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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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간식을 먹고 나오자 금방 해질녁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한국 여행사를 통해서 썬셋 팔라우를 예약하고 왔다. 삼각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바다위에서 30분 동안 썬셋을 감상하는 이 프로그램은 보라카이에서 바로 신청하면 1인당 600페소가 든다. 하지만 미리 예약하고 왔다면 1인당 겨우 200페소에 즐길 수 있다.

우리는 5시 30분에 보라카이 내에 있는 한국인여행사에 갔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고 바다에서 우리가 소망하던 푸른 삼각돛단배를 탔다. 이 돛단배는 따로 엔진 없이 자연풍으로만 움직이는 배다. 6시가 다되자 보라카이의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우리는 보라카이의 노을에 경탄했다. 30분은 금방 지나갔다. 우리가 좀 일찍 바다에 나왔는지 아직 보라카이의 하늘은 울긋불긋해지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저녁식사를 위해 우리일행은 리조트로 씻으러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조금만 더 해변에 남아있기로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라키이 썬셋의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10여 분 뒤, 하늘 전체를 물든 붉은 빛을 볼 수 있었다. 썰물로 빠져나간 모래사장에 고인 물에 빨강, 노랑, 주황, 보라, 남색의 오묘한 노을이 비춰져 거대한 파레트를 연상케 했다.

내 카메라가 이 아름다움을 온전히 살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저녁식사에는 늦어졌지만, 나는 내 일행이 놓친 보라카이의 보석을 내 기억 속에 담을 수 있었다.

저녁 식사는 해변에서 즐기는 뷔페였다. 저녁 6시쯤이 되면 해변 이곳저곳에서는 해변 간이식 뷔페를 준비하는 식당들로 북적북적된다. 가격은 250~400페소까지이다. 메뉴는 주로 씨푸드. 우리는 몇 바퀴를 돌고나서 한 명당 295페소인 뷔페에 들어갔다. 닭꼬치와 쌀국수, 게살스프, 조개 구이 등이 있었는데, 조개와 석굴 구이는 맛있었지만 다른 것들은 퍽퍽하고 차게 식어 있어 손이 가지 않았다.

이 뷔페에는 새끼돼지 바비큐도 있었다. 예전에는 새끼돼지를 먹는 필리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실제로 먹어보니 살이 엄청 부드럽고 야들야들해서 계속 갖다 먹게 되었다. 2~3접시를 먹자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야채류는 거의 없고 메뉴 대다수가 고기류이다 보니 느끼해서 많이 먹을 수 없었다. 그래도 충분한 포만감을 주었다. 차라리 생선류나 조개류 같은 씨푸드가 더 많았다면…….

저녁 식사 이후 해변이 잘 보이는 야외 칵테일바에서 우리는 저렴한 칵테일 한 잔을 마시고 클럽으로 향했다. 피곤할 대로 피곤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오늘이 보라카이 마지막 밤이기 때문이었다. 가이드북에서 추천한 해변 클럽인 길리스에 먼저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비싼 술값에 놀라 바로 나와 버렸다.

그 건너편 코코망가스에서 우리는 자리를 잡았다. 탄두아이 아이스 한 병이 90페소라니! 역시 관광지 물가는 어느 나라를 가나 똑같은가 보다. 한 병씩 주문하고 춤을 추는데, 계속 음흉한 눈길을 보내는 아저씨들. 좋은 친구를 많이 만들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이곳에서는 무리라고 판단. 클럽은 역시 마닐라다. 이에 클럽걸인 R도 공감했다. 불만족스러웠던 클럽을 뒤로한 채 보라카이 럼 한 병과 사과맛 네스티를 사들고 Kaylee와 Stacy의 리조트로 갔다.

 역시 보라카이 럼과 사과맛 네스티의 조합은 환상이다. 보라카이 럼의 은은한 코코넛향과 네스티 사과맛의 달콤함 그리고 끝에 느껴지는 럼주의 아쌀한 맛. 이것이 바로 보라카이의 ‘맛’이다.

보라카이에서의 셋째 날은 일어나기 너무 힘들었다. 오늘 저녁에 가야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 하건만, 어제 마신 술의 여파와 여독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아침 9시가 다되어 조식을 먹고 난 뒤에 R과 나는 리조트 주변 시장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시장을 둘러보며 기념품 구경에 삼매경이던 R이 발견한 완소 아이템. 아저씨가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원한다면 나무조각에 자신이 직접 보라카이에서의 추억을 새길 수 있다. 게다가 하나에 30페소라는 매우 저렴한 가격. 똑같은 제품을 해변에서는 50페소에 받는데 이곳은 거의 절반가격이다. 나는 내 남자친구에게 줄 것 하나와 나를 위한 열쇠고리를 하나 만들었다.

나는 보라카이에서 기념품으로 코코넛과 망고스틴 등으로 만든 천연비누 4개와 보라카이 모래가 들어간 예쁜 병 핸드폰 줄, 하나에 10페소 밖에 하지 않아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서핑팔찌 18개, 나무로 만든 노란색 뱅골팔찌, 머리에 꽂는 대형 꽃장식을 샀다. 그리고 나중에 병에 담아두려고 해변에서 주운 조개들과 산호조각, 하얀 모래를 담아왔다.

점심이 훨씬 지나서야 다시 해변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해변 주위를 산책하면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코코넛 한 알 사서 돌아가면서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고 바다가 보이게 확 트인 해변 카페에서 망고쉐이크를 사마셨다.

찬 것을 너무 많이 마셔서일까. 갑자기 Kaylee가 복통을 호소했다. Kaylee가 약을 먹기 위해 우리는 조금은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우리가 저녁을 먹은 곳은 BigMamas라는 필리피노 스타일 식당. 역시 가이드북이 소개한 보라카이 맛집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시식과 스팸정식, 소고기 스프를 주문했다. 다른 레스토랑에 비하면 허름하고 화려한 메뉴도 없지만, 기본의 충실한 필리핀식 정통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이곳의 음식은 마닐라의 웬만한 필리핀 전통 음식점보다도 맛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에도 Kaylee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아 결국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 때 처음으로 우리는 숙소에 돌아가기 위해 트라이시클 탔다. 숙소에 Kaylee를 데려다 놓고 우리는 보라카이 저녁 썬셋을 보러 다시 해변으로 걸어 나갔다.

이날 썬셋은 어제의 그것만큼 아름답거나 감동 있지 않았다. 구름이 많이 껴있어 울긋불긋한 보라카이의 노을을 모두 가려버렸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Dmall에 위치한 유명 바인 Tidebar로 향했다. Tide 리조트 3층에 위치한 Tidebar는 수영장과 같이 있어 유명한 곳이다. 게다가 오후 4시부터 8시까지는 해피아워라해서 칵테일을 주문하면 주문한 칵테일 한 잔을 더 준다.

나는 진토닉, R은 스크류드라이버, Stacy는 롱 아일랜드를 주문했다. 몽환적인 인테리어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지닌 이곳은 저녁이 되면 클럽으로 변한다. 어제 코코망가스나 길리스에 가지 말고 이곳에 올걸! 우리 세 사람은 모두 후회했다. 우리가 주문한 칵테일도 만족스러웠다. R과 나는 정말 보라카이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비행기 시간은 새벽 5시 30분. 배시간은 10시가 막차란다. 칵테일에 알딸딸해져서일까. 아니면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보라카이의 밤하늘이 한 층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숙소에 돌아와 짐을 챙긴 우리는 50페소에 쇼부친 트라이시클을 타고 선착장으로 갔다. 돌아올 때는 터미널 요금이나 환경세 등이 없어서 1인당 80페소만 내면 되었다. 배에서 내린 후 다시 깔리보 공항까지 가는 벤을 타고 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아뿔싸. 11시에 도착해서 공항 안에서 쉬기로 했던 우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새벽 3시 30분은 되야 공항문을 연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노숙.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대비까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항 밖 평상 위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같은 시각 비행기를 타는 현지 여대생과 공항에서 일한다는 마르코라 남자애와 친구가 되었다. 3시간가량을 수다를 떨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고 우리는 평상 위에서 짧은 잠을 청했다. 평상에서 노숙하는 동안 나는 10군데나 넘게 모기에 물렸다.

깔리보 공항은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문을 열었다. 공항에 들어가서도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장대비로 인해 비행기 시간이 1시간 30분이나 딜레이 되었다. 돌아가는 마지막까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한 나의 보라카이 여행.

이러한 고생에도 R과 나는 누군가가 다시 보라카이로 보내준다면 기꺼이 다시 돌아오리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올 추석 때 우리는 돈을 빡세게 모은 뒤에 다시 한 번 오기로 약속했다. 젊음과 열정, 낭만이 있는 섬이 보라카이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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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낭만과 열정의 섬 '보라카이' 추억 만들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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