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5(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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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연애를 시작하며 연인을 알아가는 느낌과 비슷합니다.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욱 더 알고 싶은 무언가가 생기는 것 말입니다. 여행지에 대해 공부할수록 하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이 더욱 더 늘어갑니다. 인도를 여행하는 기간이 늘어갈수록 이곳에서 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늘어 갔습니다. 물론 인도 사람들과 똑같이 느낄 수는 없겠지만 그들 속에서 진짜의 인도를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만약 진짜라는 게 있긴 있다면 말입니다. 

   
분장하는 모습. 무언극인 카타칼리는 여자역할도 남자배우가 한다
코친에 가기로 한건 순전히 카타칼리라는 인도 전통춤을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우연히 접한 동영상에서의 화려한 얼굴 분장과 춤에 더해진 몸짓, 손짓과 눈빛에 반해 인도에 다시 갈 수 있다면 ‘꼭 한번 보리라’ 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 도착한 그곳은 뜨거운 햇살, 파란 하늘, 강과 바다가 만나는 수로까지, 관광객인 저를 위해 준비된 선물이었습니다. 전 그 모습을 보고 첫 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제가 아무리 궁색한 배낭여행객이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 와보니 한번쯤은 우아한 관광객이 되어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코친의 명물이라는 집배수로투를 예약하고 난 후, 숙소를 잡고 오후 4시에 극장으로 갔습니다. 원래 정식공연은 10시간이 넘지만, 제가 본 건 관광객들을 위해 90분으로 줄인 공연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연 1시간 전,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분장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공연시간이 그리 짧게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왼쪽부터 악사들, 자얀단(인드라의 아들), 랄리타(아름다운 소녀)
제가 본 카타칼리는 NAKRATHNDI(나크라순디)였고, 크리슈나 신이 하늘의 왕인 인드라조차 무서워할 정도의 괴력을 가진 악마 나라카수라를 죽이고 하늘과 지상세계를 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매일하는 연극이라 배우들도 이젠 익숙해져 긴장도 안 될 것 같은데 그들은 전쟁에 나가기 전의 의식을 준비하듯, 비장한 얼굴표정을 하고 염료를 얼굴에 발랐습니다. 
 
드디어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고 악마 역할을 한 배우가 빙빙 돌며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보는 사람도 카타칼리를 하는 배우도 모두 무대 위의 한 점에 모였습니다. 사람들이 무언가 열중할 때는 왠지 모를 이상한 열기가 느껴집니다. 극장 안에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 거 같습니다. 90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뿌듯한 마음으로 나왔을 때 밖엔 비가 퍼붓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일정을 어찌해야 하나 한 5초쯤 생각했지만, 어떻게든 되는 게 인도여행이었으니 걱정은 접어두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드디어 대망의 집배수로투어 날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역시 하늘은 저를 버리지 않습니다. 맑은 날씨에 배를 타고 투어를 하라는 신의 계시와 항상 따르는 운으로 어제의 먹구름은 모두 물러가고 뭉게구름이 떠다니는군요. 저와 일행은 배를 타러 가기위해 투어버스에 탔습니다.
 
   
배를 타고 가다 본 수로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
 
오늘 투어를 함께 할 관광객들은 총 8명입니다. 영국인 커플 2쌍과 저를 포함한 한국인여자 2명, 그리고 인도인 남자 2명이었습니다. 다들 영어로 가이드와 인사를 했습니다. 물론 저도 제 일행도 인사를 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중학교를 마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하이’를 누구나 할 수 없는 수십 가지 언어를 포함한 활짝 웃는 얼굴표정을 지으면서 말입니다. 이내 저와 일행을 뺀 나머지 그들은 반갑게 대화하며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단지 저희만 그들과 친구가 되지 않았다고(?) 집배수로 투어가 별로였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대충 관광객들과 안면을 익힌 후, 가이드는 수로투어와 그날 일정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제가 영어를 못하는 거지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이래 뵈도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가이드는 그걸 알지 못한 건지 모두에게 한 번 설명하고 유독 저에게 와 알아들었냐고 하면서 2번 더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습니다.
   
아직까지는 열심히 가이드(왼쪽에서 두 번째)의 설명을 듣고 있는 중.
 
- 마담, 오늘 배를 두 번 갈아 탈거야. 밥은 말이지 12시에 먹을 거고..
- 나 다 알아들었어.
- 응, 그래. 그런데 말이지 마담, 이 조개껍데기는 말이야 칼슘 성분이 들어있어.
 
이번엔 가이드가 화학기호를 이야기 하려나봅니다. 그래서 이번 투어에 대단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한 시간쯤 수로를 거슬러 올라가더니 모두를 배에서 내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두 시간 동안 어느 동네 야자나무 아래와 그 동네 한 집의 안마당에서 각종 식물과 조개껍데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집배수로투어 중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조개껍질 더미, 조개껍질을 태워 재를 벽에 붙여 시원하게 만듬, 코코넛 나무 위로 올라가는 영국커플 중 남자, 코코넛 술

.
처음엔 8명 모두가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영국인 커플이 뒤로 물러났고, 다음은 제 일행, 그 다음은 저, 다음은 인도인 남자들 순서로 뒤로 물러나 딴 짓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설명이 다 끝날 때 쯤엔 또 다른 영국인 커플만 가이드 옆에 남았습니다.
 
   
남인도식 점심식사. 투어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음식이었다.
 
투어가 다 끝날 때쯤에서야 비로소 집배수로투어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가기위해 배를 타고 수로로 가는 투어였었던 겁니다. 돈 많은 관광객처럼 가만히 앉아서 배로 수로를 거슬러 올라가거나 설명을 듣는 것 따위는 역시 제게 맞지 않습니다. 다시 궁색한 배낭여행객으로 치열한 인도인 사이에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지도를 폈습니다. 다음엔 인도의 어느 도시로 가야 할까요?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이것도 설렙니다. 역시 여행이란 연애와 같은 겁니다.
 
   
수로탐험 배에서
 
수로탐험이 끝나갈 즈음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커플들은 우산이 없었고, 저와 일행이 펴는 우산을 부러운 듯 바라보더군요. 물론 한명씩 앉아있어 우산을 씌워 줄 수 없었던 거지 그들이 부러워서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세계일주배틀-'제1탄 인도를 내품에' 취재를 위해 협찬해 주신 후원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래는 후원사 명단과 로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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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금옥의 두 번째 행복한 인도여행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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