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4(수)
  • 전체메뉴보기
 

한국의 여름 한가운데를 거치고 난 직후의 여행이라 더운 날씨에 대한 적응이 쉬울 줄 알았는데 역시 인도는 만만한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더운 날씨로 인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일단은 살기 위해 예정보다 일찍 북쪽으로 올라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인도 여행에서의 일탈 중 하나인 라임 껍질 버리기(버스나 기차에 쓰레기를 놓아두면 쥐나 벌레가 끓어 그렇다던데 처음엔 불편했지만, 나중에는 여행 중 만난 일본친구에게 쓰레기를 버리는 법을 가르쳐줬다.)

그러나 아무리 덥더라도 여행 중 하고 싶은 일, 보고 싶은 걸 보지 않고 그냥 간다는 건 관광객의 도리가 아닙니다. 그래서 고아(Goa)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왜 고아냐고요? 지금보다는 북쪽이라 더위를 피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고아를 설명하는 책에 꼭 나오는 해변에서 웃으며 수영하는 사람들의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더불어 여자들이 발목도 내놓지 않고 다니는 이 곳 인도에서 수영복을, 그것도 비키니를 입을 수 있는 유일한 해변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꼬마아이 였을 때를 제외하고 수영복을 입어본 기억이 없는 제가 대체 왜 굳이 인도에서 그게 하고 싶은 걸까요? 아마도 한국에서 하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인거 같습니다.

여행은 작은 일탈입니다. 여행객이란 신분을 가지게 된다면, 자신들의 문화와 풍경을 보러 온 사람들로 대우받아, 위법이 아니라면 현지인들 보다는 좀 더 너그러운 시선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래 살아온 공간에서보다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저는 자유라는 작은 일탈을 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수영복 입은 저를 보며 힘들어 하겠지만 그렇다고 제가 수영복을 입는게 위법은 아니니까요.

코친에서 곧바로 가는 버스가 없어 2박 3일에 거쳐 버스로 힘들게 고아에 갔습니다. 더위를 피해 북쪽으로 올라간 셈인데 내리자마자 마주한 것은 마치 정지되어 있는 듯한 열기였습니다. 열기는 마치 고아 전체에 빈틈없이 꽉 차 있는 듯 했고, 그 사이를 억지로 비집고 들어 움직이려니 그 힘에 눌려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해변으로 가기 위해 릭샤(자전거나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일종의 인도택시)를 타려 했지만, 오로지 있는 거라곤 렌트용 오토바이와 스쿠터 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운전해 본 건 범버카와 세발 자전거 밖에는 없습니다. 대체 왜 이 나이까지 자전거 하나 배우지 못했을까요. 투덜거려도 당장 어쩔 수 없어 12킬로그램의 가방을 메고 아람볼 해변까지 30여분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차가운 도시 여자이고 싶었으나 현실은 2박 3일간 샤워도 못해 꾀죄죄하고 피곤에 찌들어 보이는 관광객.

내 배낭은 코오롱 포토트래킹 트레블러인데 내부가 잘 되어 있긴 하지만 60리터라 보통의 여자 여행자가 매고 다니기엔 큰 편이다.

그런데.. 힘들게 간 그곳의 상점들은 폭염으로 인해 거의 문을 닫은 상태였고, 그래서 인지 관광객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나와 밥을 먹기 위해 음식점에 앉아 기다리는 순간까지도 이미 더위를 배부르게 먹어서 그런지 계속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을 히피들의 천국이라 부르던데 알고 보니 파리들의 천국이었습니다. 더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얼굴에 파리가 붙어도 쫓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게 여기 와서야 이해가 됩니다. 포크를 움직이는 오른손이 쫓아도 가지 않고 붙어있는 파리 한 마리에 의해 움직여 지는거 같습니다.  

더위를 피하려다 35도가 넘는 폭염에 휩싸이게 된 셈이라, 타 죽지 않기 위해 탄산음료를 옆에 끼고, 움직일 생각도 못하고 며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덥더라도 보고 싶은건 봐야 합니다. 저는 포르투갈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느껴질 거라는 가이드북의 안내대로 고아의 빤짐으로 갔습니다. 커피 체인점과 큰 상점들, 깨끗하고 잘 정비되어 찾기 쉬운 길들이 모두 그 동안 여행한 인도와는 달랐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겨우 여행한지 한 달이 좀 넘었을 뿐인데도 한국에서 자주 접한 지금의 풍경들이 낯설게 보입니다. 그러나 더더욱 낯선 건 곳곳에 보이는 십자가와 성당들이었습니다. 인도는 힌두교도가 대부분이라고 사회시간에 주구장창 배워 왔었는데 이곳만 보면, 인도의 종교가 카톨릭 같습니다. 이 곳 사람들도 그것에 대해 크게 거부감이 없는 듯 했고요. 인도가 넓다고 하더니 도시를 옮겨 다닐 때마다 전혀 다른 풍경들을 만나는데 그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 동안 본 많은 장소와 사람들을 제가 온전히 다 받아들인 걸까요? 이렇게 끊임없이 의문을 품고, 여행 끝날 때까지 제발 이런 생각을 잊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가끔은 남들과 같이 관광지 몇 개를 보았냐가 중요한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여행 중 만난 다른 관광객들이 좋았다고 극찬했던 곳도 내가 볼 때는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간 안에 있던 일행조차도 나와 다른 느낌을 가집니다. 그런 걸 보면 그건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제 마음가짐이 문제인거 같습니다.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야 비로소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립니다.

   

동정녀 마리아 성당. 하얀색의 케이크 모양으로 원래는 포르투갈 선원들이 이곳까지 무사히 오게된 데 대해 감사의 기도를 드린 곳이라고 한다.

계단을 올라 동정녀 마리아 성당 그늘에 앉으니 고아에서 그동안 한번도 불지 않았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시원한 바람에 머리가 날려 얼굴을 간지럽힙니다. 그런데 그게 좋습니다. 사실 전 종교가 없어 그런 쪽으론 성당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포르투갈 선원들이 기도 했더라‘ 하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그냥 그렇겠구나’ 정도일 뿐입니다.   

 

   

도시 한복판에 여자를 해치려고 하는 모습의 무서운 동상? 그 아래 아무렇지도 않게 누워있는 빨간옷의 남자까지 묘한 모습이다. 그런데 실상은 18세기 고아의 성직자이자 최면술사였던 압베 파리아와 조수의 상이라고 한다. 알고 볼 때와 모르고 볼 때, 관점에 따라 많이 차이가 난다.

 그러나 좋았습니다. 폭염을 식히는 오후 2시의 바람이 좋았습니다. 성당 위에서 내려다보는 장난감처럼 작게 보이는 건물들이 좋았고, 개미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고아에서 제일 좋았던게 뭐냐고 물으신다면 아마 전, 이 곳이라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그말을 듣고 혹시라도 이곳에 온 다른 사람들이 실망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추천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바람과 풍경은 그때 저에게만 온전히 다가온 바람과 풍경이었으니까요.  :namespace prefix = o />

고아에서의 며칠을 보내고 첫 번째 인도여행에서 좋은 추억과 나쁜 추억이 함께 공존하는 디우로 가기 위해 경유할 도시인 뭄바이로 출발합니다. 또 어떤 여행, 어떤 사건들이 기다릴지.. 아마 제 마음이 어떠냐에 따라 다를 겁니다. 아, 그리고 고아에서의 마지막날 저녁에 저 수영복 입었습니다. 그것도 비키니로요. 신기한 풍경이었는지 인도사람들이 자꾸만 저를 배경으로 놓고 몰래 사진을 찍더군요. 역시 민폐는 끼치는게 아니었나 봅니다.

   

뭄바이행 버스에 타려고 하자 운전기사가 막아섰다. 점점 어두워져 가는데 버스고장으로 출발하지 못한다고해 긴장 백배 하는 중에 다른 버스를 수소문해 주는 관계자들. 자잘한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다.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손금옥의 두 번째 행복한 인도여행기(6)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