도 아름다움과 여유로 승화시키고자 한 선조들의 얼이 깃들어 있어요. 조형적 측면에서도 우리나라 미술의 주요 덕목을 두루 갖추었죠. 따라서 우리의 전통자물쇠는 실용공예를 넘어선 참으로 탁월한 예술작품이자 더없이 소중한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입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4층에 있는 상설전시관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약 4백여 점의 국내외 자물쇠와 열쇠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유리상자에 보관된 물건들은 대부분 깨끗하고 상태가 좋았다. 

정부의 관심이 무형문화재를 살리는 길

 

▲ 조선시대 안주인이 사용하던 열쇠꾸러미.

최 관장의 자물쇠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곳은 이 곳 외에도 두석장이 전시관이 있다. 김극천 장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쇳대박물관에서 그의 개인전을 열어 주면서였다. 3대째 쇠판을 자르고 갈아 장석을 만들어온 두석장 김극천(55·중요무형문화재 64호 두석장) 장인이 최 관장의 도움으로 생애 처음 서울에서 개인전을 연 것이다.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어 전통 장석의 진미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전시회가 끝난 후 김극천 장인의 작업장 일부를 그대로 여기에 옮겨왔죠. 현재 그의 막내아들이 기술을 전수받고 있습니다.”

장석이란 목가구 등의 이음매에 박아 가구를 튼튼히 하는 동시에 멋을 더할 목적으로 얇은 쇠판을 오려 만든 장식물을 말하며 이 일을 하는 장인을 '두석장'이라 부른다. 
현재 장석은 사용처가 거의 없어 두석장을 제도적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기능이 사라질 위기에 있는 무형문화유산의 한 분야이다. 현재 김 장인의 막내아들이 기술을 전수받으며 간신히 4대를 잇고 있다. 최 관장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으면 무형문화재는 살아남기 힘들다”면서 벽에 나란히 진열된 장석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보세요. 왼쪽은 김극천 장인이 만든 것이고 오른쪽은 아들이 만든 것입니다. 차이가 확연하죠.”
그의 말대로 처음 장석을 보는 문외한에게도 정교함에서 많은 차이가 났다.
최 관장은 앞으로 당장 수익은 나지 않겠지만 박물관이 갖고 있는 교육적 측면에 충실하려고 한다. 현재의 것을 더 발전시켜 ‘대장간학교’도 열 계획이다. 해외전시회와 더불어서 국내 지방전시회도 순차적으로 개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번 일본 민예관에서 3개월 가까이 열리는 ‘한국의 쇳대’전이 갖는 의미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유럽 등 세계에 한국문화를 알리고 국내에서도 사라져가는 우리전통문화를 회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취재를 마치고 일어나는데 최관장이 한마디 당부했다.
“많은 언론들이 우리문화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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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대박물관 - 국내외 자물쇠의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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