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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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강(바라나시에서는 강가-ganga라고 부른다)에서 목욕하며 기도하는 사람들

바라나시(Varanasi)는 인도를 대표하는 도시입니다. 전설보다 오래되었다는 어느 작가의 말을 모르더라도, 인도여행 좀 해 봤단 사람들은 이 곳을 보지 않고 인도를 봤다고 말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바라나시 특유의 분위기를 예찬합니다. 아니 예찬 수준을 넘어 숭배합니다. 지금 당장 인터넷 검색 한번만 해봐도 그 곳에서 뭔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단 사람들의 글을 수도 없이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전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은 아니지만 바라나시를 무척 좋아합니다. 몇 백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건물과 그 기간을 쌓인듯한 먼지, 만드는 과정을 보고 배탈 날 것 같아 주저하지만 한번도 그런적이 없는 신기한 음식들, 그리고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절 향해 웃어주는 강력한 호객꾼들까지 모두 포함해 말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화장(火葬)의 과정, 곧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것도 좋지만, 이 모든걸 포함해 제가 바라나시를 좋아하는 훨씬 더 큰 이유는 가트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바라나시에서 할 수 있는 일. 보트타고 갠지스강 구경하기.  바라나시의 흐릿한 하늘과 갠지스강,  9월 중순의 가트는 대부분 물에 잠겨 가트가 보이지 않는다.
 
   
 바라나시에서 할 수 있는 일. 매일 아침과 저녁때 갠지스강에 바치는 제사인 푸자의식 보기
가트는 바라나시 갠지스 강 가의 주변을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은 곳으로 인도인들은 목욕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이곳을 이용합니다. 저는 그곳에서 몇시간이고 일기를 쓰거나 음악을 듣고, 목욕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휴식하는 사람들에게 휘치 콘투리(Which country?-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는 인도식 표현)와 같은 인도영어를 배웠고, 그러다보면 별 구경거리 없는 바라나시의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바라나시에서 할 수 있는 일. 남은 여행이 잘되기를 기원하면서 디아(꽃불) 띄우기

 
   

바라나시에서 할 수 있는 일. 무더운 날 오후 영화보기, 포스터는 2010년 9월 인도에서 가장 인기있던 영화 Dabangg. 주인공 살만 칸이 노래를 부르면서 셔츠깃 뒤쪽에 선그라스를 끼고 나오는 장면이 영화 중간에 있었는데, 여행 내내 동네서 좀 논다는 청년들에게 자주 볼 수 있는 최신 유행이었다. 

그러나 제가 머무른 9월 중순은 우기 끝자락이라 가트가 절반 이상이 물에 잠겨 걸어 다닐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매일 오는 비 때문에 걸음을 걸을때마다 골목 여기저기 있던 소들의 분비물은 제 바지에 온통 얼룩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항상 가지고 다녀야 했던 우산에서 떨어지는 빗물조차도 싫고, 사람 한명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안에서 부딪히는 사람들의 어깨도 싫었지만, 더 싫었던 건 변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상희를 안다고 뜨뜻미지근하게 말하는 그는, 이곳의 닳고 닳은 사람들처럼 능수능란한 일본어로 옷가게의 호객을 하고 있었고 이미 2년 전의 그가 아니었습니다. 그 후에도 몇번인가 그를 보았지만,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걸진 않았습니다.
  비가 한바탕 퍼붓고 난 아침, 신문을 사기 위해 가판대 앞에 서 있는 저에게 이번엔 그가 먼저 상희를 아냐고 물었습니다. 정말 상희를 아는걸까? 그는 그녀의 소식을 궁금해했습니다.
 - 그녀는 오스트레일리아에 가고 싶어했어. 그녀가 지금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
 - 일 때문에 간거야?
 - 아니. 일과 공부 모두로..
뒤로 자꾸만 물러서는 저에게 그는 농담처럼 너를 죽이진 않을 거라며, 자신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전에 상희가 그를 좋은 사람이라 말했지만, 그건 아마 과거 가트에 앉아 함께 꿈을 이야기하던 그였을 것입니다. 지금 제 앞엔 허름하고 찢어진 셔츠를 입었지만 순수한 눈을 가졌던 그 대신 매끈한 머리와 옷차림의 그가 서 있습니다.
 - 더 이상 너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
 - 그래. 한국 사람들은 나뻐.
  그가 그녀와 몇번 더 연락하다가 연락이 끊어졌거나, 그 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쉽게 했던 약속들에 상처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지만, 그를 포함해 지금 바라나시는 모든 것이 2년 전 그때와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진짜 변한건 저인지도 모릅니다. 아무 기대 없이 모든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바빴던  2년 전의 그때와 달리 지금 정해놓은 잣대에 비추어 이곳이 전과 다르다고 투정부리고 욕하고 있었으니까요.  
  다른 곳도 이렇게 제게 실망만을 안겨줄까요? 전 바라나시에서 좀 심심했고, 기대감보다 더 큰 실망감으로 우울해졌습니다.
  여행초반이긴 하지만 여행이 항상 즐겁고 기쁘기만 한건 아니쟎아요. 밖은 아직도 비가 옵니다. 이 비에 우울한 기분도 씻기면 좋겠습니다.
   

주변 건물에서 갠지스강을 내려다 본 모습

 
   
 벵갈리 토라 골목길, 바라나시에서 머무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비가 왔다.
 
   

바라나시를 떠나는 날 본 사두(수행자), 우리는 어느 사원의 처마밑에서 함께 비를 피했고, 비가 그치자 오직 과자 한통뿐인 그의 음식조차 새들과 함께 나눠 먹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인도의 진짜 도인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세계일주배틀-'제1탄 인도를 내품에' 를 위해 협찬해 주신 후원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래는 후원사 명단과 로고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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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금옥의 두 번째 행복한 인도여행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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